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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자기야"… 오명 쓴 '사기의 나라'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4.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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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③] '나이지리아 사기' 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사기 만연… 무역 사기부터 로맨스 스캠까지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지난 2월19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위치한 이두모타 시장에서 한 손님이 '날리우드'라 불리는 나이지리아 영화 관련 책을 보고 있다. /AFPBBNews=뉴스1지난 2월19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위치한 이두모타 시장에서 한 손님이 '날리우드'라 불리는 나이지리아 영화 관련 책을 보고 있다. /AFPBBNews=뉴스1




"자기야, 이제 한국에서 같이 살고 싶어. 미군 파병 중 받은 포상금 보낼 테니 운송료 보내줘."

"호텔에 미리 전화해 내 카드로 숙박비와 체류비를 함께 결제해둘 테니 따로 체류비를 계좌로 보내줘."

지난 2일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나이지리아인 A씨(40) 등 7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2017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약 1년간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한국인에게 접근, 약 14억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사기 수법은 '로맨스 스캠'이라 불린다. 로맨스 스캠은 로맨스(Romance)와 신종 사기(Scam)이 합쳐진 용어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신분 등을 속여 신뢰를 쌓은 뒤 연애·결혼 등을 빙자해 각종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로맨스 스캠은 어디에 속하고 싶은 심리, 외로운 심리 등을 이용해 중·장년층에서 주로 발생하며, 스캠네트워크라는 국제 범죄조직에 뿌리를 두고 이뤄진다. 스캠네트워크는 나이지리아를 비롯 서아프리카 지역에 본부를 두고 한국·중국·홍콩 등에서 활동한다. 나이지리아는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로, 국내에도 영어 사용 가능 인구가 늘어나면서 범죄의 주 타겟이 됐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로맨스 스캠이 최신형이긴 하지만, 이 같은 사기 형태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전세계는 '나이지리아발(發) 사기'에 익숙해져있다. 나이지리아 사기 혹은 나이지리아 편지, 나이지리아 419 등의 용어가 세계 각국 사전에 등록돼있을 정도다.

'나이지리아 사기'(나이지리아 선급금 사기, Advanced Fee Fraud·AFF)는 1990년대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확산된 사기 수법으로, 기업이나 개인을 대상으로 영문으로 된 편지·팩스·이메일 등을 통해 사기성 메시지를 송달한 뒤 돈을 받아내는 방식이다.

주로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받아본 적 있을 것이다. "나는 매우 돈 많은 정치인·부호의 유산상속자인데, 정부의 눈을 피해 비자금을 옮겨야한다. 하지만 감시가 삼엄해 우리가 직접 손을 쓰면 덜미를 잡힐 것이다. 만일 이 메일을 읽는 당신이 우릴 도와서 비자금을 옮기는 비용을 대신 내준다면, 우리가 받을 유산 중 일부를 수수료로 제공하겠다" 등이다.

무역 사기도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중앙은행(CBN)이나 석유개발공사(NNPC) 임원을 사칭하고 지하자금이나 불법자금을 관리, 세탁해 줄 경우 상당한 수수료를 지급한다고 기업인들을 유인한 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탈취해 가는 방법이다.

이외에도 무역 사기의 방법으로 일종의 '가짜 주문'도 자주 이뤄졌다. 높은 구매단가를 제시하면서 처음엔 사전송금 등 좋은 조건의 결제방식을 제시했다가 중간에 부득이한 사정이 발생했다고 하면서 물품 선적 후 선하증권(Bill of Lading)을 보내주면 전신환(Telegraphic Transfer)으로 대금을 결제하겠다며 결제방식을 바꾼 뒤 결국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물건만 떼어먹는 수법이다. 또 신용장 사기(신용장 위조) 수법이나 물품의 대량 샘플 요구 후 실제 거래는 하지 않고 샘플만 다른 시장에 팔아먹는 수법 등도 자주 사용됐다.

이같은 나이지리아발 사기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각국 대사관과 관계기관은 419에 대한 경보를 발동시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미국 FBI(미국 연방수사국) 홈페이지에도 '나이지리아 편지' '나이지리아 419'라는 용어와 함께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적혀있다.

419라는 건 나이지리아 형법 419조를 가리킨다. 나이지리아 형법 419조는 나이지리아 사기를 언급한 형법 조항으로, 1995년 4월 대통령 칙령 13호 발효로 개정 및 확장된 '선급금사기죄(AFF) 및 기타 사기성범죄에 대한 칙령'이다. 미국이 1992년 나이지리아 사기를 이처럼 명명하면서 이후 '419 사기' '나이지리아 419' 등으로 불렸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특히 IMF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1997년 말, 절박한 심정을 자극한 사기 피해가 이어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몰린 기업이 큰 물량의 수입 오더에 희망을 걸면서다. 당시만해도 '나이지리아 419'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도 했다.

1998년 KOTRA 라고스(Lagos) 무역관장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무역관에는 한국인들로부터 매달 2~3회 정도 사기여부 확인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대기업이었던 아시아자동차, S물산 등도 국제무역사기 희생양이 됐다고 한다. 업계에선 "한국은 국제무역사기의 봉"이라는 자책도 나왔다. 이후 범죄의 주체는 가나, 카메룬, 베냉 등 경제적으로 낙후된 서아프리카 지역으로 확대됐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로맨스 스캠'으로 발전했다.

