닥터브로너스 X IZE│PLASTIC WAR : 플라스틱 없이 일주일 살기

박희아 ize 기자 2019.04.19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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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을까?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플라스틱 없는 삶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직접 ‘ize’의 기자가 실험해봤다. 플라스틱 없이 일주일 살기.
닥터브로너스 X IZE│PLASTIC WAR : 플라스틱 없이 일주일 살기


# 첫째 날: 내가 쓰는 플라스틱에는 어떤 것들이 있지?
텀블러와 일반 물병, 휴대전화 보호용 케이스, 디즈니 캐릭터 샤프와 볼펜, 취재를 준비 중인 아이돌 그룹의 앨범, 파우더 팩트, 립밤, 생리대, 이어폰, 손세정제. 가방과 옷 주머니에 일상적으로 넣고 다니는 물건 중에서 플라스틱 성분이 포함된 물건들을 찾아냈다. 물론 ‘찾아냈다’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손에 잡히는 물건 중에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회의 시간에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면 어떻겠냐”라는 편집장의 매우 적극적인 권유를 받았다.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회의 시간에 배달된 음식은 먹고 시작하겠다고 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서 왔지만, 점심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대신에 휴대전화 보호용 케이스와 플라스틱 물병, 샤프 등 일상적으로 쓰던 물건들을 한데 모아서 따로 뺐다.

# 둘째 날: 플라스틱을 적으로 간주하게 되다!
주말이지만, 기자에게는 딱히 주말이라는 게 없다. 점심 미팅이 끝나고 오후 2시 30분에 있는 뮤지컬 ‘신흥무관학교’까지 관람하고 돌아와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문제는 물병이었다. 몸이 아파서 약재 달인 물을 하루에 2리터씩 마셔야 하는데, 귀가가 늦어질수록 많은 양의 물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500밀리리터짜리 플라스틱 물병을 세 개씩 들고 다니다가 어쩔 수 없이 근처 마트에 가서 기다란 유리병을 샀다. 아무 것도 넣지 않았는데 이미 플라스틱 물병 하나의 무게가 나가는 듯한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유리병 세 개에 물을 채워 넣고, 배낭을 멨다. 그 순간, 어깨가 축 늘어지며 한숨이 나왔다. 그래, 적을 알아야 이긴다. 유리병 하나를 뺐다. 어쩔 수 없이 건강을 포기했지만, 일단은 한 발 물러난다. 나는 플라스틱을 지구의 가장 위협적인 적으로 간주하기로 마음먹었다. 강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금세 포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뮤지컬이 끝나고 돌아올 때쯤에는 가벼워진 가방이 느껴져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 셋째 날: 대체 어디까지가 플라스틱인 거야?
“그거 플라스틱이야.” 일요일 아침, 짜장 라면을 끓이고 무심코 젓가락을 꺼내 들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놋쇠 젓가락을 발견해내서 잠시 쓰다가 짜증이 났다. 손목이 아파서 쓸 수가 없었다. 낮에 할머니가 오셔서 만두를 빚기로 했다.만두피를 반죽하기 위해 볼을 꺼냈는데, 웬걸. 플라스틱 볼만 크기별로 있었다. 그 순간에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고기를 굽기 위한 집게, 만둣국을 푸는 국자, 매일 하나씩 플레인 요거트를 떠먹는 티스푼, 이외에도 수세미, 비누 케이스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내가 플라스틱이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결국 만두를 빚고 있는 엄마에게 대형 마트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스테인리스와 사기를 구입했다. 아이러니는 이 제품들을 포장한 용기가 모두 플라스틱이었다는 거다. 플라스틱이 일체 들어가지 않은 물건들을 필사적으로 찾아냈다. 비용은 무려 15만 3천 원이 나왔다. 유기농과 친환경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거, 안타깝지만 진짜다.

