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페미 굿즈를 사고, 페미니즘 영화를 본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박가영 기자, 이재은 기자, 유승목 기자 2018.11.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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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경제학](종합)

편집자주 경제학 아버지라 불린 애덤 스미스가 저서 '국부론'서 간과한 게 있다. 여성 노동과 생산 활동이다. 이를 두고 스웨덴 저널리스트 카트리네 마르살은 "그의 저녁을 차려준 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의 어머니'"라 꼬집었다. 바뀐 시대상을 잘 드러낸 말이다. 소비 주력층인 여성들은 이제 두둑한 지갑을 들고 '페미니즘'을 외친다. 이에 귀 기울이든 말든 자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어떤 방향이냐에 따라 지갑이 열리거나 닫힐 것이라는 것.

'페미니즘', 여성 지갑을 여는 키워드
[페미 경제학-(총론)]소비로 존재감 드러내는 '페미니즘', 여성 평등에 돈 쓰고, 불평등엔 불매 운동까지





/그래픽=이재은 기자/그래픽=이재은 기자


#직장인 이소영씨(33·가명)는 올 여름 처음, 온라인 쇼핑몰서 '브라렛'(와이어·패드 없앤 속옷)을 샀다. '여성도 편안할 권리가 있다'는 광고문구에 끌렸다. 브래지어 압박에 숨 막혔던 그에게 브라렛은 신세계였다. 한번 산 뒤, 여러벌을 더 샀다. 브래지어는 자연스레 피하게 됐다. 이씨는 "여성다움을 강조하는 광고는 불편하다. 소비도 안하게 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여성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고 닫는다. '사회운동'을 넘어 '소비시장'에서도 당당히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소비 주력층이 20~30대 여성 소비자들이라 더욱 가능한 일이다. 소비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는 반면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난 페미 굿즈를 사고, 페미니즘 영화를 본다
판매부수 100만부에 육박하는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출판업계에선 이미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매년 평균 30여종에 불과했던 여성 관련 서적이 70여종으로 늘었다. 영화업계에선 영화 '미쓰백' 흥행이 화두가 됐다. 여성 감독·배우가 열연했고, 주제도 가정폭력 상처를 서로가 치유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쓰백러'('미쓰백' 열혈 마니아층)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이 영화는 최근 누적관객 72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반면 이 같은 흐름에 역행하는 기업은 쓰디쓴 성적표를 받았다. 속옷 트렌드가 대표적이다. 과거 여성성을 부각하던 속옷이 인기를 끈 것과 달리 지금은 '편안함'이 대세다. 가슴의 '자유·해방'이 키워드가 됐다. 와이어와 패드를 없앤 브라렛은 각광받고, 통상 남성이 유두를 가리기 위해 쓰던 '니플패치'도 여성들에게 인기다. 반면 여성의 섹시 이미지를 부각하던 미국 최대 란제리 기업 '빅토리아시크릿'은 지난해 기준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2년 전 대비 10% 줄었다. 이를 두고 페미니즘에 역행한 탓이란 분석이 쏟아졌다.

페미니즘이 경제영역서 존재감이 커진 데 대해선 '환영'과 '우려'가 엇갈린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페미니즘적 소비는 소비를 통해 여성이 처한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남형도, 박가영 기자

