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시급 1만원' 고깃집의 실험, 그 이후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2019.01.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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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저녁 8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먹자골목. 1년 만에 찾은 거리는 그대로였다. 네온 빛을 휘감은 희뿌연 미세먼지 풍경도 그때와 똑같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그 가게는 없었다. 낯선 간판과 다른 메뉴. 고깃집은 간데없고 닭갈빗집이 새롭게 들어서 있었다.

‘결국 못 버티고 접었구나.’ 1년 전 “장사가 안돼 어렵다”던 고깃집 A사장의 고충이 떠올랐다. 닭갈빗집이 지난해 4월쯤 문을 열었다고 하니 아마도 A사장은 그때 이미 폐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A사장이 고깃집을 창업한 것은 2017년 5월. 탄핵으로 정권이 바뀌고 대선 공약이었던 최저임금 1만원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때다. 당시 이 가게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시급 1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같이 일하는 직원이 동업자로서 함께 가게를 키워나갔으면 좋겠다”는 게 시급을 1만원으로 책정한 이유였다.

오픈 초기에는 찾는 손님이 꽤 있었다. 언론에 소개되며 맛집으로 입소문을 탄 덕도 봤다. 그러나 그 열기와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손님들의 발길은 점점 줄었다.



가게 사정이 여의치 않자 A사장은 결국 아르바이트생을 줄였다. 오픈 당시 2명의 아르바이트생을 1주일 내내 고용했지만 매출이 줄어들면서 1명으로 줄였고 근무시간도 이틀로 단축했다. 이 과정에서 시급도 자연스레 1만원에서 8000원으로 내려갔다.

“장사가 안돼도 임대료 등 고정비는 내야 하니..” 대부분 자영업자와 마찬가지로 비용을 줄이기 위해 A사장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나마 그는 “직원이 열심히 할 수 있게 조금이라도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다”며 당시 법정기준(7530원)보다 높은 시급을 유지했다.

찰나의 인연에 불과한 A사장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낸 것은 단순히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다.시급 1만원 실험이 1년도 안돼 실패했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그의 실패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제도적 문제들이 도사린다. 임대료 등 과도한 지대추구 경제구조, 수익자부담 원칙과는 동떨어진 카드수수료, 불공정한 가맹점 거래 관행, 효율성 낮은 복잡한 정책지원 체계 등등. 가뜩이나 열악한 자영업 생태계를 갉아먹는 구조적 모순들이 그것이다.

A사장이 가게 운영에 가장 큰 부담을 느낀 것도 손익분기점(월 700만원)의 35% 이상을 차지하는 임대료와 카드수수료였다. 아르바이트생을 줄이고 시급을 깎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는 주15시간 이하 단기 아르바이트생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몰라서였다.

작금의 자영업의 어려움을 경기부진이나 공급과잉 탓으로만 돌려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이같은 구조적 모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자영업의 자생력과 경쟁력 강화는 요원하다. 일자리 문제나 최저임금 갈등 해소도 마찬가지다. 정부·여당이 입법을 추진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 기본법’을 비롯해 모든 자영업 대책은 이같은 구조적 모순들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아울러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도 시급히 확충해야 한다. 일반 근로자는 실업급여로 생계를 꾸리며 재기를 모색할 수 있지만 자영업자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연초부터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내수부진에 수출까지 휘청인다. 사회 곳곳에서 선한 의도들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준비할 때다.
[광화문]'시급 1만원' 고깃집의 실험,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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