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못 살고, 갈림길에 선 나라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4.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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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②] '네덜란드병' 나이지리아, 소수민족 편 아닌 다국적 석유회사 편에 서면서 민족간 갈등 겪어… "산업 다변화해야"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지난 2월19일 16살의 소년이 수영을 하기 위해 고이 크릭(Goi Creek)을 둘러보고 있다. 고이 크릭은 석유 유출로 황폐화된 지역인, 델타 니제르 근처에 위치한다. /AFPBBNews=뉴스1지난 2월19일 16살의 소년이 수영을 하기 위해 고이 크릭(Goi Creek)을 둘러보고 있다. 고이 크릭은 석유 유출로 황폐화된 지역인, 델타 니제르 근처에 위치한다. /AFPBBNews=뉴스1


잘 살고 못 살고, 갈림길에 선 나라
1959년 네덜란드 흐로닝언 주 앞 북해에서 다량의 가스전이 발견됐다. 유럽연합(EU) 전체에 매장된 천연가스 매장량의 25%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네덜란드는 환호했다. 천연가스가 샘솟아 자원부국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이후 네덜란드는 천연가스 수출로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예상과 달리 경제성장률은 자꾸만 꼬꾸라졌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천연가스를 제외한 다른 네덜란드 산업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천연가스 수출 대금이 유입되자 급격히 늘어난 외화의 유입으로 굴덴화(네덜란드 화폐)의 가치가 크게 올랐고 물가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물가가 오르니 노조는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기업은 조금밖에 올려줄 수 없다며 맞섰고, 사회불안이 커졌다. 기업이 투자를 머뭇거리게 되며 제조업 등 산업의 파국이 시작됐다. 동시에 비싼 물가로 소비자의 수입수요가 증가하면서, 내수 산업의 몰락 추세가 더욱 거세졌다.



이후 1977년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네덜란드병'이라는 용어가 실리면서 한 나라가 자원개발에 의존해 급성장할 경우, 오히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찍는 현상을 '네덜란드병'이라고 지칭하게 됐다. 이처럼 자원이 풍부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자원이 부족한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저조한 현상을 '자원의 저주'라고 부른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남미 전문 칼럼니스트 로시오 카라 라브라도르는 베네수엘라가 경제적 파국을 맞은 이유도 '네덜란드병'이라고 분석했다. 수출의 96%를 오일머니에 의존하던 베네수엘라는 2014년 유가폭락으로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IMF에 따르면 2016년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475%였고, 2021년엔 450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1만238달러였던 1인당 GDP는 지난해 3168달러로 추락했다. 2020년엔 2000여달러로 예상된다. 이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한달치 월급을 모아도 빵 하나 사기가 어렵다. 지난해 2월21일 베네수엘라 3개 주요 대학의 연구 결과 베네수엘라 국민 75%는 2017년 한 해 동안 체중이 평균 11㎏ 줄었다. 응답자의 60%는 "지난 3개월 동안 식량을 사기에 충분한 돈을 가지지 못해 배가 고팠다"고 답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섬 전경 /사진=위키커먼스나이지리아 라고스섬 전경 /사진=위키커먼스
그렇다면 정부 세금의 70%를 외국 석유 회사가 내고 있고, 수출의 90% 이상이 석유인 나이지리아는 어떨까. 1960년대 독립 당시 많은 인구와 풍부한 자원으로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큰 기대를 받았었다. 인구가 많으니 중산층 수도 많아 4000만명에 이르는 중산층이 탄탄한 내수시장 구축에 도움을 줬다. IMF에 따르면 2008년 나이지리아는 9%, 2011년엔 8% 성장하는 등 매년 8~9%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나라로 자리잡았다. (☞'나만 모르는' 2050년 경제강국… 의외의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①] 참고) 

하지만 나이지리아 역시 네덜란드병을 앓고있다는 회의적 시각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나이지리아에게 '지역 강국'은 꿈일 뿐인 이야기라고 추측한다. 현재 갖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잠재력 있는 국가'로만 남을 것이라고 본다. 이 지적이 틀린 것만 같지는 않다. 나이지리아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해 빈민층 인구수가 1억명을 넘는다. 분명 석유가 터지는 나라인데 말이다.

