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모르는' 2050년 경제강국… 의외의 나라?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4.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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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①] 매년 8~9% 괄목적 경제성장… 서아프리카 지역강국 나이지리아, 최근 '지역권력' 잃고있다는 지적 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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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2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이코이섬 전경/AFPBBNews=뉴스1지난 2월12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이코이섬 전경/AFPBBNews=뉴스1


'나만 모르는' 2050년 경제강국… 의외의 나라?
얼마 전 독일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발단은 독일인 아주머니의 질문이었다. 그는 대화하던 중 내게 "그런데 어느 나라 사람이랬죠?"라고 질문했다.

내가 한국이라고 답하자 그는 "그게 어디냐"고 되물었다. 한국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내가 "서울이 수도인 나라" "북한과 분단 상태인 나라" "삼성·LG·현대의 나라" 등 다양한 설명을 해봤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그 뒤의 말은 더 황당했다. 그는 내게 "너희 나라에서는 안전하게 밖을 돌아다닐 수 있냐"고 묻고, "지하철도 있냐"고 물었다.



'대체 한국을 어떤 나라라고 생각하는 거지?'란 생각에 억울한 심정까지 들었다. 때마침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국민소득·구매력 기준으로 한국을 △미국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스페인 △호주 등과 함께 전세계 10대 선진국으로 꼽았단 소식을 들은 직후였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지내다가, 문득 예전에 본 예능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한 예능인은 2017년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나 출신 예능인 샘 오취리를 향해 "가나에도 TV가 있냐"거나 "공중파·케이블 방송국이 있냐" "지하철도 다니냐" 등의 무례한 질문을 쏟아냈다. 해당 예능인은 방송 이후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비판한 이들이 국가 가나라든가, 혹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잘 알고 있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시 전경 /사진=위키커먼스나이지리아 라고스시 전경 /사진=위키커먼스
아프리카 대륙에선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나이지리아 △이집트 △케냐 △에티오피아 등이 지역강국(Regional power)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국가인지, 얼마나 발전했는지,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 독일인 아주머니만 탓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국가들도 모두 흥미로운 지점을 지니고 있지만, 나이지리아는 특히 흥미롭다. 나이지리아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아프리카에서 가장 경제규모가 큰 국가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7년 나이지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은 3757억7071만3742.8달러로 세계31위다. 이는 아프리카의 강국 남아공 보다도 큰 경제규모다. 같은 해 남아공은 3494억1934만3614.1달러의 GDP로 세계33위를 기록했다.

나이지리아의 경제규모가 이토록 큰 건 어마어마한 인구수 덕이다. '아프리카의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이자 세계에서 7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특히 청년 인구는 3900만명으로, 인도와 중국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많다.

높은 청년 인구수와 여타의 성장 잠재력 덕에 나이지리아는 앞으로 수십년 안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2011년 2월 씨티그룹은 "나이지리아는 2010~205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GDP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IMF에 따르면 2008년 나이지리아는 9%, 2011년엔 8% 성장하는 등 매년 8~9%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7월11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시에 미술 조형물이 설치돼있는 모습. 라고스시는 조형물, 벽화, 그래피티 등을 통해 시를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며 이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AFPBBNews=뉴스12017년7월11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시에 미술 조형물이 설치돼있는 모습. 라고스시는 조형물, 벽화, 그래피티 등을 통해 시를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며 이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AFPBBNews=뉴스1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도 "나이지리아는 2050년 세계 GDP 순위 14위의 국가로 매우 괄목적인 성장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PwC에 따르면 2050년 나이지리아는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러시아,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 이어 14위 GDP(PPP기준)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PwC는 한국이 2016년 13위에서 2050년 18위로, 이탈리아는 12위에서 21위로, 캐나다는 17위에서 22위로, 스페인은 16위에서 26위로, 호주는 19위에서 28위로 밀려날 것으로 예상했다.


풍부한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한 경제 성장률에, 월등한 경제규모까지 더해지며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전통적인 '지역강국'(Regional power)으로 꼽혀왔다. 지역강국이란 특정 지역에서 정치·군사·경제 부문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를 말한다.

