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문은 1948년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과 결혼한 뒤 50세였던 1979년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호텔신라 상임이사로서 서울신라호텔 전관의 개보수 작업과 제주신라호텔 건립 등을 이끌었다. 1983년 현재 한솔제지의 전신인 전주제지 고문으로 취임했다.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본격적인 독자경영에 나섰다.
한솔그룹 관계자는 "여성 경영인으로서 섬세한 면모를 갖췄으면서도 경영활동에서는 누구보다 담대함과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면서 "경영뿐 아니라 개인 소장 예술품을 기증하는 등 국내 문화예술분야 발전에도 헌신해 온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 고문은 문화예술에도 관심이 컸던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전통문화 계승과 문화 예술계 후원을 위해 1995년 한솔문화재단을 설립했고, 2013년에는 '뮤지엄 산'(Museum SAN)을 건립했다. 2000년에는 모친인 박두을 여사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국내 최초로 여성 전문 장학재단 두을장학재단 설립을 추진해 여성 인재 발굴에도 힘썼다.
특히 '뮤지엄 산'은 이 고문 필생의 역작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2005년부터 8년에 걸쳐 지었다. 세계적인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아시아 최초로 4개나 설치돼 개관 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뮤지엄 산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에서도 '다른 곳에는 없는 꿈 같은 뮤지엄'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큰 공을 세우셨다"면서 "우리나라 여성 경영인들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고 여성인재 육성에도 발자취를 남겼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삼성가의 맏이로 범삼성가 모임을 주도하는 등 가족 간 화합을 위해서도 노력을 했다. 2012년 삼성가의 소송이 벌어졌을 당시에는 "분쟁을 해서는 안 된다"며 가족 간 불화를 막는데 힘썼다. 법원 판결 직후에는 "이번 판결로 집안이 화목해지기를 바란다"며 화해와 화합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