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깼다고요?…실적으로 진검 승부해야죠"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9.01.14 05:00
글자크기

증권사 첫 '여성CEO', 박정림 KB증권 사장 인터뷰…"탄탄한 서비스로 실적 다지고, 건강한 조직문화 만들 것"

-그룹 시너지 전략 강화…"KB증권 가면 다 된다" 확고한 평판
-직원 아이디어 수집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실행되도록 노력
-여성 인재들에겐 '융통성·희생정신·객관적 사고' 강조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본사 집무실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본사 집무실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그녀의 사무실 책상은 언제나 깨끗하다. 결제 서류는 미루지 않고 그때 그때 검토해 내보낸다. 퇴근하는 그녀의 손은 늘 무겁다. 업무 시간에 못 다 읽은 각종 참고자료 뭉치를 쇼핑백에 담아간다. 하지만 이 쇼핑백 속 자료도 가급적 그날 다 소화하는 것이 철칙이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한 날도 예외가 아니다. 졸면서라도 다 읽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비공채 출신으로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에서 지주·은행·증권 3개 법인 자산관리(WM) 총괄 임원을 겸직하며 KB의 임원 역사를 새로 쓴 뒤 지난해 말 국내 증권업계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되며 ‘유리천장을 깼다’는 타이틀을 거머쥔 주인공,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 얘기다.

"유리천장을 깼다고요? (웃음) 이제 시작이니 아직은 천장에 살짝 금만 낸 것이죠. 앞으로 회사를 잘 이끌어 올 연말 실적으로 확실히 천장을 깨 보겠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KB증권 집무실에서 머니투데이 기자와 만난 박 사장은 "사실 '은행 출신 여성 CEO'라는 점에서 어깨가 무겁다"며 "기존 남성 CEO들보다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은행에서 왔지만 증권 경영도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2가지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변동성이 커지면서 올해 국내 증시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신임 사장 입장에선 부담 요인이다. 박 사장은 금리형·월지급식 등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글로벌 원마켓' 시스템을 통해 해외주식 비중을 높이는 등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사업 전략을 세웠다.

박 사장은 "시장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 방향을 잃은 고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야 말로 증권사가 해야 할 일"이라며 "한 가지 상품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상품을 구비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데 힘을 싣겠다"고 말했다.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사진=홍봉진 기자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사진=홍봉진 기자
업계 1위인 'KB국민은행'과 달리 규모에 비해 업계 존재감이 다소 약한 'KB증권'만의 뚜렷한 컬러를 내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KB증권에 가면 다 해결된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겠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기업이나 브랜드 평판은 하루 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2년 정도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며 "이제 통합(옛 현대증권+KB투자증권) 출범한 지 2년이 지났으니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이어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영업이 강한 현대증권의 DNA에 종합금융그룹인 KB의 파워를 더하면 어려울 것도 없다"고 자신했다.

KB국민은행과 KB증권 창구가 한 자리에 들어선 복합점포(2018년말 현재 65개)는 더 늘릴 방침이다. 특히 압구정동·삼성동 등 서울 강남권과 부산 일대 복합점포를 적극 개설하고 점포 규모도 키운다. 박 사장은 "국민은행이 땅을 사서 짓고 있는 압구정동 PB센터에 KB증권 영업점도 낼 계획"이라며 "은행의 고객, 증권의 상품이 만날 접점을 늘리면 시너지 효과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KB증권의 금융상품자산 규모는 지난 2년간 폭풍 성장했다. 통합 직전인 2016년말 12조8000억원 수준이던 WM 금융상품 자산규모가 지난해말 20조4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올해는 이 규모를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박 사장은 "금융상품자산 규모가 단기 급증하긴 했지만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KB증권 규모를 감안할 때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며 "더 적극적인 영업으로 조만간 업계 세컨티어(2위권·20조원대 후반)를 따라 잡겠다"고 강조했다.

빠르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 확산에 힘쓰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박 사장은 "직원들에게 주기적으로 아이디어를 강요하고 정작 아무것도 반영하지 않는 조직은 미래가 없다"며 "직원들의 아이디어나 제안을 적극적으로 실행·적용하고,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문제 때문인지 피드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사진=홍봉진 기자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사진=홍봉진 기자
각계 각층에서 일하는 여성 후배들에게는 '레인보우 리더십(유연성)'과 '희생정신', '객관적인 사고'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사장은 "어떤 상황, 어떤 누구와도 소통하고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뛰어난 업무 능력과 함께 남을 배려하는 희생정신을 겸비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려는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직급이 높아질수록 조직이 요구하는 스펙 역시 달라진다는 점을 인정하고 높아진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최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면서 업무 집중도가 높은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기 좋아졌지만, 여전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학생 자녀 둘을 둔 박 사장은 "관계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주5일 술자리를 했고, 가정(육아)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여성이 직장에서 성공하려면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등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이 강요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도록 기업은 물론 국가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정림 사장은
<고향·학력> ▲1963년 서울 출생 ▲1982년 서울 영동여고 ▲1986년 서울대 경영학 학사 ▲1991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

<주요 경력> ▲1986년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 ▲1994년 조흥은행 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1999년 삼성화재 자산리스크관리 부장 ▲2004년 KB국민은행 시장운영리스크 부장 ▲2012년 KB국민은행 WM본부장 ▲2015년 KB금융지주 리스크 관리 책임자 부사장 겸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 ▲2017년 KB금융지주 WM총괄 부사장 겸 KB국민은행 WM그룹 부행장 겸 KB증권 WM부문 부사장 ▲2019년 KB금융지주 자본시장부문장 겸 KB증권 대표이사 사장

<취미> ▲골프 ▲독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전략의 신'(송병락), '어쩌다 한국인'(허태균)) ▲VOD(영화·드라마) 시청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