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빅딜·제재' 압박에 北 '핵실험 재개' 벼랑끝전술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19.03.15 17:49
글자크기

[the300] 최선희 "핵·미사일 실험 재개 곧 결정" 압박...빅딜 요구엔 "강도같은 태도" 단계해법 고수

(하노이(베트남)AFP=뉴스1) 성동훈 기자 = 1일 새벽(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기자회견을 갖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 AFP=뉴스1  (하노이(베트남)AFP=뉴스1) 성동훈 기자 = 1일 새벽(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기자회견을 갖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 AFP=뉴스1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재개를 시사하는 공식 입장을 15일 발표했다. 북미 협상에 관여한 핵심 고위 당국자가 '하노이 노딜' 이후 15일 만에 내놓은 첫 반응이다.

2차 회담 합의 무산 이후 미국의 '빅딜' 요구와 대북제재 압박이 거세지자 '강대강'의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응과 이어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공식 성명 수위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다시 예측불허의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외신을 대상으로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미 협상 중단 고려 △핵·미사일 실험 재개 검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공식성명 발표 예고 등을 핵심으로 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회견 내용은 지난달 28일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인 1일 최 부상이 주도했던 심야회견 내용과 적잖이 겹치지만 수위는 훨씬 높아졌다.



최 부상은 "김 위원장이 미국의 기이한(eccentric) 협상 태도에 곤혹스러워했다"며 "돌아오는 길에 '왜 이런 열차여행을 또 해야 하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노이 현지 회견 당시 "김 위원장이 (북미 협상에) 의욕을 잃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던 발언의 연장선이다.

합의 무산의 책임도 전적으로 미국에 돌렸다. 지난달 28일 확대정상회담 당시 배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들이 적대감과 불신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며 이런 '비타협적 요구' 탓에 미국의 태도가 강경해졌다고 했다. "강도 같은(gangster-like)"이란 거친 표현도 썼다.

최 부상은 특히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미국의 요구에 타협하거나, 이런 식의 협상에 나설 의사가 없다"며 "김 위원장이 짧은 시간 안에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계속할지 말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폐기 외 플러스알파의 비핵화 조치와 이를 넘어서는 '빅딜' 요구를 고수할 경우 협상 테이블을 물리고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부상은 김 위원장이 북한의 추가 행동을 담은 공식성명을 내놓을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이 해체 작업을 중단한 동창리 서해 미사일 발사장이 사실상 정상 가동 상태로 복원된 듯하다고 미 언론들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북한전문매체인 38노스에 따르면 전날 촬영된 상업 위성사진을 토대로 미사일 발사대와 엔진시험대를 재건하려는 공사가 빠른 속도로 계속되고 있다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이 정상가동 상태로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이날 동창리 발사장이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며 분석을 내놨다.  © 로이터=뉴스1  북한이 해체 작업을 중단한 동창리 서해 미사일 발사장이 사실상 정상 가동 상태로 복원된 듯하다고 미 언론들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북한전문매체인 38노스에 따르면 전날 촬영된 상업 위성사진을 토대로 미사일 발사대와 엔진시험대를 재건하려는 공사가 빠른 속도로 계속되고 있다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이 정상가동 상태로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이날 동창리 발사장이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며 분석을 내놨다. © 로이터=뉴스1
북한의 회견 배경과 관련해선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일단 바로 협상 테이블을 엎으려는 의도로는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추가 협상 중단과 핵실험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아직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은 데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친분'과 '우호적 관계'를 의도적으로 부각했다는 점에서다.

최 부상은 "두 최고지도자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chemistry)도 훌륭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삼갔다. 판을 완전히 깨기보다는 '톱다운' 방식의 소통 구조를 유지해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유도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미 고위 당국자들의 '빅딜' 수용 압박과 대북제재 옥죄기를 마냥 두고볼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은 최근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완전한 비핵화 없이 제재해제는 없다"며 일괄타결식 빅딜을 누차 강조했다. 고위·실무급 북미 협상을 맡은 폼페이오 장관과 스티브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역시 "말보다 행동으로 비핵화를 하라", "점진적 비핵화는 없다"며 볼턴 보좌관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전문가패널이 북한의 대북제재 위반 사례를 적시한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제재 문제 해결이 급선무"라며 "합의 무산 후 제재 압박이 더 심화할 가능성을 우려해 조기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신중한 반응을 내놨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최 부상의 발언 만으로 현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며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사실상 공을 다시 미국에 던진 상황이어서 트럼프 대통령 등 미 행정부가 내놓을 반응이 1차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북한의 의도를 명확히 분석한 후 대응 카드를 공개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확인한 후 공식 성명의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핵실험 재개를 선택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도 완전히 궤도를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유지할 마지노선이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다. 김 위원장이 핵실험 재개와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나설 경우 한반도가 돌이킬 수 없는 격화·급변의 정세에 휘말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