김예슬은 '나이지리아 국가실패의 배경에 대한 연구'에서 △다국적 기업 △나이지리아 사회 내부의 다종족·다종교 문제 △나이지리아에 만연한 부정부패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즉 '국가실패'로까지 보이는 나이지리아가 이 같은 이슈에 잘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자원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나이지리아는 '미완의 잠재력'으로만 남았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인구의 절반은 기독교를, 나머지 절반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 종교 갈등이 첨예하다. 언어별로 분류할 경우 무려 250개의 민족이 살고 있어 민족간 이해관계도 첨예하다. 특히 라고스를 제외한 북부·동부·서부·중서부의 옛 4개주에는 주요 4개 부족이 살고 있는데, 석유는 이곳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니제르 델타 지방에 90% 이상 집중매장돼있었다. 민족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나이지리아 정부가 자원으로부터의 이권을 분배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 같은 조정 역할에 실패했고, 이는 나이지리아에서 내전이 끊이지 않는 주요 원인이 됐다. 김예슬은 "니제르 델타 지방에 집중 매장된 원유 생산은 이 이익을 얻기 위한 다종족들간 민족 분쟁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켰다"면서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를 중재하기 보다는 다국적 기업과 연대,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다수의 소수민족을 자원의 혜택으로부터 소외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로 인해 내전이라는 국가 운영 실패의 전형적인 결과가 나타났고 국가의 경제 발전에도 커다란 걸림돌이 됐다"고 덧붙였다.
세계적 석유회사 쉘(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 /사진=뉴시스세계적 석유회사 쉘(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 /사진=뉴시스
나이지리아가 어떻게 소수민족의 편이 아닌, 다국적 석유회사의 편에 섰는지는 니제르델타 지역의 오고니랜드에 거주했던 인구 50만명의 소수민족, 오고니족 이야기에 잘 나타난다.

1950~1960년대까지만해도 나이지리아는 세계 최대 코코아 수출국으로서 여타의 농업 작물도 많이 경작했다. 하지만 1956년 석유가 발견된 뒤, 급격히 석유위주로 국가 산업이 재편됐다. 오고니족이 살고 있던 오고니랜드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니제르델타 남동쪽에 위치한 오고니랜드에서는 오고니족이 대대로 코코아, 고무, 면, 땅콩 등을 재배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1957년 오고니랜드에서 상업성 높은 석유가 발견되면서, 쉘(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과 쉐브론(Chevron Corporation) 등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이 지역에 눈독을 들였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오고니족 등 소수민족 편이 아니라, 다국적 석유회사의 편이었다. 나이지리아의 권력층은 장기간 군부 정권의 집권을 바탕으로 했는데, 이들은 다국적 기업과의 합작계약 등을 통해 높은 유가에 따른 수출 이익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지리아 정부의 정책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그 이익을 '빼앗는 데' 초점이 있었다.

1979년 나이지리아 헌법개정안에는 "연방정부는 모든 나이지리아 영토에 소유권을 가지며, 땅값은 취득 당시 토지에 있는 작물의 가치로 보상을 끝낸다"고 적혀있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렇게 획득한 땅을 석유회사들에게 나눠줬다"고 주장했다. 오고니족 역시 "나이지리아 정부와 석유 회사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땅을 포기하라고 강요해왔다"고 항변해왔다.
지난 2월20일 나이지리아 니제르델타 오고니랜드에서 한 어부가 석유 유출로 황폐화된 뻘을 바라보며 보트를 밀고 있다. /AFPBBNews=뉴스1지난 2월20일 나이지리아 니제르델타 오고니랜드에서 한 어부가 석유 유출로 황폐화된 뻘을 바라보며 보트를 밀고 있다. /AFPBBNews=뉴스1
순식간에 오고니족은 경작하던 땅을 빼앗기고, 대대로 해왔던 농사일도 하지 못하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석유 작업 도중 유출된 기름 때문에 땅도 오염돼갔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고, 뻘 바다 어족자원도 씨가 말랐다. 공동 우물에서 석유냄새가 나며 마실 물도 없어졌다. 식량은 부족해졌지만 물가는 상승했다.

