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업력 45년 '장수中企' 가업 포기한 이유는

머니투데이 고석용 기자 2018.11.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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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상속세]중견·중소기업계 “상속공제제도 요건완화 일단 환영…세율 인하 절실”

편집자주 구광모 LG 그룹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상속 재산의 60%인 9200억원의 사상 최대 상속세를 낸다. 고 구본무 LG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을 재산에 20%의 할증을 더한 뒤 최대 상속세율인 50%를 적용한 것이다. 대주주에게 적용되는 징벌적 할증을 포함, 상속세에 대해 재계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논란을 짚어 본다.

중견·중소기업계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요건 완화가 거론되는 데 대해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장수기업 육성을 위해선 근본적으로 징벌에 가까운 상속세율을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2일 현행 민법에 따르면 재산 형태와 상관없이 30억원을 초과하는 재산을 상속받을 경우 상속재산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상속세로 내야한다. 다만 회사 지분을 상속하는 가업승계에 한해서는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통해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세를 공제해준다.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기업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이라는 사전요건과 승계 후 10년 이상 △업종변경 불가 △가업용자산·고용 80% 이상 유지 등 사후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공제 요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제조업에 ICT나 서비스업을 접목하면 업종변경 제한에 위배되고 시설확대를 위해 지분을 일부 매각만 해도 자산유지 제한에 어긋나 공제액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며 “4차산업혁명 등 세계 경제 흐름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기업을 한 방향으로만 옥죄는 규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업력 45년의 국내 최대 콘돔제조사 유니더스 김성훈 대표가 경영권을 매각한 것도 이 같은 요건 충족이 어려워 공제제도를 포기한 사례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김 대표는 2015년 말 창업주인 김덕성 회장 별세로 100억원 가량의 주식 304만주를 일시에 물려받았다. 상속세는 50억원 가량이었다. 물려받은 김 회장의 다른 자산을 합쳐도 세금을 마련할 수 없었던 김 대표는 결국 경영권을 포함해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명문장수기업’ 요건(45년 업력, 매출 3000억원 미만)을 갖췄음에도 상속세 때문에 가업을 포기한 것.



기획재정부 등은 이를 감안해 ‘10년간 업종·자산·고용 등 제한’이라는 사후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견련에 따르면 독일과 일본의 상속세 공제 사후요건 기간은 각각 7년과 5년이다. 그는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후요건 완화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출액 3000억원 미만 기업에만 해당하는 공제제도의 사전요건을 완화해 공제 대상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상북도에 있는 한 중견기업 대표는 “매출액에 따라 혹시 3000억원이 넘으면 2세에게 막대한 부담을 줄 수 있는데 누가 마음 놓고 기업을 성장시키겠냐”며 “매출이 아닌 사회적 기여나 후계자 역량수준 등 정성지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상속세 완화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7월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명문장수기업센터가 발간한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125개 중견기업 중 절반에 가까운 47.2%의 기업은 가업승계 걸림돌로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을 꼽았다. 지난 2월 중소기업중앙회의 같은 조사에서도 500개 중소기업 중 67.8%가 ‘상속세 등 조세부담’이 승계 과정에서 가장 어렵다고 응답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산업사회에 재벌 대기업들의 기업경영과 상속행태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오늘날에 그런 잣대를 들이밀어 가업승계를 규제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며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의 상속세율 조절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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