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세상의 절반은 남자인데…" 여가부가 욕먹는 이유

머니투데이 한고은 기자, 안재용 기자, 정한결 기자 2019.03.0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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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어쩌다 동네북](종합)

편집자주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운동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질문을 던졌다. '이 사회가 바라고 또 실현할 수 있는 성평등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고 성평등 사회을 구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거센 비판으로 ‘동네북’이 되기도 한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부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바람직한 역할을 다시 고민할 때다.

인원도, 예산도 0.2%…'역차별' 논란 여가부는 어떤 곳
[여가부, 어쩌다 동네북]①미투운동 이후 대변혁 겪는 한국 사회 속 여가부 역할은

성별 영향분석평가, 아이돌봄 서비스, 한부모가족 자녀양육비지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원스톱 종합서비스, 여성청소년 보건위생물품 지원. 현재 여가부가 하는 일들이다. 성평등 실현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놓고 가족과 성범죄 피해자, 청소년들을 지원한다.



하지만 여가부는 종종 여성만을 위해 존재하는 부처로 인식된다. 남성 역차별 논란에도 시달린다. 여가부의 시작은 여성 권익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2010년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청소년, 가족 업무를 넘겨받으며 정책영역이 크게 확대됐다.

현재 여가부는 2실2국3관1대변인26과 258명 정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이돌봄 서비스 등 양육 지원 기능이 커지면서 올해 처음으로 부처 예산이 1조원을 넘기도 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7년 전체 일반직 공무원(국가직) 16만2530명중 여가부 소속은 313명이었다. 전체의 0.2%다. 올해 예산 469조6000억원중 여가부 예산은 1조788억원이다. 이 역시 0.2%에 해당한다. '0.2%' 미니 부처는 여가부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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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여가부(여성부 등 과거 조직 포함) 장관은 모두 여성이었다. 전체 행정부처 중 여성 공무원 비중이 가장 높은 부처기도 하다. 2017년 일반직 공무원 기준 여가부의 여성 비율은 69.9%다. 전체 부처 여성 비율 35.4%의 2배에 가깝다. 2019년 2월 현재 여가부 직원은 여성 169명, 남성 88명으로 구성돼있다.

해외는 어떨까.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여가부가 한국에만 있다는 잘못된 정보가 많다.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여성, 가족, 청소년 정책을 담당하는 별도의 전담기구가 있는 해외 국가는 30개국이다. 덴마크 등 일부(3개국)는 가족, 청소년만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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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체계상 한국처럼 부처인 경우도 있고, 총리실 소속 국, 청, 처 등 형태는 다양하다. 독일은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에서 양성평등, 임금격차 해소, 여성관리자 육성, 가족지원 등을 담당하고 있다. 프랑스는 '총리실 소속 남녀평등사무국', 스웨덴은 '보건사회부', 영국은 '여성평등부', 호주는 '정부여성사무소', 중국은 '중화전국부녀연합회' 등에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한고은 기자


숨만 쉬어도 '없애라'…여가부가 불지핀 논란
[여가부, 어쩌다 동네북]②혜화동 시위 옹호·비동의간음죄 찬성·방송제작 가이드라인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소위 '몰카'로 불리는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자가 여성일 때에도 신속한 수사와 처벌을 할 것을 촉구했다./사진=뉴스1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소위 '몰카'로 불리는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자가 여성일 때에도 신속한 수사와 처벌을 할 것을 촉구했다./사진=뉴스1
여성가족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홍대 남성 누드모델 몰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혜화동 시위와 '미투(ME TOO, 나도 겪었다) 열풍'에 이목이 집중되면서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여가부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렸다.

◇대통령 비난 시위에 현직장관 참석, 남성혐오 발언 옹호?=지난해 7월 열린 3차 혜화동 시위(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정현백 당시 여가부 장관이 참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정 전 장관은 페이스북에 "많은 여성들이 노상에 모여 함께 분노하고 함께 절규하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장관으로서 직접 듣고 싶었다"며 "여러분들이 혜화역에서 외친 목소리를 절대 잊지 않고 불법촬영의 두려움 없이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주무부처 장관이 불법촬영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해당 시위에서 "재기해(자살해라)", "경찰도 한남(한국남자를 비하하는 말)이다", "자이루(남성의 성기+하이루)"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혐오발언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정 전 장관의 시위참석이 해당 발언들을 옹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여가부를 비판했다.

