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 걸린 '염변경 의약품'…떨고 있는 국내 제약사

머니투데이 민승기 기자 2019.02.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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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변경 통한 특허회피 불허, 170여건 관련소송 영향...대웅·일동·대원등 제품 판매중단 손배소 우려도

제동 걸린 '염변경 의약품'…떨고 있는 국내 제약사


대법원이 일부 성분을 바꾼 개량신약인 ‘염변경 의약품’으론 물질특허를 회피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국내 제약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제약사들의 개량신약 출시가 원천봉쇄된 것은 물론 이미 염변경 의약품을 출시한 제약사들의 경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 있어서다.



지난달 대법원은 과민성 방광치료제 ‘베시케어정’(성분명 ‘솔리페나신’)과 관련해 일본 제약사 아스텔라스가 국내 제약사 코아팜바이오를 상대로 낸 특허권침해금지 청구소송 상고심 판결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염은 차이 나지만 인체에 흡수되는 치료 효과는 실질적으로 동일하다”며 “존속기간이 연장된 물질특허의 권리범위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염변경 통한 특허회피 전략’ 원천봉쇄=대법원 판결의 여파는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제약특허연구회(특약회)에 따르면 2016년 12월 이후 염변경 의약품으로 특허소송이 진행됐거나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은 170여건에 이른다. 염은 약물의 용해도와 흡수율을 높이고 약효를 내는 성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첨가하는 성분을 말한다.



당장 금연치료제 ‘챔픽스’(화이자) 염변경 의약품을 출시한 국내 제약사들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화이자와 소송을 진행하던 국내 제약사들은 당초 이달 1일 선고 예정이던 챔픽스 물질특허 소극적권리범위확인 2심에 대한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해당 소송에는 한미약품 (333,000원 ▼9,000 -2.63%), 대웅제약 (121,300원 ▼800 -0.66%), 종근당 (110,200원 ▼3,300 -2.91%), 일동제약 (15,750원 ▼300 -1.87%) 등 국내 제약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도 상당수 포함됐다.

그러나 변론이 재개되더라도 대법원 선고에 반하는 판결이 나오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챔픽스 염변경 의약품을 출시한 국내 제약사 중에선 앞으로 이어질 손해배상 소송을 우려해 ‘판매 중단’까지 고려 중이다.

항응고제 ‘프라닥사’(베링거인겔하임) 염변경 의약품 출시에도 제동이 걸렸다. 1심에서 대원제약 (14,900원 ▼200 -1.32%), 삼진제약 (20,250원 ▼100 -0.49%), 제일약품 (16,700원 ▼100 -0.60%) 등 6개 제약사가 승소하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2심에서도 승소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2월 중 보험급여 출시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후 보험급여 등재 신청을 자진철회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염 변경 특허회피 불인정 판결로 인한 파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며 “이미 염변경 의약품을 판매하는 업체는 판매 중단을 검토 중이고 출시 예정이던 의약품들도 무기한 보류됐다”고 지적했다.

◇손배소 등 다국적제약사의 반격 시작되나=대법원이 염변경 의약품의 특허침해를 인정하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의 반격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염변경 의약품 판매 중단 조치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손해배상 소송이 추가로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김윤호 특약회장은 “현재 특허소송이 진행 중인 의약품뿐만 아니라 이미 종료된 사안도 ‘조기출시에 따른 피해’를 주장할 수 있다”며 “영세한 중소제약사들의 경우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상금뿐만 아니라 의약품 개발을 위한 투자금, 생산을 위한 원료의약품 대금 등을 고려하면 제약사별 피해금액은 수백억 원에 달할 것이란 설명이다.

염변경 의약품을 취급하는 제약사들은 대법원의 판결에 강하게 반발한다. 국내 제약산업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판결이란 지적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염변경 의약품이 막히면 국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약사 특허담당자는 “염변경 의약품은 복제약이 아닌 개량신약으로 신약개발 기술이 부족한 기업들이 중간에 거쳐 가는 관문”이라며 “대법원 판결은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 R&D(연구·개발) 의욕도 꺾었다”고 말했다. 또 “국내 제약사들의 피해뿐만 아니라 국내 환자가 값싼 의약품을 복용할 수 있는 시기도 최대 5년가량 늦춰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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