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갈등' 여전…"이럴거면 정책숙려제 왜 했나"

머니투데이 세종=문영재 기자 2019.02.0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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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받는 '숙려제'…대상안건·참여단 구성 등 고민 필요

'혼란과 갈등' 여전…"이럴거면 정책숙려제 왜 했나"


"학교폭력(학폭)에 경중이 따로 있나요? 피해자 심정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국민참여 정책숙려제(숙려제)를 거쳐 정부가 최근 내놓은 '학폭 개선방안'을 둘러싸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숙려제를 거친 정책에 대해 학생·학부모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숙려제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국민 관심이 크고,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국민 의견을 들어 정책을 결정하겠다며 숙려제 카드를 꺼냈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개선안에 이어 이번 학폭 개선안 마련이 두 번째다. 그러나 숙려제를 사안마다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교육부는 올해 예정된 숙려제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 비판받는 '학폭 개선안'…"가해자에게 면죄부 주나"

이번 학폭 개선안은 올해부터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은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9단계 학교폭력 가해학생조치 가운데 서면사과와 접촉·협박·보복금지, 교내봉사 등 1~3호에 해당하는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생부 기재를 유보한다는 얘기다. 교육부가 발표한 학폭 개선안은 숙려제 참여단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됐다. 교육부는 학폭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학부모, 교사, 전문가 등 30명으로 구성된 숙려제참여단의 60%가 '학생부 기재 유보'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반 국민과 학생·학부모·교사 2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학생부 기재 완화에 대한 반대가 찬성보다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학생들은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가해학생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앞으로 피해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보완책을 마련하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교육부가 추진했던 학생부 기재 개선방안도 숙려제를 거치면서 논란을 키웠다. 애초 학생부에 '수상기록 삭제' 방침이 '학기당 1개 기재'로 바뀌었다. 자율동아리 활동도 기재항목에서 제외하려 했지만 현행 유지로 결론이 났다. 국가교육회의가 추진한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은 국민대상 공론화(숙려제)를 거치며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상대평가 유지, 수능위주 전형(정시) 30% 확대 등으로 귀결됐다. 지난해 8월에는 진보교육단체가 집단으로 교육부의 숙려제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 존폐 위기 몰린 '숙려제'…대상안건·참여단 구성 등 고민 필요

교육계에서는 숙려 대상(사안)과 참여단 구성(기준), 숙려 기간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감정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은 숙려제를 통하지 않더라도 결과가 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생부 개선안이나 학폭 개선안 역시 획기적 변화를 주기보다는 기존내용을 살짝 바꾸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교육부는 정책결정 책임을 국민에 떠넘긴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숙려제 규모도 점점 줄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학폭 개선안을 마련하면서 지난해 8월 교육부는 참여단 수를 100명 정도로 고려했지만 최종 참여인원은 3분의 1에 그쳤다. 참여단의 구성 역시 '국민참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문가 중심이다. 학생·학부모 참여자 수는 10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학계나 행정전문가다. 지난해 6월 진행된 학생부 개선안 숙려제는 시민참여단만 100명과 별도로 전문가 자문단을 두기도 했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숙려제 취지는 좋지만 민감하고 중요한 교육정책에 대해 일반국민이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전문성과 현장성이 결여된 숙려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숙려 대상 안건에 대한 논란도 문제지만 숙려제 자체에 대한 존폐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미 신뢰도에 금이 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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