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퇴직연금과 자발적 '호갱'

머니투데이 김익태 증권부장 2019.04.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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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이 말 그대로 동네북이 됐다. 심지어 다른 연금제도와 통합하자는 소리까지 나온다. 수익률 탓이다. 2018년 연간 수익률 1.01%. 은행 정기예금 금리(2018년 말 잔액기준) 1.99%를 밑돌았다. 물가 상승률이 1.5% 수준이다. 가만히 앉아서 내 노후자금을 까먹고 있는 꼴 아닌가. “국민연금이 저 지경인데 퇴직연금까지…이게 말이 돼?” 여기저기서 볼 멘 소리가 들린다.

그때 뿐이다. 나부터가 그렇다. 직장인이다. ‘회사 그만 두면 뭐해 먹고 살지?’라는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 퇴직금이 퇴직‘연’금이 됐을까. 이런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 며칠 전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은행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리밸런싱(rebalancing·자산 재조정)상품을 소개하겠다는 전화였다. 퇴직연금 가입 후 8년 만에 처음 받아 본 전화였다. 해마다 높은 수수료만 또박또박 떼가 더니 웬일인가 싶었다. 듣다 보니 복잡하고 귀찮아졌다. ‘실적에 안달 난 직원’쯤으로 간주하고 못들은 척 했다.



가입자는 사업자에게 반드시 적립금 운용방식을 지시해야 한다. 문제는 나처럼 처음 운용 지시를 한 후 90% 이상이 이를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와 투자 환경은 수시로 변화한다. 그런데 열에 아홉은 이를 간과한다. 그렇게 노후자금을 방치 해두고 있다. ‘지금이 좋고 편하니 웬만하면 그냥 있지 뭐’라는 안일한 본능이 작용한 탓이다. 사업자 역시 저조한 수익률 갖고 항의하는 가입자가 없으니 수수료만 떼 간다. 이만한 장사가 없다. 나는 또 ‘내 퇴직연금 계획은 엉망이야’라고 중얼거릴 뿐 그렇게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 ‘호갱’이 됐다. 매년 이 맘쯤 연간수익률이 발표되면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적립금의 90.3%는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9.7%는 실적 배당형 상품으로 운용됐다. 은행 이자 정도의 안전을 추구하는 원리금 보장형의 수익률은 1.56%였다. 반면 위험을 감수한 실적배당형(주식형 펀드 등)은 -3.82%를 기록했다. 주식시장 불황에 따른 펀드 수익률 급락 등의 영향이 컸다.



그렇다면 원리금 보장형만 택해야 하는 걸까. 안전 자산에 집중하다 보면 금리 자체도 낮고 운용 수수료는 계속 빠져나가니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수익률이 실제 생활 인플레이션을 이겨낼 수 없다. 명목상 받을 돈은 늘어나는데 실제 교환가치는 별 게 아닌 게 된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수익률을 10년 단위로 보면 퇴직연금 전체 수익률은 연 3.22%다. 그런데 원리금 보장형의 경우 3.07%, 실적 배당형은 4.8%다. 실적 배당형의 투자 비율을 높였다면 수익률은 더욱 높았을 거란 추론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수익률은 단기적인 아닌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봐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국민·개인연금과 함께 노후 자금의 한 축인 퇴직연금 문제 해결을 위해선 스스로 뛰는 수밖에 없다. 은행·증권·보험사 등 사업자의 각성도 필요하다. 이럴 시간도 없고 귀찮게 느껴진다면 정부에 나 대신 돈을 굴려주는 제도를 만들라고 요구해야 한다. 논의되고 있는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 도입이 답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업자를 갈아타기 쉽게, 수익률 좋은 사업자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가입자 유치를 위한 사업자 간 치열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 국민들의 노후가 불안해질수록 재정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다. 퇴직연금 제도 손질이 시급하다.

환갑잔치하려면 눈치를 봐야 하는 ‘100세 시대’다. 신체·정신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재정도 뒷받침돼야 한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 세상이 척박하다 보니 ‘재수 없으면 오래 산다’는 말까지 나온다. 바쁘다고 방치 하지 말아야 한다. 보다 나은 노후 삶의 질을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광화문]퇴직연금과 자발적 '호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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