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규제가 혁신을 내쫓는 나라

머니투데이 임상연 중견중소기업부장 2019.0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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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의료기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스카이랩스는 혁신성장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준 대표 사례다. 2015년 9월 출범한 이 회사는 반지형 웨어러블 의료기기 ‘카트’(CART)를 개발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만 있으면 24시간 365일 내내 심방세동을 측정해준다. 내부에 장착된 광학센서가 손가락 속 혈류 속도를 측정해 이상유무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정확도가 98%에 달한다고 한다. 이상징후를 감지하면 해당 정보를 실시간으로 지정한 의료기관에 보내 제때 적절한 조치도 받을 수 있다.

스카이랩스는 이 제품으로 지난해 7월 글로벌 제약기업 바이엘이 진행한 디지털 헬스케어 경진대회에 참가해 11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8월에는 유럽심장학회(ESC)가 처음 개최한 신기술 부문에서도 최고 혁신제품으로 뽑혔다. 세계가 주목하는 카트는 의료 소비자의 건강증진과 편익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지만 국내에선 빛을 볼 수 없는 처지다. 의사와 환자간 원격진료를 금지하는 해묵은 의료법 때문이다.



국내에서 원격진료 규제완화 논의는 2000년 시범사업을 통해 물꼬를 텄지만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쳐 19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그 사이 세계 원격진료 시장은 급성장해 지난해 기준 25조3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에는 45조5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규제장벽에 막힌 스카이랩스는 결국 해외로 발길을 돌렸다. 내년 상반기 미국, 유럽 등지에서 먼저 인증을 받아 제품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는 “해외에서 의사나 제약사, 헬스케어 전문가들은 만나면 ‘한국에서 (사업을) 하지 않고 왜 나와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혁신기술을 개발하고도 규제에 막혀 다른 나라를 전전해야 하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이상하고 한심하게 여겼을 터다.



규제로 인해 해외를 맴도는 사례는 비단 스카이랩스만이 아니다. 스마트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대다수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실정이다. 대기업인 SK텔레콤도 국내에서 못하는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을 중국에서 한다. 공유경제, 핀테크,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산업들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카풀 스타트업에 50억원을 투자했다가 낡은 규제와 택시업계 반발에 막혀 이를 처분하고 대신 미국·호주·인도·동남아 등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다.

정부는 혁신성장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정작 혁신성장의 씨앗인 기업과 사람, 자본은 규제를 피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혁신성장만 목이 터져라 외칠 뿐 선제조건인 규제개혁은 진전이 없는 탓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송년간담회에서 “아무도 십자가를 지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규제 관련) 법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개혁에 나서야 할 정부도, 관련법을 처리해야 할 국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광화문] 규제가 혁신을 내쫓는 나라


이쯤 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규제개혁이 말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주문에 그치지 말고 실천까지 직접 챙겨야 한다. 성과가 저조한 부처 장관에게 책임을 묻고 필요하다면 국회를 찾아가 여야를 설득하는 일도 마다해선 안 된다. “냄비 속 개구리가 화상을 입기 시작할 것”이라는 박 회장의 경고처럼 경계가 사라지고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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