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잘알]대만 '탈원전'은 왜 좌초위기에 몰렸을까?

머니투데이 세종=권혜민 기자, 유영호 기자 2018.11.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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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전력수급 불안에 국민투표로 근거법안 폐기… 정부 "대만 탈원전, 국내와 다른점 많다"

[에잘알]대만 '탈원전'은 왜 좌초위기에 몰렸을까?


"我是人, 我反核.(나는 사람이다. 나는 핵에 반대한다)"

대만 민주진보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이 2016년 총선에서 내건 구호다. 그는 ‘원전 제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2025년까지 대만 내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월엔 전기사업법 95조 1항에 '2025년까지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완전 중단시킨다'는 내용을 신설해 탈(脫)원전을 법으로 못박았다.

1978년부터 원전을 운용한 대만은 1·2·3호 원전에 2기씩 총 6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 모두 2025년까지 설계 수명이 만료된다. 차이잉원 정부는 수명이 끝나는 대로 연장 없이 순차적으로 이들 원전의 가동을 멈추도록 했다. 2014년 공정률 98%로 사실상 완공된 뒤 시운전 직전 잠정 폐쇄된 룽먼 1·2호기(제4기 원전)도 가동하지 않기로 했다. 원전의 빈 자리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채우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2025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였다.



차이잉원 정부가 이처럼 급격한 탈원전을 추진할 수 있었던 건 국민적 지지가 밑바닥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의 찬핵(贊核)과 반핵(反核) 진영간 갈등은 역사가 깊다. 제4기 원전의 건설 여부를 두고 약 30년간 갈등이 이어져 왔다. 반핵 입장을 고수했던 민진당은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당선 이후 제4기 원전 건설 중지를 추진했지만 국민당의 반발 끝에 무산됐다. 치열했던 반핵 운동도 힘을 잃는 듯 했다.

상황이 반전된 건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후부터다.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일본처럼 지진이 잦은 대만으로선 충격이 더 컸다. 국민들 사이에서 반원전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는 2014년 제4기 원전이 잠정 폐쇄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차이잉원 정부의 탈원전 계획도 반원전 여론을 근간으로 했다. 대만의 리스광(李世光) 경제부장은 지난해 1월 "일본이 기술력이나 도덕성에서도 세계 초일류 국가인데 그럼에도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며 "만전을 기한다 해도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4일 신베이시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2018.11.24/사진=AP/뉴시스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4일 신베이시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2018.11.24/사진=AP/뉴시스
하지만 탈원전 정책에 대한 지지는 견고하게 유지되지 못했다. 탈원전에 따른 전력수급 불안과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잡음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차이잉원 정부는 전기사업법 개정 이후 가동 중인 원전 4기 중 2기를 설비이상 등의 이유로 가동을 중단했다. 가동원전 수가 2기로 축소되면서 대만의 전력예비율은 3% 수준으로 급락했다. 한국이라면 의무절전 규제가 발동하는 전력수급경보 발령 수준이다. 그러다 지난해 8월 대만 전체 가구의 64%에 전기공급이 끊기는 대규모 정전이 빚어졌다. 경제부장이 사임하고 차이잉원 총통이 사과하는 등 파장은 컸다. 정전 원인은 액화화천연가스(LNG) 발전소 직원이 공급밸브를 잘못 작동해 발전소가 셧다운된 것이지만 국민 여론은 탈원전으로 향했다.


예기치 못했던 대형 정전 사고로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수급 불안 우려가 높아지면서 탈원전 반대 진영을 중심으로 국민청원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29만여명의 서명을 받아내 결국 24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탈원전정책의 근간이 되는 전기사업법 95조1항의 폐기를 묻는 국민투표가 이뤄졌다.

국민투표 결과 이 조항을 폐기가 결정했다. 전체 투표자 중 54.4%(589만명)이 전기사업법 95조1항 폐기에 찬성했다. 차잉잉원 정부는 곧 전기사업법 95조 1항 폐지 입법안을 입법원에 제출할 방침이다.

하지만 차이잉원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기사업법 95조1항 폐기로 2025년이라는 목표시한은 잃었으나 중장기적으로 '원전 없는 국가'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콜라스 요타카 행정원 대변인이 탈원전 목표에 변함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언급했다가 ‘국민투표 불복’ 논란을 일어나자 라이칭더 행정원장이 사과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한편 대만의 국민투표 결과를 두고 국내 원자력계에선 정부의 탈원전 등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해 “우리도 국민 의사를 묻자”고 주장하고 있다. 탈원전 추진 근거를 전기사업법에 명시했던 대만과 달리 한국은 법제화 없이 정부 시행령 등을 통해 정책을 이행 중이다. 따라서 대만처럼 국민투표를 통해 정책의 폐기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

정부도 대만이 국민투표를 결과에 대해 “대만과 우리가 추진해 왔던 정책이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다”고 선을 그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지난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른 나라의 에너지정책을 참고해 왔기 때문에 (대만 국민투표 결과도) 참고할 여러 정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대만 케이스를 한국에 바로 투영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전력수급상 문제로 대규모 정전이 있었던 것에 대한 의사 판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는 2024년까지 신규원전이 계속 들어오는 구조고, 75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에너지전환을 점차 준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에너지전환이 더 착실하게 되도록 노력하는 게 에너지정책 담당자로서 할 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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