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스,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을 가리지 않고 스파이더맨으로 사는 것은 외롭다. 가까운 사람은 세상을 떠났고, 소중한 사람들이 더는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정체를 밝힐 수 없다. 거미 가면을 쓰고 사람을 구하느라 개인의 삶은 삐걱거리고, 사람들은 그의 진심을 의심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지난 9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4 전용 게임으로 발매된 ‘스파이더맨’은 플레이어가 스파이더맨의 삶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만든다. 스파이더맨이 되어 미국 뉴욕의 도심을 거미줄로 활강하는 것은 신난다. 하지만 메이 숙모와의 약속 장소에 갈 때도, 직장 연인 메리 제인과 만나야 할 때도, 직장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도 사건 발생을 알리는 경찰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음을 다잡고 사고 현장으로 갈 때면 언론인 J. 조나 제임슨이 팟캐스트를 통해 스파이더맨이 사회의 해악이라고 주장한다. 故스탠 리가 스티브 딧코와 스파이더맨을 탄생시킨 뒤 56년 동안, 스파이더맨은 이런 삶을 살았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그 모든 스파이디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미래의 희망에 대한 약속처럼 느껴진다. 원래의 스파이더맨이었던 피터 파커가 죽은 세상에서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된 마일스 모랄레스, 또다른 지구에서 메리 제인과 이혼한 피터 B. 파커, 또다른 지구와도 다른 지구에서 피터 파커 대신 스파이더우먼이 된 그웬 스테이시 등 모든 평행우주에는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진 스파이디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남은 사람들을 잃지 않기 위해 정체를 숨겨야 한다. 아직 거미의 힘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마일스 모랄레스는 평행 우주가 무너질지도 모를 위기 앞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조차 막막하다. 그 와중에 소중한 사람도 잃었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 역시 비슷한 상실을 경험했다. 그리고 옆에서 위로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여성이 빌런도, 히어로도, 무기와 아지트를 제공하는 조력자도 모두 가능해지자 피터 B. 파커의 말처럼 “편견”을 깰 수 있는 새로운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나타난다. 코믹스에서 평행우주와 같은 설정을 공유한 다양한 정체성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한 이유. 56년동안 쌓인 코믹스의 이야기와 설정 위에서,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는 코믹스를 꾸준히 읽어야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었던 설정들과 슈퍼히어로가 전하는 올바른 가치를 함께 설득한다. 피터 파커가 거미의 초능력을 받은 이유는 이제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의 세상 바깥에 있는 다양성이 더해지자, 이 익숙한 이야기가 새로운 재미를 준다. 이제는 코믹스 팬이 아니라도 ‘스파이더맨’이라는 단어에서 마일스 모랄레스와 그웬 스테이시를 함께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스파이디가 가장 위험한 임무를 자신이 하겠다며 주저 없이 나선다. 그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스파이디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