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업 지배구조 '태풍'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이태성 기자 2019.02.1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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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주총 돌입, '국민연금 회오리']주주권 행사 3대 KEY 이슈-②지배구조 문제

한진그룹에서 촉발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올해 상장사 주주총회 분위기를 크게 흔들어 놓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이 문제인데, 같은 잣대를 적용하면 삼성, 현대차, SK, 한화 등 재계순위 상위 그룹들이 대거 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연말 기준 국민연금이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상장기업은 81곳, 5% 이상은 297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지난달 공개한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보유 지분이 5% 이상이거나 운용자산 중 비중 1% 이상인 투자기업을 주요 대상으로 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횡령·배임·부당지원행위(일감몰아주기)·경영진 사익편취 등 법령 위반 우려 △과도한 임원 보수 △낮은 배당성향 △5년 내 2회 이상 반대의결권 행사에도 개선이 없는 기업을 추려 중점 관리기업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지분율 기준 주요기업을 보면 △한라홀딩스 13.92% △풍산 13.55% △한솔케미칼 13.51% △신세계 13.49% △삼성전자 9.25% △롯데정밀화학 9.97% △롯데칠성 9.95% △롯데케미칼 9.75% △KT 12.19% △효성 7.39% △효성중공업11.40% △효성티앤씨 9.29% △효성첨단소재 8.17% 등이다.

이들 기업들은 언제든지 국민연금의 중점관리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경영진이나 오너들이 구속된 사례가 있었던 곳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과거를 소급해보면 대부분 그룹사들이 포함된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2009년 조세포탈과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받았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도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판결을 받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 등도 구속된 사례가 있다.


이들 그룹사들은 대부분 국민연금 지분율이 5%를 넘는 곳들이다. 일부 오너들은 상장 계열사 비등기 임원으로 이름만 올려놓은 곳들도 있으나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경영참여를 선언하며 정관변경을 요구할 예정이다. 모회사나 자회사에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손해를 끼치고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영진(등기이사)은 결원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인 의사결정 시스템, 이사회와 감사의 역할과 기능변화를 이끌겠다는 것인데, 이런 취지에서 보면 사실상 재계 주요기업들이 모두 포함되는 셈이다.

과거는 덮더라도 현재 오너일가가 재판을 받고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재판을 받고 있고, 효성그룹은 조석래 명예회장, 조현준 회장이 횡령 등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도 회사 경영 비리로 1심에서 법정구속된 상태다.

KT는 황창규 회장을 비롯해 전·현직 임원 7명이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송치돼 있다. 한진그룹과 케이스가 다르다곤 하지만 사안의 경중과 형평성 차원에선 주주권 행사를 반대할 명분도 약한 게 사실이다.

한국 기업들은 오너 견제형 이사회나 중립적인 포지션의 감사위원회를 꾸리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아직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원칙)를 제대로 운영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업 경영진 교체나 감사위원회 설치를 제안하려면 다양한 인재 풀과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국민연금도 '인재란'을 이유로 1년 이상 기금운용본부장(ICO)과 주요 실장들을 공석으로 운영한 처지다.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대해 '적극적이지만 제한된 주주권' 행사를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면 다른 주요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는 단순한 의결권 행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조직이나 인력구조를 봤을 때 주주권 행사가 드라마틱하게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기업과 파트너십 관계를 맺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주가치를 함께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보다 다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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