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칼 들어도 40%는 입원 거부하는 병원

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 이강준 기자 2019.02.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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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지난해 9~12월 행정입원 요청 110건 중 65건만 입원 초치…안정실 적어 입원 현실적 어려움

정신질환자 칼 들어도 40%는 입원 거부하는 병원


#지난해 10월24일. 서울시 금천구 한 파출소에 남편이 칼로 위협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알코올중독자 김모씨(45)는 아내가 몰래 술을 버린 것을 알고 극도로 흥분했다. 가족은 경찰에 김씨의 입원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주변 정신과 병원은 입원을 거절했다. 경찰은 2시간 동안 병원을 전전한 끝에 겨우 김씨를 입원시켰다.

#설 연휴 첫째날인 이달 2일. 서울시 구로경찰서 한 지구대에 조현병을 앓는 30대 아들을 제압해 달라는 70대 노부부의 신고가 들어왔다. 약을 제때 챙겨 먹지 못한 아들은 폭력적으로 돌변했다. 아들을 제압한 경찰은 입원 시설이 갖춰져 있는 정신과 병원 4곳에 입원을 의뢰했지만 '병동이 부족해 안된다'며 모두 거절해 약을 강제로 먹이는 임시방편으로 대처했다.



경찰이 현장에서 범죄 징후가 높은 정신질환자를 발견해도 여전히 입원 조치는 쉽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조현병 증세를 보이는 30대 남성이 강남역 인근 건물에서 살인을 저지른 이후, 경찰의 정신질환 환자 입원 요청권한이 확대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각 지방자치단체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전문요원에게 행정입원을 110건 요청했다. 이 가운데 65건 59%만 입원조치됐다.



행정입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또는 정신건강전문요원(사회복지사)이 기초지자체장에게 신청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절차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가족) △경찰에 의한 응급입원 등과 함께 강제입원 조치 중 하나다.

경찰은 현장에서 정신질환자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 정신건강전문요원이나 전문의에게 행정입원을 신청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2016년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이후 법 개정을 통해 2017년 5월 응급입원만 신청할 수 있었던 권한을 행정입원으로 넓혔다.

문제는 정신과 병원에서는 경찰이 인계한 환자 상태와 무관하게 입원을 거절할 때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입원에 따른 비용부담 때문이다.


보통 정신과 병원에서는 환자를 바로 병실에 입원시키지 않고 안정실(Careroom)에서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격리한다. 병원에서 경찰 인계 환자를 받으려면 안정실이 다수 필요한데 법적으로 안정실은 병상 50개당 1개만 있으면 된다. 이 안정실이 포화상태여서 강제입원이 어렵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서울시 구로구 정신과 병원 한 관계자는 "경찰이 인계한 환자는 안정실에서 3일 이상 격리될 때도 많은데 그러면 다른 환자가 입원을 하지 못한다"며 "공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안정실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행정입원을 받아줄 병원이나 환자의 상태를 판단할 사회복지사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에 행정입원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지정된 곳이 8개뿐인데 환자 수를 생각하면 부족하다"며 "상황이 급박해도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야간 담당자가 없다며 입원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 등 인프라와 의료 인력을 늘리고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도 응급의료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법적으로 정해진 정신질환 환자 당 간호사 수나 의사 수 기준이 터무니없이 낮다"며 "미국, 호주, 영국 같은 선진국과 같이 경찰과 당직 정신과 의사가 팀을 짜서 출동하고 현장에서 입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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