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100주년에 바라보는 문화재 지킴이 '간송의 땀방울'

머니투데이 배영윤 기자 2019.01.0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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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 4일~3월31일 개최, 간송미술관·DDP 마지막 전시…국보 6점·보물 8점 등 60여점 전시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에 전시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사진=배영윤 기자'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에 전시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사진=배영윤 기자


"반드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낙찰받으라!"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에서 고미술 경매를 전담한 유일한 단체인 경성미술구락부에서 1936년11월22일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대수장가의 집에서 나온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 1만4580원에 낙찰된 것. 당시 경매사상 최고가였다. 400~500원 선에서 경매가 이뤄지던 때였고, 일본 거물급 수장가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조선의 도자기는 2000원 이상 팔린 적 없던 시절이다.

세 가지 색을 사용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단아한 백자였다. 조선 청년 전형필(간송)은 이 아름다운 백자가 나라 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고 확신했다. 당시 국제적 명성을 떨치던 일본 대수장가 야마나카 상회 주인과 치열한 경합 끝에 백자는 간송의 품에 안겼다. 비단 낙찰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인과 자존심 대결에서 거둔 승리였다.



문화를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했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의 땀방울이 깃든 귀한 유물과 문화재,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디자인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 오는 4일부터 3월31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개최된다.

간송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대항해 우리 문화재를 온 몸으로 지켜온 컬렉터이자 문화재 수호자다. 최초의 사립미술관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을 세웠다. 3·1운동 중심에 섰던 보성학교가 경영난으로 폐교 직전에 몰리자 거금을 들여 인수하는 등 민족사학 양성에도 힘썼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열리는 만큼 이번 전시는 그동안 선보여왔던 간송 전시와 다르다. 그동안 간송 컬렉션의 유물, 문화재의 가치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전시는 시대적 상황과 유물에 깃든 이야기에 집중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간을 살아온 간송이 어떻게 우리 문화재를 지켜왔고, 대한의 미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에 대한 '히스토리'를 조명했다.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에 전시된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사진=배영윤 기자'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에 전시된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사진=배영윤 기자
이번 전시는 총 5개 공간에 국보 6점과 보물 8점 등 총 60여점을 선보인다. 간송이 기와집 10채 가격에 해당하는 거금 2만원을 주고 일본인에게 사들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를 비롯해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일본 거물급 컬렉터와 치열한 경합 끝에 구매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 등이 문화재 수집 뒷이야기와 함께 펼쳐진다.

특히 마지막 전시공간인 '갇스비 콜랙션'에서는 간송이 일본 주재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로부터 사들인 고려청자 20점 중 12점이 전시돼있다. 개스비는 고미술품 도자기 수집가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 당시 일본에 머물던 개스비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첩보를 들은 간송은 단숨에 일본으로 건너가 개스비가 갖고 있던 고려청자 22점 중 20점을 사들인다. 너무 고가였던터라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충남 공주 일대 땅 만 마지기를 팔아야 했다.


이밖에 친일파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뻔한 겸재 정선의 화첩을 발견한 이야기, 일제 탄압 속에 흔들리던 민족사학 보성고보를 인계해 운영한 구국 의지도 엿볼 수 있다. 합법적 문화재 반출구였으나 간송에게는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이었던 경성미술구락부를 통해 우리 문화재 수탈의 아픔도 느낄 수 있다.

광복 후 매년 3월1일 거행된 보성학교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낭독하기 위해 간송이 직접 쓴 독립선언서 필사본./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간송미술문화재단광복 후 매년 3월1일 거행된 보성학교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낭독하기 위해 간송이 직접 쓴 독립선언서 필사본./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간송미술문화재단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DDP에서 선보이는 13번째 전시이자 마지막 전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간송 컬렉션을 일반인들이 좀더 쉽고 편하게 접하게 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아닌 DDP에서 5년간 전시를 이어왔다.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간송미술관은 1938년에 지어진 건물인데다 성북동이라는 공간적 한계로 많은 분들이 와서 보시기에 불편했기 때문에 한계를 벗어나 DDP에서 대중적인 전시를 시작했다"며 "그동안 보다 편한 장소에서 더 많이 알리고자 했던 목적을 어느 정도 충족한 것 같고, 이제는 다른 방향을 모색할 때라 생각해 이르면 올 가을, 늦어도 내년 봄부터 간송미술관에서 전시를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간송미술관 전시는 기존과 같은 1년에 두 번(봄·가을) 선보이던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기간과 콘텐츠 운영 방식에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 간송미술문화재단 측 설명이다. 전 관장은 "문화재청, 서울시와 협업해 간송미술관 앞에 수장고를 신축할 계획으로 올해 설계를 시작해 내년 준공 목표다"라며 "수장고가 완성되면 미술관 기능을 그쪽으로 옮기고 현재 미술관 내부는 한국전쟁 이전에 간송이 사용하시던 형태로 복원해 시민들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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