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위치한 속초, 고성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된 전신주의 모습. 붉은 원 안에 스파크로 인해 그을린 흔적이 있다.2019.4.5/사진=뉴스1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저녁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전신주에서 시작된 불이 인근 야산으로 옮겨 붙은 게 이번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전 개폐기, 산불 발화점 입증되면 대규모 소송 전개될 수도
일부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상태의 개폐기라면 이물질에 의해 스파크가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관리부실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손배배상 책임여부다. 박의준 변호사(지급명령서비스 머니백 대표)는 “넓은 지역에 걸쳐 큰 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인정 범위를 두고 다툼이 있을 것”이라며 “통상의 범위를 벗어난 예견하지 못한 특별손해에 대해선 인정받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민법엔 특별손해는 상대방이 그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해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박 변호사는 “강풍으로 불이 번져 막대한 손해가 발생한 만큼 그 손해가 예견가능했는지에 대해 다툼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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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뿐 아니라 개폐기 납품업체도 문제될 수 있다.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다만 제조물 결함이 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그 결함을 알 수 없거나 현행 법령 기준을 준수했음에도 발생한 경우 등엔 면책될 수 있다.
2017년 7월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이네즈의 휘티어 산불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 로이터=뉴스1
미국에선 산불 배상책임으로 대형 전력공급업체가 파산보호신청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캘리포니아주 역사상 최악의 대형 산불인 일명 '캠프파이어'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된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G&E)은 지난 1월 말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감당하지 못하고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PG&E는 지난 2월 말엔 '캠프파이어'를 일으킨 게 자사의 시설물이란 점을 시인하는 문서를 미 연방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기도 했다. 서류에 명시된 확정된 배상금만 105억 달러(약 11조8000억원)다. 집단 소송이 이어지면 추가 배상액은 최소 300억 달러(약 33조63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은 집단소송과 징벌적 배상이 모두 인정된다. PG&E는 잠재된 배상책임을 법원 감독하에 처리한 뒤 기업회생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선택했다.
PG&E의 시인에 앞서 미국 수사당국은 PG&E의 고압전선이 강풍으로 끊어져 지난 2017년 최소 17건의 산불 발화 원인이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지난해 11월에 발생했던 또 다른 캘리포니아 산불도 PG&E에 책임이 있는지 수사가 진행중이다.
강원 고성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 발생 이틀째인 5일 오후 속초 장천마을 인근의 민가가 불에 타 있다.
한전이 화재 원인에 대해 지난 5일 발빠르게 "개폐기 연결전선에 이물질이 붙어 스파크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기술적으로 '외부요인'없이 폭발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도 막대한 배상책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본사 부지를 현대차에 10조5000억원에 팔고 흑자 경영을 이어가던 한전은 지난해 2000억원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도 약 2조4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돼 '2019년 재무위기 비상경영 추진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일까지 집계된 산불 피해면적은 고성·속초 250㏊, 강릉·동해 250㏊, 인제 25㏊다. 사망자는 고성에서 1명, 부상자는 강릉에서 1명이 발생했다. 주택 300여채도 불에 탔다. 농업시설 피해액도 잠정적으로 52억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산불 규모에 피해 인명피해는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최소화됐지만 경제적 피해는 적지 않다.
속초에서 로펌을 운영하고 있는 조동용 변호사(강원지방변호사회장)는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기 때문에 국비가 지원돼 한전의 책임이 경감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조 변호사는 "관리책임이 있더라도 막대한 배상액으로 한전 적자가 가중되면 정부도 부담이 되고 전기료 인상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우선 극심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