혜화동 시위에서 문 대통령 비난 구호를 외쳤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문재인 재기해" 같은 발언이 나오는 시위에 현직 장관이 참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을 경질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여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서부지법에서 열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사진=임성균 기자여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서부지법에서 열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사진=임성균 기자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 강간인가? "그렇다"는 여가부 장관=미투 열풍에 촉발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을 두고 비동의간음죄 논란이 일었다. 정 전 장관이 이에 동의하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3월 국회 여성가족위에 출석해 "강간죄 성립기준을 국제 기준대로 피해자가 동의했는지 여부를 폭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폭행이나 협박을 조건으로 하고 있는 강간죄 성립요건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안 전 지사 사건을 언급하며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강간이냐"고 질문하자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도 청문회에서 "강간죄 요건을 완화하거나 범위를 넓이는 방안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일각에서는 성관계 동의 여부를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고 처벌 여부가 피해자 의사에 따라 정해질 수 있다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죄형법정주의와 증거재판주의 등 법체계 근간을 이루는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동의간음죄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과 미국 일부주에서 강간누명에 따른 부작용이 많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자료=여성가족부/자료=여성가족부
◇21세기 보도지침?…방송제작 가이드라인 논란=여가부가 지난달 13일 발표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여가부는 가이드라인에서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획일성이 심각하다"며 "대부분 아이돌 그룹의 외모는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이 고정된 성역할을 강화해선 안된다는 주문이지만 이내 외모규제 논란으로 번졌다. 방송을 통제하려 한다는 방송규제 논란도 확산됐다. "실효성 없는 탁상행정", "과도한 성평등정책"이란 비판도 일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음악방송에 마른 몸매, 하얀 피부, 예쁜 아이돌 동시 출연은 안 된다고 한다. 군사독재 시대 때 두발, 스커트 단속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여가부가 가이드라인을 수정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은 일단락 됐지만 여가부에 대한 인식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안재용 기자

여가부가 죠리퐁·소나타 금지? "터무니없는 오해"
[여가부, 어쩌다 동네북]③여가부 루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확산…정책 의도·효과 과장도

[MT리포트] "세상의 절반은 남자인데…" 여가부가 욕먹는 이유
페미니즘(여성주의)를 둘러싼 갈등이 심해지면서 여성가족부가 억울한 누명을 쓴 경우도 있다. 여가부가 시행한 정책이 아니거나 당초 의도가 왜곡된 경우다. 죠리퐁과 곰돌이 푸 등 터무니없는 유언비어에 시달린 경우도 있다.

◇죠리퐁, 곰돌이 푸, 소나타 판매금지? "터무니없는 오해"=여가부는 설립 당시부터 터무니없는 오해에 시달렸다. 남·녀 성기나 성행위를 연상시기는 제품을 판매금지 요청했다는 루머가 대표적이다.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사례는 '죠리퐁이 여성의 성기 모양이야 판매를 금지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퍼진 루머이나 근거가 없다. 실제로 해당 상품은 판매 중이다. 여가부가 생기기 이전에는 YWCA가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곰돌이 푸가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아 여가부가 상영금지를 요청했다'거나 '소타나3 헤드라이트가 남성성기를 생각나게 해 생산중지를 요청했다'는 루머도 마찬가지다. 여가부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테트리스가 성행위를 연상시켜 금지했다', '학교급식에 버섯을 금지했다', '여성부가 K2소총과 방탄복 구매 예산을 삭감 시도했다', '마인크래프트 셧다운제를 도입하려 시도했다',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초코송이 판매금지를 요청했다' 등의 루머가 있으나 모두 사실이 아니다. 여가부 관계자는 "비유적표현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판매금지나 상영금지를 요청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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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여성할당제? "최근에는 남성이 혜택"=공무원 여성할당제로 불리는 공무원 양성평등채용목표제는 2003년 도입됐다. 남성과 여성 어느 한 성별 합격자가 30% 미만일 때 해당 성별 응시자를 추가 합격시키는 제도다. 중앙인사위원회는 2007년 5년간 시행 예정이었던 제도를 2012년까지 연장했고 균형인사지침이 2012년 개정되면서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규정해 현재까지 적용하고 있다.

