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갑부' '골목식당' 통해 본 자영업자의 성공 비결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19.02.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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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자영업자 다 망한다"는데 연매출 수십억 자영업자 수두룩...이들까지 지원해서야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저녁시간 TV채널을 돌리다보면 '우리나라에 소위 대박 맛집들이 이렇게나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방송채널이 어림잡아도 6~7개이고 각 방송채널마다 대박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또 수개나 되는데 전국 팔도에 소문난 대박 맛집들이 아침과 저녁으로 날마다 소개되고 있으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부분의 맛집들은 저마다의 비법을 자랑하고 특이한 재료나 숙성, 독특한 조리 방법 등 노하우를 자랑한다. 예컨대 한 작은 골목 빵집은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무려 11년간이나 제빵기술을 연구한 청년이 빵을 만들면서 입소문이 난 곳인데 방송에 소개된 후에는 11시에 오픈해서 단 40분 만에 품절될 정도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대박 맛집과 빵집 모두 연매출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훌쩍 넘는다.

또한 '서민갑부'라는 한 종편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여느 중소기업 못지 않을 정도로 '억' 소리나는 매출을 자랑하는 갑부 자영업자들이 매주 소개된다. 순대 하나로 연매출 11억원을 올리는 할머니에서, 돌벽지로 연매출 30억원, 500원짜리 꽈배기로 연매출 9억원, 직접 채취한 갖가지 해산물을 전국으로 유통해 연매출 60억원을 거두는 해녀에 이르기까지 연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매출을 올리는 자영업자들이 벌써 5년째 매주마다 소개되고 있다.



결국 연매출 수억에서 수십억원을 올리는 자영업자들이 6~7개의 방송채널에서 아침 저녁으로 매일같이 1년 365일 소개되고 있으니 이른바 갑부 자영업자들이 어림잡아도 전국에 수백명은 넘는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잠깐 눈을 돌려 언론에 소개된 자영업자 기사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영 딴 판이다. ‘불황의 그늘, 자영업자 대출 증가세’, ‘위기의 자영업자 눈물의 폐업’, ‘동네상인, 식당 호프 치킨집 다 죽는다’ 등의 비관적인 자영업 기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특히 지난해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자 최저임금때문에 자영업이 몰락한다는 기사들이 경제면을 하루 걸러 채워졌고, 심지어 편의점주들은 최저임금도 못 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편의점 왕국이라하는 이웃 일본의 점포 1개당 인구수가 2304명인데 우리나라는 1318명에 불과한 것만 보더라도 과당경쟁이 빚은 수익성 악화가 근본적인 이유일텐데 언론보도는 늘 기-승-전-'최저임금' 탓으로 돌렸다.


실제로 지난해 자영업 통계를 보면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는 407만명에서 399만명으로 약 8만명 이상 줄었다. 하지만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61만명에서 165만명으로 4만여명 늘어났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도·소매업의 1인 자영업자는 78만2000명으로 2017년보다 5만6000명, 6.6% 감소했지만, 고용원 있는 도·소매업자는 38만6000명으로 1만3000명 늘어났다. 그럼에도 최저임금과는 전혀 상관없는 1인 자영업자들까지도 최저임금이 인상돼서 장사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야당 역시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자영업자가 다 죽어간다는 논리로 정부에 대한 공세를 지난 1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했다.

이처럼 언론과 야당의 집요한 최저임금과 자영업 위기 공세로 궁지에 몰린 정부는 부랴부랴 자영업자 지원 대책들을 쏟아냈다. 급기야 지난해 정부는 영세·중소 자영업자의 비용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하에 기존에 연매출 5억원 이하 가맹점에서 연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까지 신용카드 우대수수료를 적용하는 시행령까지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단순히 따져봐도 연매출 30억원이나 매출을 올리는 자영업자라면 하루에 거의 천만원씩 매출이 나오는 그야말로 ‘서민갑부’일텐데 영세·중소 자영업자 지원 대책에 포함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남발된 자영업자 지원책은 기존 정책의 재탕, 삼탕일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의 경쟁력을 높이기보다 그저 자영업자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 농업이 국민경제의 근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겠다"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장사가 잘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이번 주에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만을 청와대로 초청해 '자영업계와의 대화' 시간을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보면 자영업자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책은 작년보다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에 경기 불황까지 겹쳐 자영업자들이 경영난에 처하고 이로 인해 고용도 부진해지고 경제난이 심화됐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물론 고사 직전에 몰린 자영업자의 생계를 보전하는 지원책이 어느정도는 필요하다. 그렇다고해서 '서민갑부'들까지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서야 되겠는가? 근본적으로 자영업자도 커다란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윤을 남기고 영업활동을 이어가는 경제주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자는 언제부터인가 항상 경제적 약자요, 최저임금 인상의 희생자요, 따라서 당연히 정부 정책으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비춰지고 있다. 정부도 이런 기류에 휩쓸려 매번 막대한 예산으로 지원책을 남발하고 자영업자를 살려야 한다면서 서민갑부들까지 지원하는 이상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경쟁력이 없어 시장에서 퇴출되고 구조조정을 거쳐야 할 자영업자조차 정부 예산으로 연명의 길이 열리고 결국 과당경쟁이라는 자영업 환경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이것이 다시 자영업자들의 위기를 가져오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만 봐도 상권분석이나 시장조사 없이 무작정 창업한 주인들, 책으로만 메뉴를 공부하는 업자들, 심지어 위생이나 음식을 다루는 기본기도 갖추지 못한 창업자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요식업계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백종원씨조차도 솔루션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물론 TV프로그램에 소개된 창업자들이 우리나라 자영업 생태계 전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현재 요식업을 중심으로 한 영세한 규모의 자영업자들이 왜 경영난이 심화되고 위기에 처해 있는지 어느 정도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지난해 소비관련 통계를 보면 민간소비가 7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고, 13년 만에 경제성장률을 초과할 정도로 소비 경기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온라인 쇼핑 매출액도 연간 22% 넘게 증가하면서 사상 처음 100조원대를 돌파했다. 그럼에도 언론에는 'IMF 시절에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경기 불황을 한탄하는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지금의 시장환경과 소비 트렌드가 20년전 IMF 시절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부터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서민갑부'나 '골목식당'에서 소개되는 대박 자영업자들의 성공 비결은 정부의 엄청난 지원정책이나 혜택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보다 앞선 자신만의 '경쟁력'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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