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놂] "거리에서 춤추고 그림 그려 입에 풀칠은 하냐고?" (영상)

머니투데이 이상봉 기자 2019.04.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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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뷰] 크로키키 브라더스, 5년간 드로잉서커스 길거리 공연… "시민들과 성숙한 거리공연 문화 만들어 나가야"

편집자주 #거리공연 #춤 #그림 #드로잉서커스 #크로키키브라더스 해시태그(#) 키워드로 풀어내는 신개념 영상 인터뷰입니다.

관객들과 함께 춤추고 즐기는 사이에 작품 하나가 순식간에 완성된다. /사진=이상봉 기자관객들과 함께 춤추고 즐기는 사이에 작품 하나가 순식간에 완성된다. /사진=이상봉 기자


"저희는 거리공연이 유일한 일이자 직업이에요. 수입구조가 부족하다고 다른 일을 하진 않습니다. '배고픈 딴따라'로 보는 시선을 종종 느끼죠."

경쾌한 음악에 뚱한 표정으로 익살스러운 춤을 추는 두 명의 남자. 청바지에 빨간 멜빵을 입고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이 마치 데칼코마니(decalcomanie) 같다. 30초 만에 쓱쓱 그림을 그리는 손놀림에 길을 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소개나 인사는 따로 없다. 갑자기 등장해 아무 말 없이 오직 '춤'과 '그림'으로 관객들과 소통한다. 드로잉과 서커스를 접목해 새로운 공연 장르를 개척한 길거리 아티스트 크로키키 브라더스(CroquikyBrothers)다.

지난달 9일 서울 삼각산 시민청에서 크로키키 브라더스 멤버 임동주씨(35)와 우석훈씨(37)를 만났다. 소규모 동네 축제가 예정된 날, 16도의 화창한 주말 날씨와 무료 공연인 덕에 150여명의 동네 사람들이 한곳에 모였다.



크로키키 브라더스가 두 개의 그림을 합쳐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크로스 드로잉(cross drawing)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크로키키 브라더스 공식 홈페이지크로키키 브라더스가 두 개의 그림을 합쳐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크로스 드로잉(cross drawing)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크로키키 브라더스 공식 홈페이지
공연이 시작되자 두 멤버는 등을 돌려 각자의 그림에 몰두했다. 잠시 후 두 개의 그림을 합치니 완벽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됐다. 이외에도 관객을 무대로 불러 함께 하는 순서, 느낌대로 추는 막춤 등 30분 정도 이어진 공연에 사람들의 웃음과 박수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과연 그림만으로 관객들이 호응할까' 의심했다는 기자의 말에 우씨는 "그림을 가장 큰 메인으로 두고, 서커스로 위트 있는 상황을 연출해 관객들과 즐겁게 논다"며 "아무래도 무표정으로 코믹한 춤을 춘 부분에서 관객들이 많이 호응해 주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 2015년 팀을 결성한 크로키키 브라더스는 무대·길거리를 가리지 않고 현재까지 300회가 넘는 공연을 해오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기인 실력파 퍼포머(performer)이지만 아직까지도 '거리공연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어?' '푼돈으로 동냥하는 거 아냐?' 등의 부정적인 시선을 종종 느낀다고.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어'란 인식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다 가난하게만 생각하는 건 너무 오래된 생각인 거죠. 장사가 잘 되는 집이 있고, 장사가 잘 안되는 집이 있는 것처럼 길거리 공연도 여느 직종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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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광장을 지나다 보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게 거리공연이라지만 이런 문화가 대중들에게 다가선 지는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최근 '워라밸', '여유있는 삶', '차없는 거리' 등의 단어들이 나오면서 광장을 활용한 공연 문화가 활발해졌다고 임씨는 말한다.

"큰 연극집단이나 공연단체는 40~50년 전부터 무대에서 활동을 해왔어요. 거리공연은 설 자리도 없었을뿐더러 '재주 부려서 구걸한다'는 안 좋은 인식 때문에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었죠. 사람들이 여유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광장이나 거리공연을 찾으시는 것 같아요."

말을 하지 않는 '넌버벌 공연(non-verbal performance)'에 일본, 스페인, 호주, 대만 등 해외에서도 인기다. 호주 멜버른에서 크로키키 브라더스의 공연을 본 현지 관객들은 '이미 세 번이나 공연을 찾아다녔다', '처음 본 장르의 퍼포먼스다' 등 호평을 쏟아냈다고.

'해외에서 인기'란 말에 우씨의 어깨는 한껏 올라갔다. "공연을 하고 나면 자신이 K-POP 팬이라면서 말을 먼저 걸어오는 분들도 계셨어요(웃음). 공연 자체가 언어를 안 쓰는 공연이라 쉽게 이해하시고 즐겨주시는 것 같아요."

우씨는 거리공연 문화가 더 발전하기 위해선 공연자들도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입장벽이 낮아 누구나 자신의 춤과 노래를 시도할 순 있지만 공연자로서 책임감이나 프로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는 "거리공연이라고 쉽게 접근했다간 큰코 다친다"며 "공연을 하다가 중단하거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하는 것은 되려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배고픈 딴따라'가 아닌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부족함을 많이 느끼죠. 하루빨리 시민들이 부담 없이 거리공연을 즐기면서 성숙한 문화가 자리 잡히면 좋겠어요. 그때가 되면 거리공연의 한 팀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것 같습니다. 많이 찾아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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