페미니즘, 이젠 '돈'으로 산다
[페미 경제학-①]불평등한 현실 극복 위해 지갑 연 여성들

명품 의류 브랜드 디오르는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라는 문구가 찍힌 티셔츠를 선보이며 페미니스트 어젠다를 드러냈다. 아래는 디오르 티셔츠를 입은 배우 김혜수(왼쪽)와 가수 선미./사진=OSEN, 선미인스타그램명품 의류 브랜드 디오르는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라는 문구가 찍힌 티셔츠를 선보이며 페미니스트 어젠다를 드러냈다. 아래는 디오르 티셔츠를 입은 배우 김혜수(왼쪽)와 가수 선미./사진=OSEN, 선미인스타그램
소비시장에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다. 여성들이 소비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면서다. 구매력 있는 여성들이 관련 아이템에 지갑을 열며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다양한 업계로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성 평등'이라는 페미니즘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뒤흔든 페미니즘…"나는 '페미니즘적 소비'를 한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부터 각종 디지털 성폭력 사건, 여성 혐오 범죄 논란, 혜화역 시위까지…. 페미니즘은 올해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자연스레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급속도로 높아졌다.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페미니즘적 소비'를 하는 여성이 크게 늘었다. 여성들은 페미니즘 단체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만든 가방, 의류 등 ‘페미 굿즈(goods)’를 사고, 페미니즘 도서를 읽는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라는 문구가 찍힌 명품 의류 브랜드 디오르 티셔츠를 입은 여자 연예인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신념을 소비행위로 적극 표현하는, 이른바 '미닝 아웃'(Meaning Out)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아름다움이나 여성성보다는 자신의 만족감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소비도 뚜렷해지고 있다. 여성들의 '코르셋' 중 하나였던 속옷에서 그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와이어나 패드로 인해 갑갑했던 기존 브래지어 대신 착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이 등장했다. 와이어와 패드를 없애 가슴에 가해지는 압박을 최소화한 브라렛(bralette)이 인기를 끌며 속옷 브랜드들이 잇따라 브라렛 상품을 내놓고 있다. 주로 남성용으로 출시됐던 '니플패치'를 이용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개인의 선택만으로 '평등'과 '해방'이라는 페미니즘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여성 소비자도 많아졌다. 직장인 이모씨(28)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힘'이다"면서 "소비자로서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것도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소비시장에 거세게 부는 '여풍'(女風)…연대하는 여성 소비자

츨판 시장에서 페미니즘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여성 혐오, 성폭력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페미니즘 관련 도서의 수요로 이어지며 출판은 가장 뜨거운 페미니즘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증명하듯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3년 8023권에 불과했던 페미니즘 관련 도서 매출 권수는

△2014년 1만1143권 △2015년 1만1628권 △2016년 3만1484권 △2017년 6만3196권으로 급증했다. 2016년 발간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올해 누적 판매량 70만부를 넘어섰다. 한 해 평균 30종에 불과했던 여성학 분야는 출간 종수도 지난해 70종 이상 출간되는 등 꾸준히 늘고 있다.

난 페미 굿즈를 사고, 페미니즘 영화를 본다
페미니즘 도서 구매자 다수는 여성이었다. 올해 페미니즘 관련 도서 여성 구매 비중은 전체의 77.3% 로 남성(22.7%)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연령 별로는 20대 여성이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가장 많이 찾았다. 여성 구매자 중 20대 여성의 비중은 38.89%에 달한다.

영화계에도 '여풍'(女風)이 거셌다. 여성 영화를 위해 여성 관객들이 연대하기 시작한 것. 영화관을 대여해 단체관람하고 직접 굿즈를 만들어 영화를 홍보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최근 영화 '미쓰백'은 여성 관객의 힘으로 누적 관객 수 70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미쓰백'은 가정폭력의 상처를 가진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렸다. 여성의 시각에서 극이 전개된다는 점, 여성 감독(이지원)이 연출하고 여성 배우(한지민·김시아)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 여성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사진=공식포스터/사진=공식포스터
'미쓰백'의 개봉 첫날 스크린 수는 524개에 불과했다. 여성 영화가 고전을 면치 못하자 여성 관객들은 자신을 스스로 '쓰백러'라고 지칭하며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체 관람, 영혼 보내기(좌석을 예매하고 영화관에 가지는 않는 것) 운동을 펼쳤다. 굿즈를 만들어 배포하며 영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여성 관객의 결집으로 '미쓰백'은 개봉 23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도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허스토리'의 팬덤 '허스토리언'은 단체관람 릴레이, 상영관 확대 운동 등 여성 연대 활동을 주도했다.

