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A형이 B형보다 더 진화?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1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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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 지식의 사회사

혈액형 A형이 B형보다 더 진화?


몸에 과학을 투영해 지식을 만들어내면 ‘진리’로 둔갑하기 일쑤다. 그 진리는 어떤 살상무기보다 훨씬 강력해 가진 자의 합리화 도구로 애용됐다. 특히 몸과 관련된 지식은 불변의 진리처럼 보인다.

루드빅 히르쉬펠트는 혈액형을 ‘과학’의 도구로 이용해 민족과 인종을 처음 설명한 사람이다. 그는 마케도니아 전장에서 16개 국가, 군인 8500명의 피를 뽑아 ‘생화학적 인종계수’(AB형+A형/AB형+B형)라는 지수를 만들었다.



A형 인자를 가진 사람이 B형 인자를 가진 사람보다 더 진화했다는, 인종주의적 전체를 담은 지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은 이 지표를 그럴듯하게 활용했다. 인종계수를 측정하면서 일본과 가까울수록 인종계수가 높다는 계산을 통해 일본인의 우위를 증명한 셈이다. 일본과 가까운 전남은 1.41, 가장 먼 평북은 0.83 같은 식이었다.

2016년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4년간 1억 원의 장학금을 제안하면서 ‘덜 해로운 담배 선택권’, 즉 전자담배에 대한 연구를 맡아달라고 요구했다. 담배회사는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을 지식 생산 과정에 끌어들인 것이다. 학교 측은 그러나 이 제안을 거절했다.



올해 스탠턴 글랜츠 교수는 필립모리스의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공개 데이터를 통해 기존 궐련 담배와 생체 지표(폐활량, 백혈구 수치 등) 변화량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 담배 회사는 과거 폐암의 주요 원인이 스트레스인 것처럼 지식을 생산하기도 했다.

저자는 1120편의 논문과 300여 편의 문헌을 구체적 근거로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고, 누가 왜 특정 지식을 생산하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에 질문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어떤 지식이건 그 생산에는 누군가의 관점이 담기기 마련이고 어떤 지식은 특정한 누군가의 이익을 반영해 탄생한 것이기에 진리로 둔갑한 ‘지식’에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이다.


책은 의학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몸만을 표준으로 삼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신약 개발에 있어 고소득국가에서 소비되는 약만 개발되는 현실도 다룬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펴냄. 348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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