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가로 여행간다"… 떠오르는 '안티 투어'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2019.02.0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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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투어' 낙후 지역만 방문, 못생긴 건물 찾는 상품도…밀레니얼 세대 중심 호응

'최악의 투어'사의 워킹투어 상품에서 방문하는 포르투갈 포르투시의 버려진 집. /사진=홈페이지 갈무리'최악의 투어'사의 워킹투어 상품에서 방문하는 포르투갈 포르투시의 버려진 집. /사진=홈페이지 갈무리


전 세계 유명 관광지에서 도시의 낙후하거나 주목받지 않는 곳을 방문하는 이른바 '안티 투어'(anti-tour)가 떠오르고 있다.

최근 영국 가디언은 "전 세계 곳곳에서 '대안 관광'이 떠오르고 있다"며 "이들은 기존의 과장된 (관광) 상품과 달리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고 약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르투갈 여행사 '최악의 투어'(Worst Tours)는 관광객에게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인 포르투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가동이 중단된 공장들과 기찻길, 버려지면서 비어버린 부지와 낙후된 길거리 등 '최악'의 장소만 골라 가는 것.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는 '어글리 투어,' '부패 투어' 등의 관광상품도 있다. 어글리 투어는 빈의 고풍스러운 이미지와 상반되는 '못생긴' 건물들을 찾아가며, 부패 투어는 정권 부패의 흔적이 남은 장소 및 건물들을 방문해 그 역사를 재조명한다.



누가 갈까 싶지만 이들 관광 상품의 수요는 꾸준하다. 현지인의 삶을 체험하고 도시의 참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가 그 주축이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여행에서 "현지인처럼 살기"와 "잘 알려지지 않은 곳 발굴하기" 등을 원한다. 최악의 투어 공동창업자인 마가리다 카스트로도 "(자사 상품 고객) 누구도 관광객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관광에는 현지인들이 참가하기도 한다. 자신이 사는 도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부패 투어와 어글리 투어를 운영하는 유진 퀸은 "참여자의 80%가 빈 현지인"이라며 "자신이 사는 도시조차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관광으로 인해 현지인의 삶이 급변하면서 안티 투어가 떠오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캠퍼스의 딘 맥캐넬 사회학과 교수는 "관광객들은 도시의 참모습을 보기 원하지만 대부분 시 당국이 준비한 '가짜 현실'을 보게 된다"며 "이에 따라 현지인들도 '여행의 시대'에(가짜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스트로는 관광수요가 늘면서 도시 주민들이 겪는 좌절을 공론화하기 위해 최악의 투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투어에 참여한 이들과 함께 주택·재개발 정책 및 과도한 임대료 인상 등 포트루의 현실을 논의하고 있다. 포르투가 최근 몇 년간 유럽의 인기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일부 주민들의 삶이 오히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역 상권은 건물 임대료가 오르면서 스타벅스 등 대형 체인에 그 자리를 내줬으며, 주민들도 삶의 터전을 잃고 도시 중심부에서 바깥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유명 관광지에서 현지인들의 삶이 어려워지는 것은 포르투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1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베니스 등에서는 시민 수천여 명이 관광 반대 시위를 벌인 일이 있다. 이들은 물가가 오르고 소음·오염 등으로 인해 삶의 질이 낮아졌다며 당국에 조치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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