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올해도 '버티기' 유지할 것…북미 관계개선 北경제에 호재"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9.02.1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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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북한경제 전문가에게 듣는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편집자주 "북한은 '경제적 로켓'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던진 '당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담판 테이블에 앉은 이유를 보여준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급속한 시장화 흐름에서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대북제제 해제를 요구하고, 미국이 '경제부국'을 북한의 미래로 거론하는 이유다. 머니투데이 the300은 27~28일 제2차 베트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을 통해 북한 경제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순서 ①임강택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②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③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④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⑤이춘근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⑥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②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은 올해도 핵문제가 풀릴 때까지 실용주의 기조를 유지하며 버틸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그 자체가 북한 경제에 긍정적 요인이다."

30년간 북한산업을 연구 해 온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6일 머니투데이 the300과 인터뷰에서 김정은 시대 북한 경제정책의 특징을 '실용주의'로 요약하고, 북한이 대북제재 속에서 버티기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달 말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실질적인 대북제재 완화가 달성되지 않더라도 북미관계 개선 자체가 북한 경제주체들의 심리 개선, 북중 교역 강화로 연결돼 북한 경제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권다희 기자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권다희 기자


-김정은 집권기 북한의 시장화가 ‘가속’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의 시장화는 1990년대 말 경제난으로 사회주의 공급 시스템이 기능을 못하면서 진행됐다. 김정은 집권기엔 이 시장화를 적극적인 정책으로 수용했다. 집권 후 경제관리 제도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해 국영기업이 시장에 물건을 내다파는 걸 합법화했다. 북한이 2014년 5월30일에 발표한 이른바 '5.30조치’에서 이 제도가 완성됐다.



지금은 북한 기업이 무엇을 만들어 어떤 가격으로 어디에 팔지는 문제가 거의 안 된다. 물론 중앙정부가 생산 물자를 공급했다고 하면 물자의 처분도 중앙정부가 권한을 갖는다. 반대로 정부 기여도가 0%면 처분 권한은 100% 기업이 갖는다. 기업이 대부분의 소비재를 생산하기 때문에 소비재는 시장에서 거래된다.

-정책 외에 시장화를 추동한 요인이 있다면.
▶2000년대 말부터 북한의 대중교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10년 5.24 조치로 한국과의 교역이 막히면서 이 교역수요가 중국으로 옮겨 갔다. 이 무렵 중국의 대북 무연탄 석탄 수요도 늘었는데 이 무연탄 수출을 당과 군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내각은 할 수 없지만, 당과 군은 기존 체제의 족쇄를 넘어갈 수 있는 힘 있는 조직이다. 당과 군은 생산 집단이 아니므로 중앙정부에서 쿼터를 받아 생산, 수출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돈주(시장을 매개로 성장한 북한의 신흥 자본가 계층), 상인, 노동자와 연결됐다.


-수출을 매개로 시장이 커진 일종의 선순환으로 보인다.
▶돈을 번 사람들이 생겨 소비와 시장 수요가 늘어 중국으로부터 소비재 수입도 더 늘어났다. 중국 저가 제품 대신 중국에서 설비와 재료를 수입해 북한산 소비재 생산이 증가하는 부분적 선순환도 발생했다.

북한의 의류 가공무역도 늘어나는 추세였기 때문에 제재없이 2~3년이 더 흘렀다면 의류는 무연탄을 제치고 북한 최대 수출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 내에 소비재용 설비 투자 수요가 생기면서 기계공업 역량도 높아지던 찰나였다가 2016년 제재로 이 순환이 무너졌다.

-현재 북한의 시장화 단계는.
▶식량을 제외한 소비재는 다 시장에서 거래된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국영기업의 제품을 시장에서 파는 게 불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영기업의 제품은 물론 개인, 무역회사, 중국산 수입품 등 거의 대부분의 소비재 시장 판매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가장 눈에 띄는 게 휴대폰, 무선통신 서비스 거래다. 북한 주민 거의 대부분이 자유롭게 휴대폰을 살 수 있다. 중국에서 저가 휴대폰을 수입해 팔다 최근엔 부품을 사와 북한에서 스마트폰을 자체 브랜드로 만들어 낸다.

반면 자본재는 아직도 대부분을 당국이 처분한다. 같은 원리(생산 과정까지 자원을 투입한 기여도만큼 처분 권한을 가짐)가 적용되지만, 시장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 생산요소 투입이 국가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책제철소가 철을 만들 때 투입하는 철강석, 전력 등은 국가가 공급하기 때문에 국가가 대부분의 처분 권한을 갖는다.

-기업의 자율성도 상당 부분 보장된 것으로 보인다.
▶임금도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정할 수 있다. 당국이 각 산업별로 최저임금 비슷한 최저평균임금을 지정한 기록도 있다. 기업에 임금결정권을 줬기 때문에 국가 입장에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제대로 운영되는 기업이 많지 않으나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기업이 설비투자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설비를 만드는데 누가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처분 권한이 배분된다. 기업이 기여한 설비는 아직까지 완전하진 않으나 일정 부분 통제권을 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생산수단 사유화가 가장 마지막 단계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화장품 등 북한의 일부 소비재는 품질이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내에 중국산 제품이 '저가'라는 부정적 인식이 생기면서 북한산에 대한 선호가 높다. 동시에 북한 당국이 북한 주민들이 달러를 쓰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급 소비재 시장을 만들어 내려고 '북한산 고급 소비재'를 공급해 왔다. 이런 배경에서 소비재의 수준이 조금씩 높아져 왔다.

"北 올해도 '버티기' 유지할 것…북미 관계개선 北경제에 호재"
-김정은 시기 산업정책의 특징이 있다면.
▶눈에 띄는 건 '실용주의'다. 중화학공업 등 실현 불가능한 대규모 사업보다 상대적으로 단기적 성과가 나는 경공업, 건설 등에 재원을 투자했다. 이 부분도 할 수 있는 만큼만 계획대로 했다. 여명거리 등이 이런 식으로 완공됐다.

-김정은 시대 북한 경제의 특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나.
▶김정은은 김정일과 다르다. 김정일은 100개를 하자고 했다가 10개만 할 수 있다. 반면 김정은은 북한 내부에서 공격을 받을 수 있어 애초에 보수적인 목표를 세우는 경향이 있다. 안정 지향적이고 수비적인 경제정책이다. 그래서 국가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데 집중한다.

-올해도 이런 안정 지향적인 흐름이 이어질까.
▶일단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핵문제가 풀릴 때까지 버티자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신년사 중 경제 관련 내용을 보면 작년의 성과를 쭉 나열한 게 대부분이다. 제재가 지난해 본격화해 뭔가 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진 여파다.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지금 상황에서 최대한 버티자’, ‘할 수 있는 것부터 끝내자’고 강조한다.

2020년을 목표로 한 북한경제발전 5개년 전략 완성도 전력량 역대 최대 생산량 회복, 삼지연 등 건설사업 완료에 농업, 과학기술 등 일부분야에서의 성과만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달 말 제2차 북미정상회담 후 제재완화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있다.
▶직접적 제재 완화가 아니라 북미 관계가 개선되기만 해도 북한 내 심리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의 북한 국경 통제가 완화되면서 북중 밀무역이 다시 활발해지고, 북한 경제에 긍정적인 흐름을 강화할 수 있다. 유엔 제재 주 북한 주요 외화수입원인 북한 노동자 귀환령이 풀리면 올해 외화 유입 숨통이 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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