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세]명동 취천루의 風味, 그리고 서촌 취천루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19.01.1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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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의 맛으로 보는 세상]3회 서촌 취천루

편집자주 맛있는 음식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정보를 나누는 것을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합니다. 저의 미식 경험은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맛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과하게 달거나 맵지 않은 균형 잡힌 음식은 삶의 원동력이자 즐거움입니다. 추억과 정이 깃든 다양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맛으로 보는 세상'(맛보세)으로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취천루의 고기만두 삽화취천루의 고기만두 삽화


어릴 때부터 명동을 무척좋아했다. 명동에 가면 항상 입구에 '취천루(聚泉樓)'란 70년도 더 된 맛있는 만두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거리와 쇼핑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맛집이 의례 그러하듯 파는 음식은 만두가 유일했다. 크게 돼지고기와 소고기 두 가지 재료로 나눠지고, 각각 피가 얇은 교자 만두와 두툼한 고기만두 2가지 메뉴가 있었다. 추가로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물만두도 있었다. 피가 얇아 본연의 재료 맛이 더 와 닿는 교자만두와 고소한 맛이 일품인 고기만두는 단언컨대 맛의 신세계를 열어 줬다.



당시로선 생소한 이색적 중국 향신료 향이 조금 나는 중국 텐진 스타일의 만두였다. 한번 취천루의 만두를 먹으면 잊지 못할 정도로 중독성이 컸다. 명동은 성지(聖地)로 자리 잡았다. 지갑이 얇았던 학생 때도 만두를 먹기 위해 명동을 자주 찾았을 정도로 취천루의 유혹은 거절하기 힘들었다.

보통은 소고기 만두보다 조금 저렴한 돼지고기 만두를 먹었다. 그러다 가끔 돈이 넉넉할 때는 소고기 만두를 주문했다. 대학 다닐 즈음 만두와 고량주 등 주류를 함께 즐기게 됐다. 술(酒)과 만두의 조화를 즐기게 된 것. 지금도 만두는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자 좋아하는 술 안주이다. 지금도 만두 맛집이란 맛집은 빼놓지 않고 섭렵하고 다닌다.



취천루는 일제 시대부터 명동 초입 자리를 지킨 대표적인 노포(老鋪)였다. 명동을 기억하던 이들에겐 명동교자와 함께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맛집이다. 하지만 취천루는 지난 2013년 어느날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명동을 찾았다 취천루가 사라진 것을 보고 느꼈던 헛헛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더 이상 취천루 만두를 맛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적했다.

그때부터 혹시나 취천루가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을까 간간히 검색해 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몇 년 간은 어떠한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운 취천루 만두와 비슷한 맛을 찾아 인천 차이나타운 등을 헤맸다. 포기하고 지내던 어느 날 다시 취천루 소식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소식통에 따르면 취천루 주인은 나이가 들어 가게 문을 닫았고, 취천루에서 30년 간 만두를 책임지던 주방장이 석계역에 가게를 냈다 다시 도심 지역인 서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서촌으로 달려갔다. 예전처럼 만두 만을 팔지 않고 짜장면, 짬뽕 등 다양한 식사와 요리를 함께 파는 중화 요릿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로 나뉘던 만두가 돼지고기로 일원화되고 고기만두, 교자만두, 해물만두 등으로 바뀌었다. 예전에 없던 군만두도 판다.


반가운 마음에 자주 먹던 교자만두와 고기만두를 한 판 씩 시켜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육즙이 입안에 감돈다.

입맛이 변했는지 예전만큼의 큰 감흥은 없었지만 명동의 추억 만큼은 고스란히 살아났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만두집이 다시 문을 연 것은 너무 나도 반가운 일이다. 광화문 인근에서 약속이 있을라 치면 서촌 취천루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고량주와 만두의 막강 조합은 최고의 선물이다.

취천루는 만두도 좋지만 가지튀김도 맛 볼 만 하다. 가지 안에 소를 두툼하게 넣어 튀김옷을 입혀 튀겨냈다. 가격 대비 푸짐한 양이 좋다. 다만 위에 뿌려주는 칠리소스는 단 맛이 지나치게 강하다. 소스를 따로 달라고 해 곁들이는 것이 낫다.

물기를 쫙 뺀 두부와 돼지고기, 부추, 양파, 당면 등을 듬뿍 넣어 갓 쪄낸 찐만두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어머니께서 추운 겨울날 만두를 빚을 때가 기억난다. 항상 기본으로 300개 이상을 빚었다. 엄청난 대식가 3형제가 앉은 자리에서 찐만두 100개를 먹어치워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만두 빚는 일은 자신 있다. 만두 덕후로 앞으로 전국의 더 많은 만두집을 소개할 기회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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