두 영화를 모두 관람한 대학생 서하은(22)씨는 "여성 서사에 깊이 공감할 뿐만 아니라 여성 주연 영화가 꾸준히 제작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기 위해 영화를 봤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여성의 소비 행태가 불평등한 사회 구조 타파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페미니즘적 소비는 사회나 가정에서 받아온 차별에 여성들이 대처하는 한 방법"이라며 "소비를 통해 여성이 처한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다. 여성들이 자신들이 겪는 불평등이 해결됐다고 판단될 때까지 당분간 이러한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페미니즘의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성을 앞세운 마케팅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페미니즘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며 "여성 소비자에게 성공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근본적 고통과 아픔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가영 기자

"찍히면 망한다"… 여성 소비자의 힘
[페미 경제학-②] 여성 소비자, 여성을 소비 주체로 보지 않는 '여혐' 기업들에 선전포고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 등 굵직한 젠더 이슈가 연달아 파문을 일으키며 여성 등 소수자만 공감했던 '페미니즘'이 주류 문화로 편입됐다. 특히 여성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은 중요하다'거나 '여성은 주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자연히 성차별·성폭행 등 여혐 이슈가 불거진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도 활발해졌다.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가졌음에도 소비자로서 존중받기 보다 여성으로서 차별 받는다는 생각 때문이다.(☞[빨간날] 여성에겐 반말로… 성별 따라 다르게 대하세요? 참고) 이 같은 운동을 벌이는 여성 소비자들은 불매 운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힘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업계는 페미니즘이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보고있다. 소비자들이 '미닝 아웃'(Meaning Out·자신의 존재 방식을 소비로 표현) 소비 형태를 보이는 만큼 '펨버타이징'(Femvertising)처럼 페미니즘을 활용한 광고를 제작하는 기업도 늘고 있는데, 동시에 젠더 감수성을 잘못 건드리는 순간 기업이 쌓아 올린 이미지가 한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의식도 함께 공유되고 있다. 즉 자칫 '여혐 기업'으로 지목될 경우 여성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표적이 되거나 기업 이미지 하락 등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혐오 기업, '찍히면' 망한다

이전에 여성혐오 기업으로 지목되며 불매 운동을 겪은 기업 사례도 적지 않다. △사내 성폭행 이슈 처리 미흡 △관계자의 성차별적 발언 △성차별적인 광고 △여혐 사상을 가진 인물이 광고 전면에 등장 △제품 가격에 핑크택스(Pink Tax·같은 제품이라도 남성용보다 여성용이 더 비싼 현상) 적용 △여성 직원에게 꾸밈노동을 강요 △여성 채용·승진 누락 등 이유도 다양하다.

앞서 지난해 가구업체 한샘이 이 같은 파문을 겪었다. 사내 성폭행 사건이 철저히 조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식 가격이 급락했고, 홈쇼핑 방송에서 퇴출됐으며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한 신입 여직원이 동료 직원으로부터 성폭행과 몰래카메라(몰카) 등의 피해를 당했고, 신입사원 교육 담당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으며, 회사 인사팀장이 이 사건에 대한 허위진술을 요구하고 또 한번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폭로하면서다.

지난 6월에는 이디야커피가 불매운동의 타겟이 됐다. 서울시내 한 이디야 가맹점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성차별 항의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되면서다. 종업원이 회식 도중 페미니스트 집회에 참석한 사실을 알리자 점주는 "이제 출근하지 말고 알바 대신 중요한 시위나 가라"며 그에게 해고 통보했다. 사태가 불매운동 등으로 번지자, 이디야커피는 점주의 과실을 인정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점주 대상 교육 프로그램 내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 존중에 대한 교육과정을 신설해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맥 광고. 2016년 맥 광고.
2016년 2월에는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맥(MAC)'이 광고 모델 논란으로 인해 불매운동 당했다. 여성혐오 논란을 빚은 개그맨 유상무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는 이유였다. 유상무는 과거 인터넷 팟캐스트에서 동료 개그맨들과 여성에 대해 그릇된 발언을 해왔던 인물이다. 소비자들은 "여성이 주 고객인 화장품에 여성혐오를 개그 소재로 사용한 사람을 쓰는 건 대체 무슨 경우냐"며 브랜드 전체 제품을 불매하겠다고 나섰다. 맥은 광고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여성 소비자 힘 보여주겠다" …매달 여혐기업 선정, 소비 거부

페미니즘에 기반한 소비패턴이 일상화되자 좀더 적극적으로 주체적 소비를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즉 '여혐 이슈'가 발생한 직후 반짝 불매운동을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여성혐오 이슈에 한 번이라도 휘말렸던 기업을 '이번 달·이번 주의 불매 기업'으로 선정해 꾸준히 지적하는 식이다.

