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올해의 인물들│85년생 박나래

서지연 ize 기자 2018.12.04 09:03
글자크기
‘ize’는 이번 한 주 동안 2018년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해야할 ‘2018 올해의 인물들’을 선정했다. 하루에 두 명씩, 총 10명이다. 세번째로 인물은 개그우먼 박나래다.



2018 올해의 인물들│85년생 박나래


지금 박나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개그우먼이다. 2018년 한 해 동안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의 개수만 10개다. 지난 10월과 11월에는 2개월 연속 ‘예능방송인 브랜드 평판지수’에서 예능 방송인 1위에 올랐다(‘한국기업평판연구소’). 유재석과 전현무, 강호동 등 쟁쟁한 남성 방송인들을 제친 것으로, 작년부터 박나래는 이들과 나란히 이름을 올리곤 했다. 그의 전성기가 이미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34살의 나이에 비로소 전성기를 맞이한 개그맨이자 여성. 이 위치에 오르는 것은 참 어렵기도 했지만,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지난 24일 방송된 tvN ‘짠내투어’에서 박나래는 그가 이 자리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그리고 어떤 각오로 버티고 있는지 온몸으로 보여줬다. 프라하 투어 중 성당 종탑에 오르던 박나래는 폐소공포증을 호소하며 황급히 계단을 거슬러 내려갔다. 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종탑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극도의 긴장과 공포 속에서 차마 앞을 볼 수 없어 네 발로 기어 올라간 박나래는 정상에서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언제나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그의 속마음이 한순간이나마 드러났다.

연예인의 삶이 녹녹치 않다는 것은 비단 박나래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걷거나 뛸 때 기어서라도 나아가야 했을 만큼, 유난한 시간들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개그맨으로 평가받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박나래는 자주 사회가 만들어놓은 벽에 부딪히곤 했다. 외모와 상관없이 웃기기만 하면 능력을 인정받는 남성 개그맨과는 달리, 여성 개그우먼인 그에게는 방송에 나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너무 비호감이라 방송에 나올 수 없다(‘원더우먼페스티벌 2018’)’는 말까지 들어야했던 박나래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데뷔 전까지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었던(tvN ‘어쩌다 어른’) 그는 혹시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성형수술을 한 박나래에게 돌아온 것은 더한 조롱과 외면이었다. 한참을 어둠속에서 헤매던 그가 겨우 잡은 기회가 KBS ‘개그콘서트’의 코너 ‘패션 넘버5’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늘씬한 개그우먼들 사이에서 박나래는 더욱 작아보였고, 더욱 우스꽝스러워보였다. 예쁘거나 혹은 예쁘지 않은 여자. 이것이 바로 사회와 방송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었고, 박나래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박나래가 비로소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조금은 다른 세상이 열리면서부터다. 지금처럼 인기를 얻기 전에도 tvN ‘코미디 빅리그’를 통해 자신만의 개그를 꾸준히 선보여 온 그는 2015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해 ‘공중파에서 허용될 것 같지 않은 개그’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독한 분장을 하고, 독한 멘트를 하는 박나래가 더 이상 ‘비호감’이 아니라 기존의 방송에서는 보지 못했던 신선한 캐릭터가 됐다. 마침내 설 곳을 발견한 그는 조금씩 자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출연하고 있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남다른 섬세함과 재주로 주변 사람들을 아우르는 모습은 tvN ‘짠내투어’에서 가끔은 당황하기도 하지만 풍성한 여행을 이끌어나가는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프라하 성당 종탑에서 폐소공포증을 호소한 박나래는 머쓱한 표정으로 “짠내투어’를 하면서 나의 치부가 자꾸 드러난다. 사람들이 ‘박나래는 공포증이란 공포증을 다 갖고 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평소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도, 자신의 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해야 한다. ‘나혼자 산다’에서도 그는 늘 출연자들끼리 여행을 갈 때마다 사람을 챙기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하고, 박나래는 언제나 그렇게 했다. 그가 걸어온 길에는 개그우먼이자 여성,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노력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당연하게도, 박나래가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할수록 사람들은 몰랐던 그의 일면을 보게 된다. 잘난 점도 못난 점도, 강한 면도 약한 면도, 웃을 때도 울 때도 있다. 박나래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섣불리 단정 지어지고 기회를 뺏기기도 했지만, 박나래는 결국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 박나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독한 개그나 분장’ 외에도 수많은 단어들이 필요하다. 그만큼 그는 조금 더 궁금하고 보고 싶은 사람이 됐다. 단지 누군가의 시선에서 본 예쁘지 않은 여성으로서는 좀처럼 보여줄 수 없었던, 85년생 박나래의 삶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