미국이나 중국은 지역 강국이면서 동시에 강대국 혹은 초강대국인 국가이며, 인도네시아나 호주는 지역 강국이지만 대륙 자체가 전반적으로 국력이 작아, 국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가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수십년간 나이지리아가 아프리카 대륙의 지역강국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최근 몇년 사이 회의적 시각이 빈발하고 있다. 아프리카권 언론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엔 '아직도 나이지리아를 지역강국이라 부를 수 있냐'는 내용의 글이 자주 올라온다. 꾸준한 경제 성장세에,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던 나이지리아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나이지리아가 보코하람(Boko Haram)수습에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보코하람의 차량 폭탄 테러 현장. /AFP=뉴스1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보코하람의 차량 폭탄 테러 현장. /AFP=뉴스1
보코하람은 2002년 설립돼 2009년부터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목표로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군사 도발에 나선 이슬람 무장단체다. 국제사회엔 2014년 4월 나이지리아 동북부 도시인 치복의 한 학교를 급습, 여학생 276명을 납치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올루솔라 오구누비(Olusola Ogunnubi) 남아공 줄루랜드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남아공 정치학회지 폴리티콘에 '실패한 지역강국? 보코하람의 진행과 나이지리아의 국제위상'이라는 글을 기고해 "이어진 보코하람 활동 결과, 나이지리아의 지역강국 지위는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 이유로 나이지리아가 지역강국의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며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과 싸우기위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많이 의지해왔다. 아주 작은 국가들에게까지 말이다"라고 말했다.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에 속수무책이다. 2009년부터 보코하람의 공격으로 2만여명이 살해됐지만, 보코하람의 테러는 2019년 현재까지도 근절되지 않았다. 나이지리아 국토의 상당 부분이 보코하람 통제하에 있으며, 나이지리아 국민은 계속 위협당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정부군도 보코하람에 맞서싸우고 있지만 매번 정부군의 군사력이 부족하다는 점과 무기가 적다는 점만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꼴이 됐다. 민간 희생도 이어졌다. 2013년 4월, 정부군이 보코하람과 싸운 보르노 북동부의 어촌마을에서 185명이 사망하고 2200채의 집이 파괴됐다.

지난 1월28일에도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 북서부의 마을 란(Rann)을 공격해 최소한 60명이 숨졌다. 오사이 오지고 국제사면위원회 나이지리아 대표는 "이는 지난 10년간의 보코하람 공격 중 가장 잔인했다"면서 "목격자들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공격 하루 전 이 지역을 포기, 시민들 보호에 완전하게 실패했음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보코하람은 약 2주 전 같은 곳을 공격해 나이지리아 정부군을 몰아낸 바 있다.
나이지리아 아다마와의 난민촌에서 한 소녀가 뛰어가고 있다. 소녀는 보코하람에게 마을이 점령당해 난민촌으로 왔다. /AFPBBNews=뉴스1나이지리아 아다마와의 난민촌에서 한 소녀가 뛰어가고 있다. 소녀는 보코하람에게 마을이 점령당해 난민촌으로 왔다. /AFPBBNews=뉴스1
즉 나이지리아가 보코하람과의 전쟁에서 실패하고, 군사력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나이지리아를 지역강국으로 인정할 수 있냐"는 회의론이 커진 것이다. 지난해 10월30일 오비 아냐디케 국제인도주의 뉴스에이전시 IRIN 편집인은 WPR(월드폴리틱스리뷰)에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길을 잃었는가'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글에서 "나이지리아 군사력에 대한 평가는 과장돼있다. 나이지리아 군은 무기 부족으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칼럼니스트 로드 에이킨스 아드세이는 가나 매체 '모던가나'에 '나이지리아, 감소하는 지역권력?'이란 글을 기고해 "나이지리아는 서아프리카의 유일한 지역강국이지만, 이 권력은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1월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말리 내전'을 나이지리아 지역 권력이 감소하는 사례로 들었다.

아드세이는 "굿럭 조나단 나이지리아 대통령(임기 2010년5월~2015년5월)이 '나이지리아는 ECOWAS(서아프리카 경제협력체)의 일원으로서 큰 병력지원을 약속한다'고 말했지만, 나이지리아는 결국 군사능력과 자산 등을 동원하지 못했다. 오히려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프랑스가 최신식 라파엘 전투기와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말리 북부의 무장대원을 몰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년간 무장대원들에 점령됐던 말리는 프랑스의 진출 1달 만에 잠재워졌다. 지역민은 프랑스의 노고에 찬사했다"며 "이는 프랑스가 초강대국(미국 같은 군사적·경제적 대국)은 아니지만, 유럽의 지역강국으로서 아직까지 아프리카 문제에 힘이 있다는 걸 입증하는 사례였다"고 분석했다. 즉 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해 나이지리아와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말리 내전 문제에, 과거 말리를 지배했던 프랑스는 적극 개입해 세력을 떨친 반면, '지역강국' 나이지리아는 아무런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한 시장 /사진=위키커먼스나이지리아 라고스의 한 시장 /사진=위키커먼스
나이지리아는 수년내에 내부적 문제를 극복하고 지역강국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점차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가고만 있는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나이지리아가 지역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할지 짚어본다. 나이지리아를 장악한 다국적기업과 관련해서 말이다.

☞[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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