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노모, 50대 자식을 돌보다"[日산지석]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9.04.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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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본 총리, 40세 전후 취업지원 선언
'중장년 히키코모리' 첫 통계 발표 뒤 나와
노인이 자식 챙기는 8050 문제도 커진 日
젊을 때 구직난 겪은 세대 '경제력 높이기'

편집자주 타산지석, 남의 산에 있는 돌이 내 옥을 다듬는 데 도움될 수 있다는 뜻. 고령화 등 문제를 앞서 겪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 경계할 점을 살펴봅니다.

일본의 한 50대. 그는 장을 보기 위해 3일에 한 번씩만 외출을 하고 늘 집에 있는다. /AFPBBNews=뉴스1일본의 한 50대. 그는 장을 보기 위해 3일에 한 번씩만 외출을 하고 늘 집에 있는다. /AFPBBNews=뉴스1


"80대 노모, 50대 자식을 돌보다"[日산지석]
며칠 전인 1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몇몇 장관들에게 취업 지원을 강화하는 3년짜리 프로그램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지원 대상은 청년층이 아닙니다. 40세 안팎입니다. 왜 이들에게 신경을 쓸까요?

이는 지난달 29일 내각부가 사상 처음으로 40~64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통계를 발표한 데 이어 나온 것입니다. 히키코모리는 6개월 이상 가족과도 얘기하지 않고, 사회 참여를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지요. 이번 통계에서 일본 내 중장년 히키코모리는 61만3000명이었습니다. 15~39세 수치(54만1000명, 2015년 통계)보다도 큽니다.



히키코모리는 젊을 때 겪고 끝날 줄 알았던 기대가 틀렸다는 게 확인된 것입니다. 이들의 20% 가까이는 20년 이상 스스로 갇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히키코모리가 된 계기로는 '퇴직'(36.2%)이 가장 많이 꼽혔지만, 직장부적응·구직문제를 합치면 '직업'이 원인인 비율은 60%를 넘습니다.



직업이 개인과 사회를 잇는 기본적인 끈인 것은 일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선로를 한 번 이탈하면 돌아오기 힘든 사회 구조"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총리까지 나서서 40세 안팎에 주목한 이유는 이들을 방치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는 지난 1993년~2004년 일본의 경기 침체기에 구직 활동을 했습니다. 일본에서 '취업빙하기'라고 불리는 이때 이들은 직업 구하기가 어려웠고 아르바이트,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입한 이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한번 이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정규직 되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일본 총무성 가계 조사보고에 따르면 가구주가 50대인 가정은 평균 저축액이 부채보다 1000만엔가량(약 1억원) 많지만, 40대는 0에 가깝고 30대는 부채가 500만엔 정도 많습니다. 취업빙하기는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세대가 경제력을 회복 못한 채 노년이 되면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겠지요. 만약 이들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되면 이미 은퇴한 부모가 생계를 책임져야 합니다.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80대 노부모가 50대 자식의 생계를 책임지는 '8050 문제'를 사회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습니다. NHK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1월에는 식사를 챙겨주던 80대 노모가 노환으로 숨진 뒤 히키코모리 50대 딸이 영양실조로 사망한 일이 사후 몇 주일 뒤 알려져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이들 노인은 사후에 자식의 삶이 걱정돼 연금을 최대한 저축합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일본 정부는 취업지원 계획을 공개하며 40세 전후 세대를 '인생재설계 1세대'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히키코모리 문제는 그 배경으로 남과 비교하는 문화, 다양한 삶을 인정하지 않는 것 등이 지적되지만 우선 사회 안에 이들의 자리를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합니다. 공식 통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청년층 체감실업률이 역대 최고(25.1%)였고, 50대의 조기 은퇴가 늘어나는 등 이를 그저 먼 이야기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지난해 정치권에서는 국내 20∼40대 잠재적 은둔형 외톨이가 21만명에 달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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