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고사?…세계 경제 재편, 구글 아닌 디지털 제조업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1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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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넥스트 레볼루션’…플랫폼과 제조업의 미래를 뒤바꿀 전방위 디지털 혁명

제조업의 고사?…세계 경제 재편, 구글 아닌 디지털 제조업


제조업 시대가 가고 소프트웨어 기업 시대가 온 줄 알았는데, 상황은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제조업은 죽지 않고 다만 변신하고 있었을 뿐이다. IT(정보과학) 기업들에 가려 숨죽이던 제조업이 디지털화와 플랫폼 구축으로 세계 곳곳에서 부활의 청사진을 쏘아 올리고 있다.



미국 항공기 제조사 록히드 마틴은 ‘적층 가공’(AM, additive manufacturing) 기술을 도입해 F35 전투기의 동체와 내부 전체를 약 3개월 만에 프린트할 수 있다. 흔히 3D 프린팅은 예쁜 장신구 기술이나 소형 시제품의 설계와 관련된 생산 시설로 쉽게 정의되지만, 항공 기술에서 보듯 혁명적 제조방식의 선두주자로 각광받는다.

전통적 기술을 이용하면 동일한 전투기를 제조하는 데 2, 3년이 걸리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록히드마틴의 목표는 이제 제작 기간을 3주로 단축하는 것이다.



더욱 인상적인 장면은 전투기를 기지로 복귀시키지 않고 AM 기술을 통해 전투 현장에서 즉각 프린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수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거대한 격납고를 만들 필요가 없다. 현장에서 적시에 전투기를 프린트한다면 이제 각국의 군사적, 지정학적 전략은 새로 고쳐 써야 할지 모른다.

자동차 산업은 어떨까. 미국의 스타트업 기업 로컬모터스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자동차 ‘스트라티’는 기존 3만 개에서 단 50개 개별 부품으로 44시간 안에 프린트할 수 있다.

전통적인 건설업과 식품 산업에도 이 물결은 예외가 아니다. 중국 건설회사 원선은 2016년 두바이에서 주택보다 저렴하고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유기적인 곡선형 건물을 프린트해 대중에 공개했다. 미국 초콜릿 기업 허쉬는 3D 프린터로 기하학적 모형의 초콜릿을 생산한다.


HP, GE, 지멘스 등 세계 유수 기업들도 제조의 디지털화에 동참하며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다임러AG, 에머슨 등이 건설한 ‘미래의 공장’은 거의 모든 곳에서 거의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제조할 수 있고 시장의 요구에 맞춰 한 제품에서 다른 제품으로, 심지어 한 산업에서 다른 산업 분야로 생산 방식을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 AM 기술이 대량 생산이 가능한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와 함께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까지 창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하기스 기저귀를 원하는 소비자는 회사에 주문한 뒤 동네 편의점에서 프린트된 제품을 수령하기만 하면 된다. 유통 구조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시간과 공간의 차이도 무색해진다. 제러미 리프킨이 말한 ‘한계비용 제로 사회’의 진입이 목전에 있는 듯하다.

제조의 디지털화는 산업 플랫폼의 구축도 가능케 한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전자 제조 서비스업체 ‘자빌’의 인컨트롤 시스템이다. 이 플랫폼은 전 세계 자빌의 공장과 고객, 공급업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며 자빌이 제조하거나 공급하는 수십만 개 부품을 1만 7000개 네트워크를 통해 추적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일본 규슈 섬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 시스템은 몇 시간 만에 대체 공급업체를 찾아내 자발의 관리자에게 알려줬다.

저자는 “AM 기술과 산업 플랫폼의 결합을 통해 ‘전방위 기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 등장해 향후 20, 30년 내 새로운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며 “오늘날 대기업과 유사하지만 대기업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시너지, 다각화, 효율성, 수익성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끄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소위 ‘GAFA’로 불리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미래는 어떨까.

저자는 향후 성공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 기업이 제조업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산업 기반과 생산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 비즈니스에 대한 자산 경량 접근법(asset-light approach)을 기반으로 너무나 빠르게 성장해 자산 비중이 높은 제조업에 비해 인수 합병에 어려움을 겪고 이를 통한 제조 전문지식을 구축하는 게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는 GAFA가 제조 분야를 장악하는 것보다 소프트웨어 전문 지식을 갖춘 제조 기업이 GAFA의 영역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한국 제조업으로 눈을 돌리면 더 혼란스럽다. 서비스 산업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와 전통적 강점인 제조업이 혁신을 통해 재도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존하기 때문.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기존 산업 지형에서 제조업의 디지털화가 제조업의 근본적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제조업이 당면한 심각한 문제들, 투자 위축이나 고용 감소, 낮은 생산성 등만 얘기하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익숙한 조직 구조와 전통적 제조 방법에 집착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산업 플랫폼 전략을 정의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개발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넥스트 레볼루션=리처드 다베니 지음. 한정훈 옮김. 부키 펴냄. 416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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