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제약업계 구조조정 시작됐다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민승기 기자 2019.03.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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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력, 연구개발 능력 없는 영세 제약사 퇴출 불가피

정부 주도 제약업계 구조조정 시작됐다


정부가 건강보험 등재 순서에 따라 제네릭(복제약)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계단식 약가 산정'을 부활시키기로 한 건 제네릭이 정부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는 판단 때문이다. 누구나 손쉽게 제네릭을 만들 수 있다 보니 약에 문제가 생겼을 때 수습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제약업계는 새 제도에서 일정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제약사는 시간이 갈수록 도태는 구조조정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과도한 제네릭 경쟁으로 좀처럼 잡히지 않던 리베이트 관행을 개선하는 데도 일정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한다.



◇통제 범위 벗어난 제네릭 = 생물학적 동등성(이하 생동성) 시험을 제약사들이 집단으로 모여 수행할 수 있다 보니 제네릭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생동성 인정품목 현황을 보면 2010년 직접 생동성 시험 건수는 247건으로 공동 생동성 시험 건수 190건보다 많았다. 그러나 2016년이 되자 전체 생동성 시험 1112건 중 자체 시험은 128건에 불과하고 공동 시험이 984건으로 상황이 급반전 됐다.



결국 정부 통제도 쉽지 않았다. 발암 물질인 발사르탄이 함유된 고혈압 치료제 사태 때만 봐도 판매 중지 품목이 한국은 174개로, 영국(5개)이나 미국(10개), 캐나다(21개)를 크게 웃돌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제네릭이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 발사르탄 같은 불의의 사태가 터졌을 때 뒷수습이 어렵다"며 "약값 산정 제도를 활용해 제네릭 진입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오늘날 공동 생동성 시험은 대형·중견 제약사와 소형·영세 제약사가 공생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특허가 풀리는 오리지널 의약품 제네릭 하나를 만들 때 대형 제약사 1곳에 19개 소형 제약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한다. 생동성 시험 비용 2억원을 각자 1000만원씩 부담한다. 생동성 시험은 대형사가 주관한다. 소형사들은 대형사에 묻어가는 대신 대형사에 의약품위탁생산(CMO)을 맡긴다.


◇제네릭 시장 구조조정 가속 = 하반기부터 새 제도가 시행되면 영세 제네릭 업체부터 순차적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 해 100개 제네릭이 나온다고 가정했을 때 자본력이 있는 곳은 100개 생동성 시험 모두 소화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한 해 1~2개조차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대부분 품목에서 건강보험 등재 기준 20개 리스트에 들지 못하면서 약값이 낮게 책정된다.

게다가 식품의약품안전처마저 얼마 전 공동 생동성 시험 품목 허가 수를 제한하고 3년 뒤에는 아예 공동 생동성 시험을 못하게끔 허가제도를 개편했다. 복지부 약가 개편보다 더 급진적이다.

제약업계는 영세 제약사부터 구조조정에 수년 뒤에는 일정 규모를 갖추지 못하거나 신약 개발 능력이 없는 제약사는 퇴출을 면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도입약에 경쟁력이 있든지, 신약에서 캐시카우를 창출해야 제네릭 경쟁에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관행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경쟁 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공동 생동성 시험을 통해 CMO 매출을 올렸는데 제도가 바뀌면 이 부문에서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길게 보면 경쟁자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경쟁 완화에 따른 의약품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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