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머니 끝' 중국 벤처시장에 겨울 왔다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진상현 특파원 2019.02.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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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벤처투자액 전년비 67% 감소…단기간에 과도하게 팽창…자금 회수시기·경기 둔화 맞물려…"수년간 조정 필요"

2018년 12월20일 고객들이 공유자전거 증거금을 받기 위해 오포 본사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AFPBBNews=뉴스12018년 12월20일 고객들이 공유자전거 증거금을 받기 위해 오포 본사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중국 내 일자리와 첨단 기술 기업 육성의 한 축인 벤처캐피털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벤처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시기가 경기 둔화, 주식시장 침체와 맞물려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다. 자금 경색이 상당기간 이어지면서 중국 벤처 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벤처 기업들의 옥석이 가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12일 중국 벤처업계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부터 시작된 중국 벤처캐피털 시장의 투자 위축이 올들어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 소재 리서치기업인 제로2IPO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밴처캐피털 시장의 총 투자액은 294억 위안(4조87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67.5%, 전월 대비 31.7% 급감했다. 전체 투자 건수도 28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5% 감소했다. 시장조사업체인 프레퀸은 앞서 지난해 4분기 중국 밴처캐피털 시장 투자 건수와 펀딩 규모가 각각 713건과 183억 달러로 1년 전보다 25%, 12%씩 감소했다고 밝혔다.

차이충신 알리바바 그룹 부회장은 최근 한 포럼에서 "기업인들은 (중국에서) 너무 쉽게 수십억 달러의 자본금을 조달하고, 수십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았었다"면서 "조정이 일어날 것이고, 이는 건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벤처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 위축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과 맞물리면서 시장 자체가 비대해져 있는데다, 투자자금의 회수 시기가 경기 둔화 시점과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2013년 부터 벤처캐피탈 시장이 급성장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육성에 나섰고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1세대 벤처기업들의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투자자금이 몰렸다. 자금이 벤처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중국의 기술 스타트업들은 지난 2015~2017년 '이지 머니(손쉬운 자금 조달)'를 만끽했다. 고영화 전 KIC(한국혁신센터) 중국센터장은 "2012년 말 2955개 이던 중국의 벤처캐피털 수가 지난해 말 현재 1만4595개로 6년만에 5배 수준으로 늘었다"면서 "미국내 벤처캐피털이 4000개가 안된다"고 말했다. 중국 내 벤처캐피털 수가 과도하게 많은 수준으로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2013~2015년 집중적으로 조성된 벤처투자 기금의 회수 시기가 돌아온 것도 부담이다. 중국의 벤처기금은 대체로 투자 3년, 회수 2년, 회수 연장 1년 등 '3+2+1' 총 6년 단위로 회수가 이뤄진다. 초기 조성된 기금의 회수시기가 지난해부터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중국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엑시트'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로2IPO에 따르면 지난달 IPO(기업공개)를 시작한 중국 스타트업의 수는 55개로 전년 동월 대비 65% 감소했다. 투자자들이 신규 상장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상당수 스타트업들이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때 중국 스타트업 시장의 스타로 떠올랐던 공유자전거 업체 '오포'는 지난해 말부터 '파산설'에 휩싸여있다. 2014년 설립된 오포는 4년이 채 안된 기간 동안 총 22억 달러의 자금을 벤처시장에서 조달한 바 있다.

베이징에 소재한 데이터리서치 기업 컨텍스트랩의 윌리엄 리 수석 애널리스트는 "새로 펀딩을 받으면 신규 인력을 공격적으로 찾지만,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을 찾는데 실패하고 현금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해고로 이어진다"면서 "일부 스타트업들은 자본 러시가 둔화되면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 전 소장은 "앞으로 3년간은 중국 벤처캐피털 산업에서 옥석가리가 진행될 것"이라며 "중국 벤처기업들의 거품이 빠지는 만큼 한국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좋은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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