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법원 "블록딜 정보 악용 공매도 외국인, 과징금 적법" 첫 판결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19.02.1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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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2014년 12월 시장질서 교란행위 제재규정 도입 후 외국인 첫 제재

/그래픽= 임종철 디자인기자/그래픽= 임종철 디자인기자


미리 알게 된 상장 주식의 블록딜(시간외 대규모 장외매매) 정보로 해당 주식을 공매도하고 수억원대 이익을 챙긴 외국인 투자자에게 당국이 과징금 제재를 내린 것은 적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해 시장에 충격을 주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도입된 지 약 4년만에 외국인 투자자가 처음 제재를 받은 것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2부(부장판사 윤경아)는 지난달 10일 홍콩계 한 자산운용사 대표이사 A씨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2017년 9월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 판결 결과는 지난달 17일 A씨 측에 전달이 됐다. A씨 측이 항소장을 2주일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아 이 판결은 이대로 확정이 됐다.

2016년 1월6일과 7일에 걸쳐 A씨는 자사가 운용하는 펀드 명의로 현대증권 주식을 매도스왑 등 금융상품을 이용해 공매도해 3억78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사실이 금융당국에 적발돼 증선위로부터 부당이득 전액에 해당하는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주가에 영향을 미칠 미공개 중요정보를 사전에 알고 부적절한 매매를 통해 이익을 얻었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실제 블록딜이 이뤄지기 전인 1월6일 현대증권 매각 주관사 중 한 곳으로부터 △한국 증시에 상장된 증권사로서 △시가총액이 10억달러를 웃돌고 △하루에 500만달러 가량의 거래가 이뤄지는 종목에 대해 △예상 할인율이 9% 이상의 조건으로 △1억달러 이상 규모의 블록딜이 있을 것이라는 사전 정보를 얻었다. 주관사 관계자가 이같은 정보를 A씨에게 전한 것은 블록딜 참여 여부를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A씨는 블록딜 참여여부에 대한 즉답을 미룬 채 곧바로 주관사 측에서 알려준 종목을 확인했다. 당시 시장 조건에 부합하는 종목은 현대증권이었다. 당시 현대증권은 최대주주인 현대상선 측과 2대 주주인 자베스파트너스 사이에 우호적 지분보유에 따른 수익보전 약정을 해제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었다. 당시 자베스파트너스가 보유한 지분은 현대증권 전체 상장 주식의 9.54%에 해당했다.

A씨는 2차례에 걸쳐 현대증권 주식의 대차(주식을 빌리는 행위) 가능 여부를 알아봤다. 1억달러(약 1000억원) 이상 규모의 주식이 통상 할인율(3~5%)보다 훨씬 큰 할인율로 블록딜 매물로 나올 때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공매도 준비에 나선 것이다. 현재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남에게서 빌려 미리 팔아두고, 나중 주가가 하락할 때 되사서 갚아 그 차익만큼의 이익을 챙기는 공매도다.


A씨는 현대증권 주식에 대한 매도스왑 거래를 마치고 사실상 공매도 포지션을 완료한 후인 1월7일에야 주관사 측과 다시 전화 통화를 하고 "블록딜 수요예측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월7일 증시 마감 이후 진행된 블록딜에서 실제 A씨 측은 전체 매각 물량 2257만여주 중 380만여주를 배정받아 매수했다. 실제 블록딜 거래가 성사된 가격은 5100원으로 1월7일 종가(5840원) 대비 12.7%나 낮은 가격이었다. 블록딜 직후인 1월8일 현대증권 주가는 7.2% 하락했는데 당일 코스피 지수(+0.7%)는 물론 코스피 증권업지수(-0.6%)와 크게 대비됐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A씨는 실제 블록딜이 이뤄지기 전 주당 5896원씩 55만여주에 대한 공매도(약 32억7000만원 규모)를 집행했고 블록딜 참여 등을 통해 주당 5170원씩 공매도 물량 만큼을 되사서 갚았다. 세금 등을 제하고 A씨의 펀드가 벌어들인 이득은 3억7800여만원에 달했다. 이에 증선위는 A씨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2017년 9월 하순 A씨 측이 벌어들인 이득 전액을 과징금으로 물렸다.

A씨는 같은 해 12월 불복 소송을 제기하고 △주관사 측으로부터 얻은 정보만으로는 현대증권이라는 점을 특정할 수 없어 규제의 대상인 '시장정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 △문제가 된 거래를 통해 얻은 이익은 A씨 개인이 아니라 펀드 투자자에게 귀속되므로 A씨에게 이익금액 전액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는 점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주관사 측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모두 만족하는 증권사는 현대증권 뿐이었다. A씨는 주관사와 전화를 하고 이 사건 정보를 취득하고 불과 20여분만에 현대증권 대차가능 수량을 확인했고 그 다음 날 아침에도 대차수량을 확인했다"며 "A씨의 공매도는 블록딜 정보가 언론에 공개되기 이전에 이뤄졌다"고 봤다. A씨가 블록딜 수요예측 참여에 동의하기 전에 주관사가 제공한 정보를 기초로 블록딜 대상 종목이 현대증권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공매도를 했다는 당국의 주장을 전부 인정한 것이다.

또 "A씨 등이 투자사를 운용하면서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해 이익을 취득한 후 이익의 귀속 주체가 아니라는 사정만으로 과징금 기준금액을 산정할 수 없다면 선의의 투자자 보호, 건전 시장질서 확립이라는 규제 목적을 실현하기 어렵다"며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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