매달 기초생활수급(CCT)을 받는 여성들이 나이지리아 나사라와에 위치한 가라쿠에 모여있다. 나이지리아는 산유국이지만 부정부패로 인한 부의 재분배 실패로 나이지리아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해 빈민층 인구수가 1억명을 넘는다./AFPBBNews=뉴스1매달 기초생활수급(CCT)을 받는 여성들이 나이지리아 나사라와에 위치한 가라쿠에 모여있다. 나이지리아는 산유국이지만 부정부패로 인한 부의 재분배 실패로 나이지리아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해 빈민층 인구수가 1억명을 넘는다./AFPBBNews=뉴스1
그렇다면 나이지리아는 어쩌다 '사기의 나라'가 됐을까. 아페 아도가메(Afe Adogame) 영국 에딘버러 대학 교수는 "1970년대 후반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경제·사회·정치적 격동과 불안정이 나이지리아에서 사기성 책략을 출현하게 했고 이를 강화시켰다"고 분석했다. 즉 1973년 1차 오일쇼크에 이어 1978~1981년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며 나이지리아 사회가 불안정해졌고 사기 행각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로 인해 원유값이 치솟으면서 이전까지 페르시아만 연안의 석유에 주로 의존하던 나라들은 나이지리아 등으로 원유수입처를 다변화했다. 이때부터 나이지리아에 막대한 오일 달러가 대량 유입됐다. 특히 2차 오일쇼크 직후인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대량 유입되는 달러로 인해 타국으로부터 나이지리아로의 물품수입이 급증했다. 자연히 나이지리아 당국이 수입절차상 필요사항을 허가하는 일도 많아졌다.

문제는 당시 나이지리아가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이후 군사정권이 지속되면서 사회체계가 부패하고 불합리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권한남용이 발생했는데, 담당 공무원은 허가권을 남용해 상시적으로 뇌물을 수수했다. 일각에선 이 뇌물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사기 행각이 시작됐다고 본다.

1980년대 초 석유 가격의 변화도 나이지리아에 사기 행각이 만연케하는 데 기여했다. 1980년대 초 유가가 하락하자 나이지리아 경제 역시 휘청였다. 다수의 대학생들이 취업에 실패했고, 이들이 당시 나이지리아를 방문했던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한 게 시초다.

나이지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에보니 주의 주도, 아바칼리키 /사진=위키커먼스나이지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에보니 주의 주도, 아바칼리키 /사진=위키커먼스
내전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떨어진 신뢰의 가치 역시 사기가 만연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나이지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내전은 1967년~1970년 사이에 일어난 '비아프라 전쟁'이다. 1966년 하우사족 출신의 야쿠부 고원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자, 여기에 반발한 이보족이 동부 지역을 '비아프라 공화국' 이라는 이름으로 분리 독립 선언하며 벌어진 전쟁이다. 소련과 영국의 지원을 받은 나이지리아 연방 정부군이 비아프라를 함락하면서, 1970년 비아프라는 무너졌지만 이 같은 내전 하 주민들은 살인, 절도, 강간과 같은 범죄에 노출돼 안보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했다.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배기현은 "내전에 따른 공포로 신뢰와 협력의 가치는 실종되고, 심각한 사회 자본의 변형을 경험하게 된다"면서 "언제라도 내전이 재발할 수 있다는 공포가 사람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성을 황폐하게 만들면서, 정직 보다는 염탐과 사기를, 공정한 교류 보다는 약탈과 폭력이 단기적으로 쉽고 유리하게 평가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지난 4월8일 나이지리아의 '무역 허브' 라고스 아파파항에 컨테이너 선박이 정박해있다. /AFPBBNews=뉴스1지난 4월8일 나이지리아의 '무역 허브' 라고스 아파파항에 컨테이너 선박이 정박해있다. /AFPBBNews=뉴스1
현재 나이지리아는 명실상부 서아프리카 '지역 강국'으로서, 2050년엔 세계 경제순위 14위 경제강국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나만 모르는' 2050년 경제강국… 의외의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①]) 그렇다면 2020년을 목전에 앞둔 현재, 나이지리아는 '사기의 나라'라는 오명을 벗어 던졌을까?

안타깝게도 나이지리아를 향한 의심쩍은 시선은 그대로다. 극성인 로맨스 스캠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역 사기 역시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2016년 당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이던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OTRA의 '최근 3년간 우리 기업의 무역사기 현황'을 토대로 "나이지리아에서 100건의 무역사기가 발생했다"며 "이 국가와 무역할 때 각별하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오명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KOTRA 관계자는 "대다수의 나이지리아 바이어들은 일부 몰지각한 나이지리아 악덕업체들의 무역사기 사건으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나이지리아가 나쁜 평판을 얻게 돼 자신들의 비즈니스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초래되고 선의의 피해를 입게 된데 대해 매우 분개하며 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이지리아의 무역사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비상식적인 유혹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경우에는 KOTRA 라고스 무역관의 '해외시장 조사대행-단순 해외현장 확인정보' 서비스를 통해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나이지리아는 '사기의 나라'라는 오명을 벗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까. 나이지리아가 매년 8~9% GDP 성장률을 보이며 저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는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겠다. 물론 그러려면 나이지리아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범죄 조직을 소탕하고, 석유로 얻은 이익이 고르게 배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말이다.

참고문헌

국내외 투자사기의 유형과 대책에 관한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황지태·박정선·양승돈

나이지리아 무역사기 사례모음, KOTRA 라고스 한국무역관

개발도상국의 유형별 신뢰 수준이 삶의 만족에 미치는 영향, 성균관대, 정혜린

나이지리아인의 인터넷 사기의 유형, 주 나이지리아 대사관

분쟁 후 사회건설: 여성화된 빈곤과 공포의 극복과 개발협력 과제, 제1회 국제개발협력 논문공모 수상 논문집, 배기현


☞[이재은의 그 나라, 일본 그리고 국민병 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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