제도도입 직후에는 여성이 혜택을 봤으나 2010년부터는 역전됐다. 행정안전부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채용목표제 혜택을 받아 추가합격한 616명 중 남성이 74.4%(458명), 여성이 25.6%(158명)이라고 밝혔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여성 비율이 높아지면서 혜택을 보는 남성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여성임원 비율을 높이겠다는 정책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지는 않다. 정부는 2017년 11월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 5개년 로드맵을 발표하고 여성 고위 공무원 비율을 10%, 공기업 등 공공기관 여성임원 비율을 2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35개 공기업의 고용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임원 163명 중 여성은 1명(0.6%)에 불과했다. 국내 30대 민간기업 여성임원 비중인 3.1%보다도 낮은 수치다.
[MT리포트] "세상의 절반은 남자인데…" 여가부가 욕먹는 이유
◇여성폭력방지법, 여성들만은 위한 법?=국회는 지난해 12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여성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정의하고 가정폭력과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등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각에서는 해당 법을 두고 "피해자를 여성만으로 한정했다"고 반발했다. 젠더폭력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한 남녀차별적 법이란 주장이다. 해당 법의 담당부처인 여가부에도 비난의 화살이 향했다.

결과적으로 법이 보호하는 대상이 여성으로 한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 의도와는 달랐다. 여가부는 국회 논의과정에서 "보호대상을 여성으로 좁히면 남성 피해자를 배제하게 된다"는 의견을 밝혔으나 '명확한 대상 지정이 필요하다'는 논리에 밀려 여성으로 제한됐다.

발의자인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당초 여성폭력이 아닌 젠더폭력으로 폭력을 규정했다. 남성을 포괄하는 개념이었으나 축소된 것이다.

안재용 기자

때로는 내실화로, 때로는 역차별로 여가부 폐지론의 역사
[여가부, 어쩌다 동네북]④2000년대 들어 부처 명칭만 4번 바뀌며 부침 겪어

[MT리포트] "세상의 절반은 남자인데…" 여가부가 욕먹는 이유
여성가족부는 유독 부침이 심했다. 이름의 변천만 봐도 알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4번 바뀌었다. 2001년 여성부가 2005년 여성가족부로, 2008년에는 다시 여성부로 돌아갔다. 2010년 다시 여성가족부로 개편된 후에는 지금까지 같은 이름을 지키고 있다.

여가부 역사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은 1988년 설치된 정무장관(제2)실이었다. 사회·문화 관련 업무를 맡으며, 여성정책 총괄·조정 기능도 가졌다.

1998년 정무장관(제2)실이 폐지되고 여성정책 기획·종합 업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진다.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전 여성계에는 기념비적인 일이 있었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유엔 제4차 세계여성회의 총회에서 '성주류화' 전략이 공식화됐다. 성주류화는 모든 정책 영역에서 양성평등적인 관점이 고려돼야 한다는 여성들의 요구를 담은 것이었다.

한 여성계 인사는 "1995년 베이징 총회를 계기로 한국사회에도 성주류화 개념이 소개됐고, 여성계가 정부 안에서 성주류화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부처 신설을 요구하면서 특별위원회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1년 각 정부부처로 분산돼있던 여성 관련 업무를 총괄할 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여성부가 신설된다. 기존 특별위원회 업무에 보건복지부, 노동부 소관 업무 일부도 얹어졌다.

2004년 보건복지부 소관이던 영유아 보육정책을 넘겨받았고, 2005년 여성가족부로 개편된다. 사회 구조가 급변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생겨나고, 가족해체 문제에도 대응할 필요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2008년 여가부는 폐지 위기를 맞는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여가부를 폐지하고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를 통합한 '보건복지여성부'를 신설하기로 한 것. 당시 노무현 정부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은 '왜 여성가족부가 존재하는가'라는 입장문을 내고 "복지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양성평등, 여성의 사회참여 등 걸음마 단계에 있는 양성평등정책은 고사할 가능성이 크고, 해외 많은 나라들도 전통적인 복지부서와 별도로 여성관련 전담부처를 두고 있는데 성평등에서 한참 뒤쳐진 우리나라가 나서 여성부를 해체할 일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후 여성계의 반발이 거세졌고, 인수위가 한발 물러섰다. 이명박 정부는 여가부 조직을 남겨두는 대신 여성 업무만 전담하는 여성부로 축소했다. 2005년 1실4국2관19개과176명 정원으로 출범했던 여가부는 2008년 1실2국13과100명 정원 부처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가족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응 필요성이 높아지며 여성부는 다시 여가부로 확대 개편된다. 2010년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청소년, 가족 업무를 넘겨받으면서 현재의 여가부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후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조직이 운영돼왔지만, 조직 개편에 대한 요구는 아직도 나온다. 여기에는 여가부의 기능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하기 때문에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섞여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이 압축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격차를 크게 두는 경제 발전 모델이 유효했다. 즉,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방식의 불평등 체계를 강력하게 유지해온 결과로 성장을 이뤘는데 민주주의 특히 성평등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을 갖추게 되면서 이 오래된 체계에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고, 대중들은 반감과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고은 기자

"여가부, 차별받는 소수자 보듬는 부처로 거듭나야"
[여가부, 어쩌다 동네북]⑤여가부 "기존 관행과 기득권 파괴해나가는 과정"

"여성가족부가 직면한 예민한 이슈들이 많다. 내용과는 별개로 여가부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은 기존의 관행, 기득권을 파괴해 나가는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었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취임 4개월차였던 지난 1월 그간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인력과 예산의 한계는 명확한데 기대와 비판을 한몸에 받아내며 몸살을 앓고 있는 여가부의 현실이 한 마디에 담겨있었다.