SNS(사회연결망서비스) 트위터 계정 여성소비총파업, 여성혐오기업총공 등은 이처럼 '적극적' 의미의 불매운동을 이끌고 있다. 한달에 두 기업씩 대상 기업을 정해 불매 운동을 벌이는데, 이달에는 밀크티 체인점 '공차'와 치킨 프랜차이즈 'BHC'가 선정됐다.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려 피드백을 요구하고, 기업 본사에 엽서를 보내 피드백을 요구하는 등의 운동도 함께 펼친다.

공차의 경우 2014년 지하철 광고가 '여혐'으로 지목되면서 선정됐다. 공차는 음료주문시 얼음 양, 토핑종류, 당도 등을 소비자 기호에 맞춰서 조절할 수 있는 브랜드로, 콘셉트를 '버라이어Tea'로 정하고 광고를 게시했다. 하지만 지하철 내 게시된 광고물에 '여성의 어장관리'라는 표현을 쓰고, 어항 속 남성의 얼굴을 한 물고기들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써 입길에 올랐다.

BHC의 2015년 광고 BHC의 2015년 광고
BHC 역시 2015년에 게시한 SNS 광고가 문제로 지목됐다. BHC는 당시 공식 SNS 계정에 "뿌링클 사줄 사람 없는 여자분들 필독하세요. 이 문장 '나꿍꼬또, 뿌링클 멍는 꿍꼬또'를 매일 밤 20번씩 연습하세요"라는 글을 올렸다가 논란을 빚었다. 여성을 소비 주체로 보지 않고, 남성에게 의존해 소비한다고 봤다는 것이다.

이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여성차별을 반대하는 '여성 소비 총파업'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이는 여성들이 소비와 지출을 일체 중단해 유통·산업계에 여성의 영향력을 보여주겠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성차별 철폐 촉구 운동이다. 지난 7월 시작된 이 운동은 매달 첫 일요일에 실시된다. 이날 여성들은 일체 소비를 하지 않고, 자신의 SNS에 소비를 하지 않았다는 인증 게시물을 올리거나,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을 기념해 '38'로 시작하는 액수를 통장에 넣어 운동에 동참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송동현 밍글스푼 경영마케팅 대표는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적·비하적 의식을 갖고, 여성을 소비의 주체로 보지 않아온 게 사실"이라면서 "여성들이 여혐 기업들에 불매운동을 하는 것은 일종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겠다는 선언으로서 매우 의미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송 대표는 "여성들이 최근이든 과거든 여혐 이슈가 발생한 기업들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면, 그 기업에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할 수 있고 다른 기업에도 반면교사 삼을 수 있게 해준다. 결국 과거의 과오를 개선하도록 이끌 수 있어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부 운동에 대해서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송 대표는 "하지만 '여성소비총파업' 같은 경우, 타게팅이 명확하지 않고 모든 기업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이기 때문에 각 기업들이 자신과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재은 기자

"너도 탔어?"…페미코인, 공허한 거품일까
[페미 경제학-③]성 갈등 심화되며 나타난 '페미코인'…비난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사진= 이미지투데이/사진= 이미지투데이
일부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페미니즘이 사회 주류 문화로 자리 잡고있다. 경제·사회적으로 페미니즘 트렌드는 우리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수역 폭행사건' 등 일련의 젠더 이슈들로 남녀 성 대결이 촉발되며 페미니즘 트렌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너도 페미코인 타려고?"
지난 16일 유명 래퍼 산이가 '페미니스트'라는 곡을 발표하자 래퍼 제리케이가 이를 저격하는 디스곡 'NO YOU ARE NOT'을 내놓았다. 산이의 노랫말이 여성혐오를 조장한다는 것. 이에 산이는 18일 새벽 '6.9㎝'를 발표하며 제리케이를 두고 "인기 얻기 위해 열심히 채굴 '페미코인'"이라며 비난했다.

