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꼭 정답은 아닌 시대"…젊은이에게 배워야

머니투데이 권성희 콘텐츠총괄부국장 2019.03.2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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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고딩 아들이 공부를 안 하고 게임만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게 조언한다. “좋아하는 게임을 시키셔요. 프로게이머 같은 거요.” 이 사람들은 우리 아들 세대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라고 왜 그런 말을 안 해 봤겠는가.



“엄마는 네가 꼭 공부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게임이 좋으면 게이머가 돼도 좋아. 아니면 게임 해설해주는 게임BJ인가? 그런 거도 좋아.”
“엄마, 게이머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차라리 공부가 쉬워. 게임BJ도 그걸로 돈 벌어 먹고 살려면 얼마나 힘든데…”
“아니 그럼 게임을 왜 그렇게 해? 게임으로 먹고 살기 어려운거 알면서. 쉬운 공부나 하지. 미래를 좀 생각하라고.”
“엄마, 엄마는 좋아하는 거로 꼭 돈 벌어 먹고 살아야 돼? 게임은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야. 공부는 재미 없잖아. 엄마도 아이돌 좋아서 찾아 보고 콘서트도 가잖아.”
“엄마는 회사 다니며 돈 벌잖아.”
“나도 학교 다녀. 졸업해서 돈 버는 거는 내 일이고. 돈 벌어 잘 먹고 잘살고 싶은 마음은 엄마보다 내가 더 크니까 내 미래는 나한테 맡겨 둬.”

"경험이 꼭 정답은 아닌 시대"…젊은이에게 배워야


그래도 아들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나는 아들이 한창 힙합을 좋아할 때 래퍼가 되라는 제안도 했다.



“랩 좋아하면 래퍼가 돼라. 유명한 래퍼 되면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낫잖아.”
“엄마, 나는 유명해지는 거 싫어. 돈은 많이 벌어 편하게는 살고 싶은데 사람들이 나를 막 알아보고 그런거 싫어. 나는 조용히 평범하게 살고 싶어.”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느 한 분야에서 특출나게 뛰어난 인물이 되는 것, 사람들에게 잘한다고 인정 받아 유명해지는 것, 그래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었는데 아들은 나의 이런 성공관을 깨버렸다.

최근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다. 아들은 2000년대생이지만 90년대생과 공통점이 많았다. 내겐 생각도 없고, 변변한 꿈도 없고, 개념도 없어 보이는 아들이지만 책을 읽은 후 아들 나름의 사고체계와 꿈과 개념이 있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내 ‘문법’으로만 재단해 왔다는 반성이 들었다.


지금 20대인 90년생은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막 기업에 입사하기 시작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사회집단이 됐다. 아들과 대화하면서, 또 ‘90년생이 온다’를 읽으면서 20대는 물론 10대 청소년들에게 ‘꼰대’ 소리를 듣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봤다.

1. 쓰는 언어가 다를 뿐이다=최근 모 연예인에게 ‘금명간 영장’이 청구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금명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금명간'의 뜻을 몰라 검색하는 사람이 많아서였다. 속으로 ‘내 아들 같은 사람이 많구나’ 생각했다.

가끔 아들과 대화하다 상식적인 한자어나 관용어를 몰라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책을 전혀 읽지 않고 게임과 유튜브 동영상만 파고든 결과라고 판단한다. 그런 아들에게 난 “책을 안 읽으니 무식하지. 책 좀 읽어라”고 구박한다. 그러면 아들은 요즘 자기들이 쓰는 외계어 같은 말들을 몇 개 읊으며 뜻을 묻는다. 내가 모른다고 하면 아들은 “엄마 왜 그렇게 무식해? 그래서 기자 하겠어?”라고 한다.

서로 쓰는 말과 생각이 다를 뿐 지식의 문제가 아닌데 아들에게 내 언어를 강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세대에 따라 변하니 신세대는 기성세대의 언어를, 기성세대는 신세대의 언어를 잘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서로 배우고 이해하려는 성의가 필요하다.

2. 근면·성실이 다가 아니다=올해 고3이 된 아들이 몇시간째 유튜브를 보고 있길래 참다 참다 “너처럼 공부 안하는 고3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유튜브에서 수능 볼 때 국어시험 문제 푸는 요령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문을 다 읽고 문제 풀면 시간이 부족하고 문제부터 읽고 지문을 찾으면 놓치는게 있어서 틀린단 말야. 유튜브에 보니 좋은 방법이 있네.”
“야, 그럴 시간 있으면 한 글자라도 더 읽고 공부해.”
“엄마, 내 목적은 수능에서 점수를 잘 받는 거야. 이왕이면 효율적으로 문제 푸는 방법을 알고 공부하는게 낫지 그냥 막무가내로 공부하면 시간만 많이 들잖아.”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오래 앉아 근면·성실하게 많은 양을 공부하는게 최고라고 생각해온 내게 아들은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직장에서도 일찍 출근해 우직하게 일하는게 덕목이었던 기성세대에게 90년생의 ‘칼퇴’와 '100% 휴가 소진'은 ‘깍쟁이’ 같이 느껴진다. “10분 일찍 출근해 업무 준비를 하는게 좋겠다”고 하면 “그럼 퇴근 10분 전에 업무 끝내고 퇴근 준비해도 되나요?” 묻는 90년생이 낯설다.