여가부 관계자는 "여러 이슈의 한 가운데 서 있으면서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직원들도 정책 환경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여가부가 직면한 인력과 예산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정책 수용자들을 포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최근 사회각계에서 터진 성폭력 문제를 중점적으로 대응할만한 부처로서 여가부의 역할을 생각하면 여전히 할 일이 많다"며 "성평등뿐만 아니라 가족형태 등에 따른 차별들이 많이 있다. 그런 부분을 발굴해 사회에 남아있는 차별적 요소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 입법조사관은 또 남여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여성정책에 대한 재점검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여성전용 주차장을 예로 들며 여성의 운전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때에는 이 정책이 유효했지만, 이제는 어린이 동반 가족 주차장 등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맞는 정책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우리 사회에는 여성뿐 아니라 한계 지점에 있는 저소득자,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차별 받는 대상들이 많이 있다. 차별개선정책은 남녀 모두가 정책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차별받는 존재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나가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른 부처들의 유기적인 협조를 당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정부 부처들도 성인지예산제도 등을 통해 개별 정책단위에서 성평등 의식 고취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른 부처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모든 부담이 여가부에 쏠리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있었던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논란 등을 언급하며 보다 완성도 있는 정책 추진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여가부 관계자는 이에 "2017년에 나온 가이드라인에 부록을 붙이는 보완 개념으로 업무에 임하면서 일부 놓친 부분이 있었다"며 "외부에 자문과 의견을 받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있다. 다시 시간을 들여 제대로 보기 위해 관련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고은 기자

'여가부 롤모델' 뉴질랜드 여성부 직원은 30명

[여가부, 어쩌다 동네북-⑥]예산은 41억이지만 효과적인 운영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아던 총리는 뉴질랜드의 세 번째 여성 총리이다. /AFPBBNews=뉴스1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아던 총리는 뉴질랜드의 세 번째 여성 총리이다. /AFPBBNews=뉴스1
여성부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27개국이 여성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는 해외 여성부의 사례로 한국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곳으로, 다른 국가처럼 가족·청소년 등 여러 분야의 정책을 다루기보다는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일에 집중한다.

뉴질랜드 여성부는 '여성부가 필요 없어질 때까지 여성 권리를 신장시킨다'는 목표로 1984년에 설립됐다. 현재 공식 명칭은 "여성을 위한 부"(Ministry for Women)다. 지난 2014년 부서의 업무를 더 현대적으로 표현하겠다며 기존 여성부(Ministry of Women's Affairs)에서 바꾸었다.

한국의 '여성가족부,' 인도의 '여성아동개발부,' 독일의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등 다른 국가와 달리 이름대로 여성 관련한 정책만 다룬다. 여성의 재정적 독립 확보, 여성 임원진 비율 증가, 가정 폭력 및 성폭력 근절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더 여건이 좋은 직장을 찾도록 장려하고,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육아 시스템을 보완하며, 직장 성추행 기록부 도입을 의무화하는 등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다.

여성부는 뉴질랜드 정부의 핵심부서 중 하나지만 총원은 그 중 가장 적은 30명(2017년 기준)에 불과하다. 연간 예산은 지난해 544만 뉴질랜드 달러(약 41억 3580만원)였다.

그러나 뉴질랜드 여성부는 제한된 자원으로도 큰 효과를 보고 있다. 1998년 뉴질랜드의 성별 임금 격차는 16.3%에 달했지만, 지난 2017년에는 7.2%로 줄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3.4%)보다 낮은 수치로, 뉴질랜드는 전 세계에서 격차가 적은 국가 7위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당시 34.6%로 꼴찌를 차지했다.

여성의 정치 참여도 높은 편이다. 지난 2017년 뉴질랜드 총선에서는 여성 의원 49명이 의회에 입성하면서 전체(120명) 중 41%를 차지했다. 저신다 아던 현 뉴질랜드 총리는 뉴질랜드의 세 번째 여성 총리이기도 하다.

한편, 뉴질랜드는 지난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국가다.

정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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