최근 '페미코인'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페미코인은 '페미니즘'과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합성어다. 지난해 가상화폐 광풍으로 비트코인 수익률이 크게 올라간 것을 빗대 페미니즘을 옹호로 사회적 인지도나 경제적 이익을 얻는 행위 등을 비꼬는 말이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를 비롯, 인터넷상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페미코인'이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생긴 것은 아니다. 시작은 올해 초 등장한 가상화폐 '페미코인'이다. 당시 개발자는 "여성의 힘을 보여주고 페미니즘 확산을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미투 운동', '홍대 누드모델 사건' 등 굵직한 젠더 이슈가 충돌하면서 비하적 의미로 변했다.

/사진= UN 여성기구/사진= UN 여성기구
특히 이수역 폭행사건 청원이 단 하루 만에 20만 명을 돌파했다가 다음날 관련 영상 공개로 여론이 뒤집히면서 이를 조롱하는 뜻으로 페미코인이 더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마치 올해 초 가상화폐 가치가 급락했듯 페미니즘도 가상화폐 투기처럼 '공허한 거품'이라는 것이다.

◇페미코인도 일종의 혐오?
이러한 페미코인은 비하를 넘어 일종의 혐오로까지 의미가 확산되고 있다. 페미니즘이나 여성권과 관련한 발언을 한 유명인에게 여지 없이 '깊은 생각도 없으면서 페미니즘에 편승해 페미코인 타려 한다'는 '백 래시'가 쏟아진다. 페미니즘 문구로 알려진 'Girls can do anything'이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와 텀블러를 사용한 걸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과 가수 선미가 받은 비난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문화계를 휩쓴 페미니즘 도서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가 결정되며 주인공을 맡게 된 배우 정유미도 최근 여지 없이 페미코인에 탑승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해당 영화 역시 촬영을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평점 테러를 받으며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사진제공= 뉴스1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사진제공= 뉴스1
비단 연예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비하의 의미로 페미코인이 쓰이고 있다. 대학생 윤모씨(25)는 "대화 중 여성권에 대해 말했는데 친구들이 '페미코인 타려하냐'고 말했다"며 "서로 감정이 상할까 싶어 화제를 돌렸다"고 토로했다. 최근 '탈코르셋' 영상으로 주목 받은 뷰티 유튜버 배리나가 책을 내고 강연을 하자 "페미코인 제대로 탔다"는 비아냥 섞인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페미니즘, 돈이 되니까?
페미코인이 꼭 부정적인 뜻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여성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주체로 등장하며 페미니즘의 경제적 영향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 과거 유행했던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처럼 '페미코인'도 주목받고 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촉발한 도서·출판 분야 페미니즘 강세가 대표적이다. 2016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2년 만에 100만부 판매를 앞두고 있다. 10만부 판매도 힘든 최근 업계 상황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기록이다. 해당 소설에 힘입어 페미니즘 관련 도서 판매가 급증했고, 매년 평균 30여종 나오던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지난해에는 두 배가 넘는 78종이 출간됐다. 출판 업계는 페미니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도 광고나 마케팅 측면에서 페미니즘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를 소비로 표현하는 '미닝아웃' 소비가 늘고 있기 때문. 광고업계 관계자는 "'펨버타이징'(Feminism+Advertising)이 등장할 만큼 최근 젠더 감수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실제 광고나 기업 관계자가 성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면 여지 없이 불매운동 등 매출에 직격타를 맞기도 한다. 최근 산이가 논란이 된 노래 '페미니스트'를 발표한 뒤 여성 스포츠의류 브랜드가 산이의 공연 섭외를 취소했다. 여성 고객들을 의식한 탓이다. 최근 한 치킨 프랜차이즈도 여성을 남성에게 의존한다는 식의 광고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이현혜 양성평등진흥원 교수는 "페미니즘과 여성이 사회적·경제적 주체로 자리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서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 담론이 이를 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개별적인 사건에 집중하다보니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강해진다"며 "페미니즘과 평등에 대한 주장이 남성이나 여성의 특권을 빼았자는 것이 아닌 공정함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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