농경사회와 산업혁명 시대 때 덕목이었던 근면·성실이 정보화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젊은 세대에겐 비효율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되지 굳이 일찍 출근해 퇴근시간 넘기고 휴가 반납하면서까지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모습을 연출할 필요가 있냐고 생각할 수 있다.

3. 책 따위 읽지 않아도 된다=아들은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 검색, 특히 동영상에서 얻는다. 성공한 위인들은 독서광이었다고 배워온 내게 책 안 읽는 아들은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주요한 정보축적 수단이 책이었던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며 독서의 중요성을 주입받았던 나와 달리 아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이미 일반화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며 문자보다 시청각 자료에 더 익숙해져 있다. 이런 아들에게 문자를 통한 지식 습득을 강요한다는 것은 무리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제 어떤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셔츠를 직접 만들어 입거나 짐승을 직접 도살하는 것만큼이나 구식이고 심지어 멍청한 일”이 됐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관심 있는 정보만 단편적으로 얻으면 생각이 편협하고 얕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는 믿음 역시 맹신일 수 있다.

4. 충성심은 자기 자신이 먼저="부장이 상을 당하면 조문만 하는게 아니라 부원들끼리 순번을 정해 상가를 지키면서 손님 맞는 거나 이런걸 도와주잖아. 그런데 최근 한 부장이 상을 당해 부원들끼리 상가 지키는 순번을 정하려 했더니 작년 말에 입사한 신입직원이 못하겠다는 거야. 왜 자기가 몇시간씩 상가에 있어야 하냐고." 지인이 들려준 경험담이다.

기성세대에 당연한 회사에 대한 충성심, 상사에 대한 충성심이 90년생에겐 당연하지가 않다.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에 따르면 오늘날 충성심이란 “첫째가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것,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것, 마지막이 회사에 대한 것”이다.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충성의 대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5. 거창한 목표나 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90년생이 온다’에 따르면 기성세대가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면 90년생은 ‘삶의 재미’를 추구한다. 젊은 세대에겐 재미만 있으면 되지 거창한 꿈이나 의미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먹을 것이 넘치는 요즘, 사람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오늘 뭐 먹지”다. '먹방'이 인기를 끄는 것도 “무엇을 먹어야 즐거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7년 8월에 방영된 종편 프로그램 ‘한끼줍쇼’에서 이효리가 했던 말이 화제가 됐던 것도 90년생의 심정을 대변해서다. 그 프로그램에서 MC 강호동이 지나가던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묻자 이경규가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이효리는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조언한다. 꼭 훌륭하지 않아도, 꼭 성공하지 않아도 내가 재미있고 행복하면 된다. 굳이 큰 꿈과 대단한 삶의 목적을 갖지 않아도 된다.

6. 관행이 문제가 될 수 있다=90년생은 개인의 타당한 권리가 침해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지금까지 관행이었던 채용 방식이 공정하지 못해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한다면 분노한다. 과거에 흔히 하던 농담이라도 내가 불쾌하면 문제 삼는다. 공정함, 정직함, 투명함, 개인의 권리 등이 90년생이 중시하는 가치다.

예컨대 “주어진 휴가는 다 쓰라”고 하면서 휴가 갈 때마다 부서 업무가 많다며 눈치 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정직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찬가지로 회의 때 솔직하게 말하라고 한 뒤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것도 이해 못하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 '꼰대'가 된다.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이라고 말할게 아니다. 공정하고 투명하고 말한 것은 지키고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반세기 전에 이미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배워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보다 과거 경험에서 자유로운 청년이 변화에 더 빠른 적응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김주완의 '풍운아 채현국'에 따르면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라며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가끔 시비가 붙을 때 “너 몇 살이야? 민증(주민등록증) 까봐” 하는 분들을 본다. 나이 먹은게 자랑은 아니다. 이제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워야 하는 시대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요즘 젊은 것들은…”이라는 한탄을 하다 "요즘 늙은 것들은…"이라고 눈총 받을 수 있다.

덧붙임)글 속에 인용한 책은 '90년생이 온다'에서 재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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