참다못한 오고니족은 1990년, 민족 출신 유명 작가 켄 사로위와를 대표로 '오고니족생존운동'(MOSOP)을 창설했다. 부족은 △오염 실태를 조사하고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원유 개발이익을 주민에게 분배하라 △부족 자치권을 보장하라 등의 생존권 요구를 담은 오고니 권리장전을 제정했다. 이들은 나이지리아 소수부족 인권연대기구(UNPO)와 더불어 평화 집회 및 시위를 벌였다. 1993년 1월 평화행진에는 부족 성인 전부인 30만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여기서 나이지리아 정부는 가히 재앙적인 태도를 취했다. 소수민족이 아닌 다국적기업의 편에 선 것이다. 1995년 11월, 켄 사로위와를 비롯 9명의 원주민운동가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존 메이어 전 영국 총리를 비롯 전세계는 이 사형을 "사법적 살인"이라고 비난했지만 나이지리아 정부는 듣지 않았다. 켄 사로위와는 죽기 전 "나는 셸이 델타에서 벌인 생태계 범죄가 곧 정당한 처벌을 받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예언이 통한 건지, 이제 세계는 셸을 켄 사로위와의 죽음을 야기한 주범으로 지목한다. 셸은 2009년 나이지리아 군부세력과 손잡고 반정부 환경 운동가 켄 사로위와를 탄압, 사형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로 미국의 뉴욕 법정에 섰고, 유족 측에 1550만달러(약 196억원)를 보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나아가 세계는 오고니랜드를 파괴한 주범 역시 셸이라며 이를 인정하고 보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2017년 11월 국제 인권운동단체 앰네스티는 오고니랜드에서 군부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 사건에 셸이 연루돼 있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이어 "살인, 강간, 고문에 셸이 가담했다는 증거도 있다"며 "목격자들의 진술서에 따르면 셸은 나이지리아 주 보안기관으로부터 훈련받은 잠복 경찰 조직을 운영했다. 나이지리아 정부 역시 셸의 편이었다. 1993년 4월30일 MOSOP가 셸의 새로운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반대하는 시위를 할 때 정부 수비병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눠, 1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당시 군경의 뒤따른 반발로 약 1000명이 사망하고, 3만명이 집을 잃었으며, 마을이 파괴됐다. 그럼에도 셸은 1993년 작업량을 늘리기 위해 파이프라인 공사를 시작했고, 시추작업 중단 이후에도 시설이나 장비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 환경단체는 파이프라인 공사를 시작으로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장비나 송유시설이 광범위한 오염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도 수 천 개의 기업 내부문서와 목격자들의 증언을 검토한 결과 1990년대 석유 생산지역인 오고니랜드에서 시위자들을 침묵시키는 잔인한 작전에 셸이 연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라고스에 설치된 오일 플랫폼 /사진=위키커먼스라고스에 설치된 오일 플랫폼 /사진=위키커먼스
소수민족 대신 쉘, 엑손모빌, 쉐브론텍사코, 토탈, 아지프 등 다국적 석유회사의 손을 잡은 나이지리아 정부. 그렇다면 이들의 바람대로 나이지리아는 이들과 함께 순항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나이지리아에선 농업 등 기존 산업이 무너지고 석유 산업만이 주를 이루게 됐는데, 다국적 석유 기업은 자사의 기술과 노하우 등을 나이지리아 국내 기업과 공유하거나 이를 제공하지 않고 배타적 독점을 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규모와 자산, 경영전략 등도 국내 기업에 비해 월등해 나이지리아 국내 기업이 성장할 틈이 없다. '라틴아메리카 구조주의' 경제학자 푸르타도(C.Furtado)에 따르면 다국적 석유회사는 자본집약적이고 노동절약적인 기술을 사용했기에 딱히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지 못했다.

나이지리아는 '신식민주의'라고 불리는 다국적 기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결국 국민의 편에 설 수 있을까. 다행히 나이지리아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변화와 국가 발전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조나단 굿럭 대통령(임기 2010년5월~2015년5월)은 스스로를 '농부의 대통령'이라 칭할 만큼, 농업 등 타 산업 육성이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육성에 치중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재정장관 엔고지 오콘조-이웨알라도 "정부는 지금이 석유의존적인 경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 구조 개편과 발전 토대 마련 이외에도, 나이지리아가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해야할 노력들은 산적해있다. 다음 편에서는 나이지리아가 강국으로 나아가기위해서 꼭 극복해야할, '사기'에 대해 짚어본다. 사람들이 왜 나이지리아를 '사기꾼의 나라'라고 부르는지, 나이지리아에 만연한 사기를 토대로 말이다.

참고문헌
나이지리아 '국가실패'의 배경에 관한 연구, 숙명여대, 김예슬
나이지리아 그림자경제에 대한 탐색적 연구, 부산대, 김준수
개발도상국의 도시빈곤과 KOICA의 도시개발 원조사업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 방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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