# 넷째 날: ‘월요병’을 이긴 ‘NO 플라스틱 병’
출근을 하면서 또 유리병 두 개를 가방에 넣었다. 쇠로 된 유리병 손잡이 하나가 뚝 떨어져서 물이 쏟아지는 줄 알고 질겁했다. 어깨가 무거웠고, 빨리 회사에 도착해서 꺼내놓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테이크아웃 컵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스테인리스 뚜껑이 달린 유리 머그를 준비했다. 왜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사용하지 않았냐고? 대부분의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마개와 뚜껑 부분에 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다. 집 안에서는 이 텀블러 위에 마개와 뚜껑 대신 사기 접시를 올려놓고 썼다. 하지만 밖에서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유리 머그에 생딸기 주스를 넣어달라고 했다. 큰 사이즈를 시켰지만, 컵이 작아서 작은 사이즈 음료를 사도록 권유받았다. 저녁 때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당이 뚝 떨어져서 케이크를 사러 갔더니 테이크아웃에는 플라스틱 포크를 준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먹었다. 그리고 자리에 돌아와 무심코 앉으려다가 깨달았다. 아, 노트북도 플라스틱 껍데기……. 마우스도 플라스틱이다. 이건 글을 쓰느라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 하루 종일 이건 플라스틱인지 아닌지 경계하다가 월요일인 것도 잊어버렸다.



# 다섯째 날: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인터뷰를 위해 목동 SBS 본사에 방문했다. 혹시라도 플라스틱 컵에 마실 것을 건네받게 될까봐 계속 조마조마했다. 만약에 플라스틱으로 된 음료병을 주면 뭐라고 하지? “저 지금 플라스틱 없는 삶을 체험 중입니다.” 나는 안 웃긴데, 다른 사람들은 뭐하는 건가 궁금하겠다 싶어서 혼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다행히 유리컵에 담긴 다즐링 차를 마실 수 있었고,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정말 의미 있는 체험을 하시네요.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요?” 그러게요. 어딜 가도 플라스틱이 가장 가볍고 편리하며, 다양한 성형(成形)이 가능한 물질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네요. 왜냐하면 제가 아까 아이폰을 떨어뜨렸는데 케이스를 빼고 다니는 바람에 사이드에 커다란 흠이 났거든요. 아직 약정이 한참 남았는데…….

# 여섯째 날: 예쁘기는 한데, 자꾸 깎아야 하는 색연필
라디오 녹음을 하러 갔더니 PD님이 종이컵에 차를 타 마실 수 있게 준비해두고 계셨다. 종이컵을 보고도 어딘가에 플라스틱 성분이 포함돼 있지는 않나 의심부터 했다. 게다가 종이인 걸 확인했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찜찜했다. 며칠 만에 종이컵을 쓰는 일도 마음이 편치 않게 된 것이다. 대본을 읽으면서는 펜 대신 가져간 연필을 썼다. 샤프도, 볼펜도 플라스틱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연필을 다섯 자루씩 깎아서 들고 다녔는데,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3일 만에 사각거리는 느낌이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해졌다. 집에 돌아와서 유리 머그에 종이 빨대를 꽂아 물을 기분 좋게 마셨다. 하지만 아이디어 노트에 연필로 여러 가지를 적으면서 자꾸 번지는 게 불편했다. 그래서 잘 안 번지는 색연필을 써서 일을 했다. 예쁘기는 한데, 자꾸 깎아야 한다는 것도 문제다.

# 마지막 날: 플라스틱 없는 삶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단언컨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에 2리터씩 약재 달인 물을 가지고 다니는 나에게는 이 체험이 상당히 어려웠다. 플라스틱 없는 삶이란, 2킬로그램짜리 노트북을 들고 다니던 초짜 기자 시절에 얻은 어깨 통증을 다시 되살리는 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부득이하게 사용하고 있는 칫솔과 휴대폰 충전기, 노트북 같은 것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화장품을 쓸 때 플라스틱을 쓸 수 없어서 종이에 들어있는 1회용 샘플을 사용하는 일은 정말 불편했다. 플라스틱 집게로 막을 수 없어서 클립을 사용했을 정도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일은 가능하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제품만을 찾아 사용하고,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을 하면 아주 오랫동안 가벼운 무게로 사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마치 나의 가지각색 물병들처럼 말이다. 분명한 것은, 플라스틱 없이 살 수는 없지만 반드시 플라스틱만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는 점. 지금 당장 주변을 돌아보면, 플라스틱이 아닌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 의외로 많이 보일 것이다. 가능하지 않다면, 가능한 삶을 꿈꾸는 것도 필요하다. 그게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노력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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