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편의점·치킨집이나 하지' 옛말…갈 곳 없는 명퇴자들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김은령 기자, 정혜윤 기자 2019.01.31 17:41
글자크기

[명퇴의 정석]① 과밀출점에 좁아진 프랜차이즈 창업, 한숨쉬는 명퇴자

편집자주 새해 들어 은행권에서 시작된 명예퇴직이 일반기업, 공공기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명예’는 빛바랜 수식어일 뿐,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야 하는 서글픈 퇴장인 경우가 많다. ‘내년 설에도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모처럼 모인 가족·친지를 바라보는 한국의 중장년들의 어깨를 부양의 무게가 짓누른다.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43회 프랜차이즈 서울' 전시회를 찾은 예비창업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2018.10.18.  myjs@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43회 프랜차이즈 서울' 전시회를 찾은 예비창업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2018.10.18.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T리포트]'편의점·치킨집이나 하지' 옛말…갈 곳 없는 명퇴자들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50대 김진성 씨는 올해 초 한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장을 찾았다. 다니는 회사가 설 이후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해서다. 2년치 연봉을 명퇴금으로 주는데 기회를 놓치면 자칫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 고민 끝에 박람회를 찾았지만 남은 것은 실망감 뿐이다. 잘 알려진 프랜차이즈는 이미 포화상태여서 신규 출점이 어려웠다. 신도시에 한 두개씩 나오는 점포 자리는 이미 오픈 대기자만 수십명에 달했다. 기존에 ‘회사서 잘리면 편의점, 치킨집이나 차리면 되지’라며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물론 ‘듣보잡’ 브랜드는 경쟁이 덜했지만 자칫 명퇴금만 날리는 게 아닌지 고민스러웠다.



40대·50대의 56.6%가 은퇴 후에도 자녀부양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는 보험개발원의 ‘은퇴시장 보고서’가 있었다. 정년보다 빨리 명예퇴직을 하는 경우 이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최근 경기가 하강하면서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거 쏟아져 나왔던 수준은 아니어도 명퇴자들이 늘고 있다. 정부가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공공기관의 명퇴를 유도하고 있어 이 숫자는 더 많아질 수 있다. 그동안 명퇴자들은 편의점이나 베이커리, 치킨, 피자 프랜차이즈 등을 창업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옛말이다. 주요 프랜차이즈는 수년 전부터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신규 퇴직자들을 흡수할 만큼 출점이 많지 않다. 가까스로 출점하더라도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통계청이 집계한 2017년 기준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수는 18만 1000개, 종사자는 66만6000명이다. 1년 전보다 가맹점은 6.6%(1만1000개), 종사자는 8.6%(5만3000명) 늘었다. 지난해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임대료 상승 여파로 증가세가 크게 둔화됐다. 편의점의 경우 2017년 5000여개였던 신규출점이 지난해 2000여개로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올해부터는 출범자제 자율협약이 시행돼 더 준다.



치킨의 경우 이미 2017년 가맹점수가 2만4654개로 전년보다 2.8%(700개) 역성장했다. 피자도 마찬가지로 도미노피자, 미스터피자, 피자헛 등 주요 피자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가맹점을 늘리기보다는 저매출 점포 구조조정에 바쁘다. 피자업계 한 관계자는 “피자 프랜차이즈는 신도시 등 일부 지역외에는 신규출점이 거의 없어 가맹점주를 적극 모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때 유행하던 한식뷔페 등 신규 외식 프랜차이즈는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자연 소멸중이다.

프랜차이즈 사업 활황기에 본사와 가맹점주가 함께 성장했던 것과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전성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당시 명퇴자들이 편의점과 베이커리, 치킨 등 가맹점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대표적으로 1995년 창업한 BBQ는 외환위기를 거치며 급성장했고 1999년 교촌치킨 역시 수많은 퇴직자 사장님 덕에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 본격화된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 베이커리 사업은 퇴직자들의 로망이었다. 3억~5억원 가량 투자해 창업하면 월평균 800만~1000만원 가량의 고수익을 올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맘스터치와 까페베네, 이디야, 설빙 등 신흥 프랜차이즈도 인기를 모았다. 정부 역시 고용난 해소와 신도시 배후시설 확충을 위해 프랜차이즈 창업을 장려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외식 경기가 악화되는 가운데 최저인금 인상 등 인건비 증가와 원자재비, 임대료 상승 등 비용이 늘고 프랜차이즈 본사의 무분별한 출점경쟁으로 점포당 수익성이 악화일로다. 본사 갑질논란과 수익저하로 과거에 비해선 관심도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문의는 지속된다. 명예퇴직에 정년퇴직자까지 자영업 시장에 계속 공급되는데다 취업난에 빠진 청년들까지 가세하고 있어서다. 장사경험이 전무한, ‘백면서생’에 가까운 퇴직자들은 독자 사업보다는 검증된 프랜차이즈를 선호한다.


한 편의점 본사 관계자는 “일부 편의점주들이 수익성이 낮아 못 살겠다고 하지만 실상 대다수 편의점은 일정이상의 수입을 거두며 만족하고 있다”면서 “본사에 가맹점 개설과 창업문의가 꾸준한데 솔직히 기존점이 폐점하지 않으면 더 이상 열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한 프랜차이즈 전문가는 “솔직히 50대에 명퇴하고 다른 회사에 취업 못하면 생계수단으로 삼을만한 게 프랜차이즈 외엔 마땅치 않다”면서도 “최근에는 과밀출점 이슈에다 신규출점을 반대하는 기존 점주들의 목소리도 커지면서 퇴직자들이 갈 곳이 사라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