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왜 '핵담판'에 응했나…北의 '돌이킬 수 없는' 시장화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9.02.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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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포스트 하노이, 넥스트 코리아]1-④"비핵화 나선 北…김정은 1순위는 체제안정"

편집자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제1차 정상회담에서 '패러다임 체인지'에 합의했던 북미 정상은 2차 정상회담을 통해 '하노이 선언'에 나선다. 선언이 비핵화와 평화의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제시한다면 보다 중요한 것은 그 후(post)이다. 머니투데이 the300은 하노이 북미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문재인 프로세스'의 성과를 짚고, 회담 결과를 전망해 '포스트 하노이, 넥스트 코리아'를 제시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를 담보로 얻으려는 1순위는 '체제안정'이란 진단이 나온다. 북한의 시장과 사유화현상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고, 체제유지를 위해 개혁·개방에 착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이유다.



하지만 가속화한 시장화로 개방이 빨라질수록 체제는 불안해진다. '김정은의 딜레마'다.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김 위원장이 원한 게 미국과 '딜'로 얻을 수 있는 '체제안정' 보장이란 해석이다.

◇시장 흔들면 체제도 흔들…北 경제 딜레마 = 북한의 시장화는 1990년대초 탈냉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후견자’ 구소련에 의지했던 무역 시스템이 무너지자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다. 북한 경제는 1990년부터 1998년까지 9년 연속 역성장했다.



배급 능력을 상실하며 국가 주도의 생산·분배 시스템도 무너졌다. 이 무너진 계획경제의 빈자리를 시장이 자생적으로 성장하며 채웠다. 장마당(농민시장)이 1990년대 중반 급속히 확대됐고 북한 주민들의 시장 의존도가 높아진다.

시장화는 정보 유통을 수반한다. 자연스레 체제 불안도 키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기인 200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 당국은 개인 곡물 거래를 금지하는 등 시장화를 막는 정책으로 응대했다.

약화된 국가의 경제 장악력을 키우기 위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2009년 화폐개혁 등도 단행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조치들은 경제적 혼란을 부추겨 시장화를 오히려 가속하고 국가의 영향력을 줄인다.


화폐개혁으로 북한 노동자의 명목임금은 100배 인상됐지만 공급 확대가 따라주지 않아 물가가 폭등했다. 화폐가치가 100분의 1로 쪼그라들자 상인들은 공급을 줄인다. 결국 북한은 화폐개혁 후 시장을 암묵적으로 허용하게 된다.

김 위원장은 이런 상황이 진행되던 2012년 집권했다. 그는 김정일 시대와 다르게 시장화를 용인하는 조치들을 단행한다. 북한 주민 대부분 생계가 달린 시장을 막는 게 체제 존속에 악재라는 걸 인식한 데서 나온 대처법으로 파악된다.

실제 김정은 시대의 관리방법은 북한 물가와 환율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북한의 식량생산량은 400만톤대로 여전히 '부족' 수준이나 시장 거래로 공급 부족이 어느 정도 완충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김정은은 왜 '핵담판'에 응했나…北의 '돌이킬 수 없는' 시장화





◇제재 여파 가시화…'北 경제 아직은 평온하지만' = 여기에 북한 당국도 예산 확보를 위해 시장을 이용해야 하는 유인이 생겼다. 북한의 시장화로 '붉은 자본가' 돈주가 등장했고 이들은 서로를 '활용'했다. 시장은 더 커졌다. 생산수단 사유화 조짐마저 보인다.

그러다 대북제재가 강화되며 제동이 걸린다. 유엔 제재는 2016년 부터 북한 경제 전반을 봉쇄하기 시작했고 2017년 하반기 유엔 제재는 거의 대부분의 물자가 북한에 들어가는 걸 차단했다.

북한 경제가 제재 속에서도 수년간 물가 등의 측면에서 안정적인 모습이 보이자 제재에 내성이 생겼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제재 효과 회의론이다.

그러나 최근 지표들은 북한 경제가 제재 속에서 마냥 버티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중국 통계청(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 수출액, 수입액은 각각 88%, 33% 줄었다. 수출이 급감하며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다.

무역적자가 누적되며 외환보유고는 고갈되고 있고 수출이 둔화하면서 북한으로 들어오는 유동성도 마르고 있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북한이 버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최소 약 2년 치에서 최대 5년치 정도로 추정된다.

북한에 수출하는 중국 기업 일부에선 제재 품목이 아닌 소비재 신규 주문이 줄었다고도 한다. 이는 수요가 줄었다는 신호로 경기 침체의 전조다. 이런 신호들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함으로 이어진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의 통제와 시장의 완충으로 아직은 충격이 흡수 가능한 수준으로 보이나 외환보유고와 유동성 고갈 흐름이 누적되면 지금 같은 안정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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