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도 화장품도 100% 시장에서'…김정은 시대 北 경제는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9.02.1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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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포스트 하노이, 넥스트 코리아]1-⑤ 대중 무역 +시장 수용 정책으로 소비재 시장 급성장

편집자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제1차 정상회담에서 '패러다임 체인지'에 합의했던 북미 정상은 2차 정상회담을 통해 '하노이 선언'에 나선다. 선언이 비핵화와 평화의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제시한다면 보다 중요한 것은 그 후(post)이다. 머니투데이 the300은 하노이 북미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문재인 프로세스'의 성과를 짚고, 회담 결과를 전망해 '포스트 하노이, 넥스트 코리아'를 제시한다.

'휴대폰도 화장품도 100% 시장에서'…김정은 시대 北 경제는


북한의 시장화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기 들어 빨라졌다. 2000년대 후반 가파르게 성장했던 대중무역과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시장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정책이 맞물린 결과다.

2000년대 말부터 북한의 대중교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무렵 중국의 대북 무연탄 수입이 늘었고 2010년 '5.24 조치'로 한국과의 교역이 막히면서 대신 중국과 교역이 급증했다.



특히 당·군이 무연탄 수출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며 시장이 확대됐다. 기존 체제의 족쇄를 넘는 힘을 가진 당과 군은 중앙정부에서 쿼터를 받아 생산·수출을 할 수 있었다.

생산능력이 없던 당·군이 수출을 위해 시장의 돈주. 상인, 노동자와 손을 잡은 상황도 시장을 키웠다.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며 소비가 증가했고 수요가 늘자 대중 소비재 수입이 더 늘어나는 순환이 생겼다.



중국산 제품이 '저가'라는 부정적 인식이 생기면서 북한산 선호가 높아지자 중국에서 설비와 재료를 수입해 북한산 소비재 생산까지 증가했다. 시중 외화 흡수를 위해 당국이 의도적으로 북한산 고급 소비재 시장을 만들기도 했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엔 정책적으로도 시장화를 수용했다. 본격적으로 제도를 고쳐 국영기업이 시장에 물건을 내다파는 걸 합법화했다. 2014년 5월30일에 발표한 이른바 '5.30조치’가 이 제도의 완성판이다.

이 제도에 따라 기업이 무엇을 만들어 어떤 가격으로 어디에 팔지는 문제가 거의 안 된다. 바뀐 제도 하에서 정부 기여도가 0%면 처분 권한은 100% 기업이 갖는데 소비재 생산 주체는 거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식량 외 소비재는 다 시장에서 거래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게 휴대폰 거래다. 북한 주민 거의 대부분이 자유롭게 휴대폰을 살 수 있다. 스마트폰, 피처폰 등 보급량만 수백만대다.

기업이 설비투자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설비를 만드는데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처분 권한이 배분돼서다. 완전하진 않으나 기업에 일정 부분 통제권을 준다. 사실상 '생산수단 사유화'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다만 자본재는 대부분 당국이 처분한다. 시장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 생산요소 투입을 국가가 담당해서다. 예컨대 김책제철소가 철을 만들 때 투입하는 철강석, 전력 등은 국가가 대부분 공급해 처분 권한도 국가가 갖는다.

소비재 거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은 북한 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2000년대 후반 이후 급속히 구축됐던 '시장화→북한 산업성장' 선순환은 2016년 대북제재 강화로 끊어졌다.

설비투자에 필요한 품목 수입은 물론, 섬유류 등 주요 수출품의 수출 자체가 막혔다. 북한의 의류 가공무역이 급성장 추세였기 때문에 제재가 없었다면 의류는 무연탄을 제치고 북한 최대 수출품이 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으로선 경제적 도약의 기회를 잃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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