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만으론 안된다"…종합식품업체로 변신중인 오리온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9.03.04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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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대해부]출발 빨랐던 글로벌 전략 결실, 국내보다 해외서 더 벌어…이젠 '생수·간편식' 등 영토확장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1974년 전국 유통 도매상들이 서울 용산 오리온 본사로 몰려 들었다. 그동안 국내 제과업계에서 구경하지 못했던 신제품 '초코파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국내 기술로 비스킷 파이를 초콜릿으로 감싼 것 만도 신기했는데, 한 가운데 쫄깃하고 달콤한 마시멜로까지 넣었으니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맛을 본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출시되자 마자 히트상품 대열에 올랐다.

2019년 베트남 제사상엔 과일, 술 등과 함께 오리온 초코파이가 박스째 오른다. 집집마다 제단을 마련해 매일 조상을 기리는데 영정 앞에 프리미엄 과자로 통하는 초코파이를 놓는 것이다. 설 명절엔 절에서 초코파이 박스로 탑을 쌓고 복을 빈다. 약혼식과 결혼식 하객 답례품으로도 초코파이가 인기다.



◇'국민과자'의 탄생…"해외로, 해외로"=오리온의 전신이자 옛 동양그룹의 출발은 1956년이다. 함경남도 출신인 창업주 이양구 명예회장이 1947년 남한으로 내려와 설탕을 판매하는 동양식품을 설립했고, 56년 풍국제과를 인수해 동양제과공업으로 사명을 바꾸며 제과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초코파이에 이어 '오징어땅콩'(1976년) '고래밥'(1984년) 등 수십년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도 줄줄이 등장했다. 1987년 미국 펩시사와 합작해 설립한 오리온프리토레이의 히트작 '치토스'(1987년)와 감자칩 역사를 새로 쓴 '포카칩'(1988년), ‘후라보노’, ‘센스민트’ 등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980년대 오리온은 국내 제과업계 2위로 도약했다.



국내에서 오리온은 수십년간 롯데제과의 벽을 넘지 못한 '만년 2위'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1980년 국교 수립 이전부터 중국시장을 주목한 창업주의 선견지명이 글로벌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꿔놨다. 해외사업 확장에 본격 나선 것은 창업주 타계 후 사업을 물려받은 둘째 사위 담철곤 회장이다.

화교 3세인 담 회장은 국교가 이뤄지기 전인 1991년부터 중국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1997년에는 베이징 현지공장에서 생산한 초코파이에 ‘하오리여우’라는 중국식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 중국에 이어 1993년 러시아, 1995년 베트남 시장에도 잇따라 진출했다.

◇글로벌 전략 적중…중국·베트남서 더 팔린다=규모가 작은 내수 시장에 집착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야 미래가 있다고 판단한 오리온의 전략은 적중했다. '외상 거래를 하지 않는다', '철저히 현지화한 제품을 판다'는 원칙을 세우고 20년 이상 마케팅을 펼친 결과 오리온은 국내 식품업체 중 글로벌화에 가장 성공한 기업이 됐다. 중국·베트남·러시아 등을 필두로 75개국에서 오리온 제품이 팔린다. 해외 현지법인이 19개, 생산기지는 10곳에 달한다.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역전한 지도 오래다. 지난해말 기준 오리온 매출의 60% 이상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나온다. 국가별로는 중국 매출 비중이 48.4%로 가장 높고, 베트남 12.1%, 러시아 3.4% 등이다. 국내 매출은 35.9% 수준이다.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삐끗했던 실적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지난 2016년 연결기준 매출액 2조3863억원에 달했던 오리온 실적은 2017년 1조1172억원으로 급감했다. 영업이익도 3000억원 중반에서 1000억원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중국 실적 비중이 높은 만큼 타격도 컸다.

하지만 오리온의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이 화해 국면을 맞으면서 실적 그래프도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국 시장 영업이익이 1416억원으로 전년 대비 600% 이상 증가하며 사드 쇼크 기저 효과를 톡톡히 봤다. 베트남에선 400억원 이상 이익이 났다. 적극적인 신제품 출시로 국내 영업이익도 40% 가까이 늘었다.

증권가는 올해 오리온의 실적이 더 좋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매출액 1조원 재탈환을 비롯해 전체 매출액이 2조원을 다시 넘어서고,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고 있다. 조미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법인의 수익성이 개선되는 한편 국내와 베트남, 러시아에서도 두 자릿수 이익 성장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지주사 체제 전환…'제과→생수·간편식' 영토확장=오리온은 지난 2017년 6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했다. 종전 오리온의 투자사업 부문을 존속법인이자 지주사 '오리온홀딩스'로 바꾸고, 사업회사 부문은 인적 분할해 신설법인인 '오리온'을 설립했다. 사업회사 오리온은 같은 해 7월7일 증시에 재상장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오리온의 최대주주는 지주사인 오리온홀딩스 (14,140원 ▲20 +0.14%)(37.37%)이다. 오너 일가인 이화경 부회장(창업주 차녀)은 4.08%, 담 회장은 0.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회장 부부 자녀이자 오너 3세인 담경선씨(딸)와 담서원씨(아들) 지분율은 각각 0.6%, 1.23%다. 지주사인 오리온홀딩스의 오너 일가 지분은 60%를 넘어선다. 이 부회장이 지분 32.63%로 최대주주이고, 담 회장은 28.83% 지분을 갖고 있다.

60여년 과자회사였던 오리온은 음료사업, 건강기능식품, 프리미엄 디저트, 간편대용식 등으로 영토 확장에 한창이다. 온미디어·메가박스 매각 등으로 축소된 미디어업, 뚜렷한 사업실적이 없는 건설업 대신 주특기인 식품사업을 확대해 종합식품회사로의 변신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백운목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오리온은 지난 2016년 인수한 제주용암수를 활용해 중국 남부지역에서 생수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시리얼·견과류·제빵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적극적인 신제품 출시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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