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알았나…'증거인멸' SK 임원 구속

머니투데이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9.03.1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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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상보) '안전성 검사보고서' 前직원이 폐기…살균제 생산당시 '유독성' '용도' SK 인지 여부에 초점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알았나…'증거인멸' SK 임원 구속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 고위 임원이 결국 구속됐다. SK가 제조한 가습기살균제 원료의 유해성을 암시하는 초기 연구 보고서 등 핵심 증거를 인멸한 혐의다. 이 고위 임원은 추가적으로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 신병 확보 필요성이 인정됐다.

14일 서울중앙지법 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인멸 및 교사 혐의를 받는 박철 SK케미칼 부사장(53)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후 박 부사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법원은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두고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그러나 박 전 부사장과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모 전무와 양모 전무 등 임원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법원은 "각 피의자의 지위 및 역할, 관여 정도, 주거관계, 가족관계, 심문태도 등에 비추어 구속 사유와 그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방적인 지시를 받는 실무자에 불과해 구속은 과하다는 취지다.



앞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재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지난 12일 이들에 대해 증거인멸 및 교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SK케미칼 임직원들은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SK케미칼이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 물질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 및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등이 인체에 유독하다는 점을 알고도 이를 생산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회사에 불리한 관련 자료를 조직적으로 폐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지난 2011년 당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이들의 폐에서 섬유화 증세가 일어나 영아와 임산부를 비롯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SK케미칼이 당시 제품 원료를 생산할 당시 이 원료가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고,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제품 생산을 강행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최근 검찰은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가습기 메이트를 개발하던 지난 1995년 서울대학교 수의과학과 이영순 교수팀에 제품에 쓰인 살균제 원료 CMIT·MIT 성분의 유독성에 대해 의뢰한 안전성 검사 보고서가 SK케미칼 전직 간부에 의해 폐기된 정황을 포착했다. 이 보고서엔 CMIT·MIT 성분으로 인해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현상이 보이는 만큼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SK케미칼은 지난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1차 수사'에선 수사 예봉을 피해갔다. SK케미칼은 1차 수사 당시 주된 혐의를 받았던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원료 물질인 PHMG·PGH와 애경 '가습기 메이트' 원료 물질인 CMIT·MIT를 모두 제조한 회사다. SK는 당시 CMIT와 MIT의 유해성이 당시로선 입증되지 않았고, '원료를 중간 도매상에 판매했을 뿐 그 원료를 누가 어디에 가져다 썼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논리를 깨지 못해 SK를 당시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SK케미칼이 당시 원료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는지, 아울러 해당 원료가 가습기 살균제로 쓰일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회사에 불리한 증거 인멸을 지시한 '윗선'이 누구인지 역시 수사 대상이다.

한편 검찰은 지난달 13일 필러물산 전 대표 김모 씨를 구속 기소한 데 이어 같은달 27일 '가습기 메이트' 판매사인 애경산업의 고광현 전 대표(62)와 양모 전 전무를 각각 증거인멸 교사와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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