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정답지향적인 사회의 비극

머니투데이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2018.12.1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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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정답지향적인 사회의 비극


우리 사회는 매년 한 해가 끝나는 이쯤이면 대입을 위한 수학능력시험으로 몸살을 앓는다. 원론적으로 한 나라의 인재를 선발하는 일이 그 사회가 몸살을 앓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분명 아니다. 각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누구나 쉽게 납득하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선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매년 ‘불수능’ 아니면 ‘물수능’ 논란과 함께 끝없는 정답시비로 여지없이 시끄럽다.

이러한 시험이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한 채 정답에만 집착하는 것은 여러 의미로 읽힌다. 그 하나로 정답지향적인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 우리 사회는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경로의 삶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낙인찍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정답 위주의 수학능력시험을 거친 젊은이들은 대학생활에서도 정답을 강요받는다. 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학업성적이나 취업, 경제적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인의 재능이나 능력을 평가절하함으로써 대학생들의 자율적 선택이나 경험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획일화된 삶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중시하는 가치가 단일하기 때문에 그 이외 가치를 지향하는 삶이나 경험은 사회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가령 교육, 정책, 법 등 많은 영역에서 오직 경제적 가치만 추구한 나머지 각 영역이 추구해야 할 본래 가치가 무시되거나 그러한 가치와 관련한 논의 자체가 무시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특정 조직이나 집단에서 주류의 의견과는 다른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정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갖는 또다른 의미는 사회에 대한 신뢰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명문대학이 그 대학 교수들의 면접이나 심사만으로 입학을 결정한다고 하면 그들의 도덕성이나 객관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를 구성한 사람들은 타인들이 자신의 사익만 추구하고 사회적 공익이나 책임은 등한시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처럼 타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낮기 때문에 그들의 주관적인 판단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소위 객관적인 정답만이 인정받는 지경에 이른다.

이와 같은 불신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을 넘어서서 제도나 법, 공적기관의 공정성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다. 예를 들면 부와 특권이 대물림되는 계급의 양극화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적 구조가 공고해지는 현실을 보면서 대학생들은 우리 사회에서 능력에 기반해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인식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법이나 제도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기보다 그들의 부와 권력의 정도에 따라 불공정하게 적용된다는 인식이 이미 우리 사회에 팽배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어떤 사회에서든 특정 문제에 대한 정답에만 집착하면 일반적으로 그 정답은 하향평준화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에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낮아 뻔한 수준의 해답만이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유일한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답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탈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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