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이후 10여년…백신주권 확보는 '제자리 걸음'

머니투데이 민승기 기자 2018.12.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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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필수예방접종 22종 중 16종, 수입에 의존…오리지널사 특허장벽에 출시 무산되기도

신종플루 이후 10여년…백신주권 확보는 '제자리 걸음'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이후 예방백신 자급화 필요성이 부각됐지만 ‘백신주권 확보’를 위한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신종플루 대유행 당시 백신을 생산하는 선진국들은 자체생산을 통해 우선적으로 백신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백신 생산 자급능력이 충분하지 않아 정부 관계자가 글로벌 백신 생산 제약사가 있는 나라로 급파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외국 제약사에게 '백신 구걸'을 하러 다녔다는 날 선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백신 주권 확보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현안이지만 여전히 '필수 백신'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 필수백신 22종 중 16종 전량 수입…한국 백신자급률 27%= 19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가필수예방 백신은 총 22종이며, 이중 국내에서 자체 생산이 가능한 필수 백신은 6종에 불과하다. 백신 국산화가 이뤄진 필수예방 백신은 B형간염, 수두, 신증후군출혈열, 독감, 일본뇌염(사백신), 파상풍-디프테리아(Td) 등이다.

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DTaP), 결핵, 폐렴구균 백신 등 나머지 필수 백신 16종은 여전히 전량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는 다국적 제약사의 사정에 따라 필수 백신 공급이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에는 피내용(주사형) 결핵백신의 경우 수입물량이 부족해 임시로 경피용(도장형) 결핵백신으로 대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등 대다수 국가는 경피용이 아닌 피내용 결핵백신을 국가필수예방 백신으로 선정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피내용 결핵백신을 일본·덴마크에서 전량 수입해 사용한다. 당시 일본 수입 물량이 현지 공장의 질 관리 보완과 조직개편 등의 문제로 크게 줄면서 국내 수입물량이 부족해졌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덴마크 백신 생산기업은 민영화 절차를 진행하면서 생산공장 운영을 일시적으로 멈춰야 했다. 덴마크는 곧바로 백신 생산을 재개했지만 백신 제품 질과 안전에 대한 점검 등의 이유로 백신 재공급 날짜는 미뤄졌다. 결국 지난 6월 덴마크 결핵백신 수입물량이 들어오고 나서야 피내용 결핵백신 공급부족 사태가 해소됐다.


◇오리지널사 높은 특허장벽에 국산 백신 출시 좌절 = 국내 백신 개발 제약사들도 백신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다국적 제약사들의 높은 특허장벽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SK케미칼은 국가필수예방 백신인 '폐렴구균 백신'을 개발하는데 성공,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품 허가까지 받았다. SK케미칼은 자사의 폐렴구균 백신의 빠른 출시를 위해 오리지널 의약품(제품명: 프리베나13)을 개발한 화이자를 상대로 특허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프리베나13은 세계 폐렴구균 백신 시장에서 80~90% 이상의 점유율을 보이는 제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오리지널사인 화이자의 손을 들어줬고, 결국 SK케미칼은 프리베나13의 조성물특허 기간(2026년)까지 제품을 출시할 수 없게 됐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국내 백신 개발 제약사들도 백신주권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특허 문제로 개발이 어렵고, 개발하더라도 출시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SK케미칼 사례에서 보듯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특허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 백신 주권 위해 '공공백신 개발지원센터' 설립= 정부도 백신 주권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백신 수입시 장기계약 도입 추진' 등 공급 안정화 정책뿐 아니라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설립' 등 국산화 지원사업에 나섰다.

질병관리본부는 19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공공백신 개발·지원센터' 신축공사 기공식을 개최했다. 2020년 12월 준공 예정인 이 센터는 민간 개발이 어려운 신종 감염병 백신 등을 개발·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특수시설인 고위험 병원체 백신개발을 위한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과 백신전용 동물실험을 위한 생물안전 2,3등급 동물실험실을 비롯해 백신개발을 위한 면역분석실, 대량항원 제작실 등을 갖추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해당 센터의 주요 시설 및 장비는 민간 백신 개발사의 백신 효능 평가를 위해 공동 사용할 예정"이라며 "백신 후보물질 민간이전, 표준 효능평가시험법 구축 등을 통해 백신 국산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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