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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① 일본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다

안은별 (‘IMF키즈의 생애’ 저자) ize 기자 2019.02.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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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공감 속의 위화감 같은 것”


일본어판 ‘82년생 김지영’ (이하 ‘김지영’)의 인기로 촉발된 일본의 한 라디오 좌담에서, 책의 번역자인 사이토 마리코 씨가 최근 일본에서의 한국 문학을 향한 주목의 배경에 관해 한 말이다. ‘똑같이 쌀과 된장이 오르는 밥상’으로 비유되곤 하는 문화적 유사성은, 일본에서 한국 문학을 바라보는 출발점을 다른 해외 문학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만든다. 근년 쇼분샤, 아키쇼보 등의 출판사를 중심으로 주의 깊은 기획 속에 일본 내 한국 문학의 작은 물줄기가 마련되어 온 가운데, 지난 12월 100만 부 소설 ‘김지영’이 도착해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합류시키며 시장과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나아가 이것이 지금의 한국 문학에 대한, 그리고 작품들의 내적·외적 토대가 되는 한국 사회와 그 리얼리티에 대한 주목으로 이어지며 비교문화적인 논의를 자극하고 있다.

‘김지영’에 국한해 말하자면 ‘비슷함’은 소설에서 전개되는 여성이 겪는 부당한 현실과 그 배경이다. 가정을 중심으로 여성/남성의 규범과 역할을 강요하고 내면화시키는 제도와 문화가 양국 모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것이 ‘성별 격차 지수 115위와 110위’로 요약되는 현실, 즉 여성에게 차별적이고 불리한 현실을 구조적으로 작동, 재생산시킨다. 이 문제가 한 여성의 삶을 관통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다룬 ‘김지영’인 만큼 첫 장에서부터 순조롭게 일본의 여성 독자를 익숙한 세계로 끌어들이는 힘을 지닌다. 한편 ‘차이점’은 어디에 착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겐다이 비즈니스’에 실린 니시모리 미치요 씨의 지적이 예리하다. 첫째, “한국 여성들은 남성 못지 않게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적어도 가정 수준에서는 기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IMF 이후 격화된 생존 경쟁 속에서 ‘내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남녀를 막론한 측면이 있다면 일본에서는 교육 단계에서부터 여성에 대한 기회와 기대가 제한되어 있다. 이에 관해서는 2017년 말 본지에 게재한 칼럼(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7121321487264895)에서 언급한 바 있으며, 지난해 밝혀진, 도쿄의대가 8년 간 여성 수험자의 성적을 일률적으로 감점시켜 입학을 제한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두 번째 차이점은 작품 바깥에서 지적된다. 그것은 “행동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감각과 그렇게 ‘맥락화되어 온’ 경험들의 역사다. 여기에는 ‘미투’ 이전 잡지 ‘맥심’, Mnet ‘쇼미더머니’ 등 미디어의 여성혐오적 표현에 대한 항의 사례와 함께, 항의하는 시민 사회의 원경으로서 1987년의 민주화 운동까지 소급되고 있다.



이러한 비교는 번역 문학을 소개하기 위한 배경 소환인 한편, 일본 미디어 공간에서 어떤 한국상이 구성되어 있는지, 구성되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위의 잡지에서 니시모리 씨의 글과 나란히 실린 김향청 씨의 글에서는 “2000년대 초, 한국의 젠더 관련 이슈를 보면서 ‘일본에서 태어나 다행이다’라고 안도했으나 현재 일본에서는 ‘김지영과 같은 소설이 나오고 화제가 되는 한국이 부럽다’라는 얘기가 들린다”라는 언급이 등장하며, 실제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한국이 부럽다”라는 아마존 재팬의 한 리뷰는 한일 양국에서 반복 인용되고 있다. 이밖에, 다양한 기사에서 1987년의 경험이 등장하는 데서는 ‘일본과 달리 시민들의 단체 행동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역동적인 나라’라는(소위 진보적 시민 진영의 시점에서) 다소 신비화된 한국상이 어른거린다. 이러한 일종의 선망의 시선에, 문학 분야에 있어서 양국 간 영향 관계의 방향성이 역전된 최초 사례라는 이례성이 가세해 전세계적 ‘미투’ 흐름에서도 다소 정체를 보인 일본에 ‘한국을 보라’라는 주문을 촉발하게 되는 모양새다.

지난 2년 간 국내의 다양한 사회적 논의를 휘감으며 생명력 왕성한 텍스트가 된 이 작품이,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는 일본 사회에 던져짐으로써 공감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마음껏 화기애애하기 힘든 위화감도 있다. ‘신초’ 3월호의 서평에서 스즈키 미노리 씨는 이 소설이 일본에 불러일으킨 공감의 물결이나 선망의 시선에 조심스럽게 경계를 표한다. 작품이 어디까지나 현실을 추인하는 데 그쳤다고 한계를 지적하며, 작품이 연 공간에 “출생 시 할당되는 ‘남녀 둘 중 하나의 성별’에 위화감을 갖지 않으며 신체나 복장 등에 있어 성별 이행을 행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시스젠더밖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배타적인 측면을 언급했다. 물론 성별 이원론에 근거한 여성의 ‘평균치’ 리얼리티는 ‘김지영’이 선택한 부분으로서, 이 구분선으로 인해 배제된 존재에 대한 안배가 없다는 것이 작품의 결함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스즈키 씨의 서평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결코 ‘공감’하거나 ‘비슷할’ 수 없는 스스로의 구체성에서 출발하려는 독해 태도이다. 그 자신이 트랜스젠더 여성이며, 스스로가 이 작품과 한국 현실에 있어 어디까지나 외지인이며, ‘우리’ 개개인은 서로 다른 공유할 수 없는 속성의 복합으로 존재한다고 강조하는 스즈키 씨의 글은, 친숙하고 널찍한 하나의 속성으로 형성되는 빠져들기 쉽고 머무르기 쉬운 공감대가 지니는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여성’의 처지는 비슷하며 여성 차별 문제에 있어 지금 누가 더 앞서 나가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될 때(우열을 가르는 일률적인 기준이 상정될 때), 구체성에 근거해 만들어 나갈 다음 세계에 대한 상상은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미 형성된 공감대를 굳이 벗어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언제나 ‘다음’ 단계가 될 수밖에 없다. 사이토 씨가 ‘분슌 온라인’ 칼럼에서 쓴 표현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일본에서 “논의의 계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책”으로서 기능할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 그 전개를 보이는 듯하다. 한편 아마존 재팬의 한 리뷰는 “이 책 자체는 일본에서 사랑받지 않아도 별 상관 없지만 이 책과 같은 위치나 영향력을 갖는 문학은, 일본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책이 그렇듯 ‘김지영’ 자체는 파문을 일으키는 작지만 묵직한 돌일 뿐이며, 이것이 앞으로 어떠한 연관 관계 속에 놓이는지에 따라 화제의 공감 상품을 넘어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거나 타자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한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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