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LG회장 이름값 '1200억'…할증 상속세의 역사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8.11.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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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상속세]최대주주 상속자산 할증평가 1993년부터 시행…대기업 오너 경제력 집중 비판에 세율도 높여

편집자주 구광모 LG 그룹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상속 재산의 60%인 9200억원의 사상 최대 상속세를 낸다. 고 구본무 LG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을 재산에 20%의 할증을 더한 뒤 최대 상속세율인 50%를 적용한 것이다. 대주주에게 적용되는 징벌적 할증을 포함, 상속세에 대해 재계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논란을 짚어 본다.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사진제공=LG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사진제공=LG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주식 상속세로 7200억원을 신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2일. 재계에서 "LG 회장의 이름값이 1200억원"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구 회장이 최대주주로 부친인 고 구본무 회장의 ㈜LG (87,600원 ▼1,600 -1.79%)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물게 되는 할증세율 얘기다.



구 회장은 ㈜LG 지분 8.8%(1512만2169주)를 물려받으면서 지분평가액인 1조1890억원에 20%를 가산한 1조4268억원을 기준으로 50%의 상속세를 문다. 일반주주가 구 회장과 같은 규모의 지분을 상속받는다고 가정할 때 내야할 상속세(5945억원)보다 1200억원을 더 낸다.

상속세법상 최대주주의 상속지분을 평가할 때 10~30%를 할증해 평가하고 이를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이다. 구 회장이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물어야 하는 이름값 세금이 1200억원인 셈이다.



이런 할증률이 적용되면 상속세 최고세율은 65%까지 늘어난다. 재계 한 인사는 "대기업보다 현금상황이 빠듯한 중견·중소기업에선 상속세를 내려면 할증세율 때문에 공장을 반으로 잘라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경영권 프리미엄, 상속세에도 적용 = 최대주주 상속세 할증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3년부터다. 1992년 12월 개정, 다음해 1월부터 시행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최대주주나 최대출자자, 특수관계인의 비상장사 상속지분을 평가할 때 과세 기준이 되는 평가액에 10%를 할증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변칙적인 증여를 통해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고 경영권을 이전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취지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같은 해 8월 시행된 금융실명제와 맞물려 고액 자산가의 비공개 자산에 대한 과세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 이전 상황을 보면 1987~1992년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평가액 그대로 과세하고 그 외의 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평가액에서 오히려 10%를 경감하는 방식으로 상속세를 물었다.


1993년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엔 과세 범위가 더 넓어졌다. 1996년 12월 상속세법 전면개정 당시 명목 최고세율을 40%에서 50%로 오르면서 상속지분의 평가액 할증범위도 비상장에서 상장주식으로 확대됐다.

할증세율은 2000년부터 최대주주 등의 지분율에 따라 차등 적용되기 시작했다. 최대주주 등의 지분이 50% 이하일 땐 20%를, 50% 초과하면 30%를 할증하도록 했다.

중견·중소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지나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국회는 2003년부터 중소기업의 할증률을 절반(20%→10%, 30%→15%)으로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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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속 할증세, 유례 없어…상속세 폐지국도 증가세 = 최대주주의 상속지분을 할증평가해 과세하는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독일, 일본, 영국 등 세제 부문에서 국내와 곧잘 비교되는 국가에도 상속세 할증평가 제도가 없다.

오히려 상속세 자체를 없앤 나라가 적잖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3분의 1이 넘는 12개 국가에 달한다. 캐나다가 1971년, 호주는 1979년, 뉴질랜드는 1992년,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등은 2004년, 스웨덴은 2005년, 노르웨이 체코 등은 2014년 상속세 제도를 폐지했다.

고율의 상속세를 넘어 상속지분을 할증평가, 과세하는 제도를 두고 징벌적 세금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상속세를 유지하는 나라에서도 명목세율 기준으로 스위스 42%, 영국 40%, 미국 40%, 네덜란드 40%, 스페인 34%, 터키 10%, 이탈리아 8% 등에 그친다. 명목세율이 높은 나라에서도 아들이나 딸에게 기업을 승계할 경우엔 공제율을 적용해 상속세 부담을 크게 낮춰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공제율을 반영한 명목 상속세율이 30%, 네덜란드는 20%, 이탈리아는 4%, 스위스는 대다수 주에서 0%다.

국내에도 상속세 공제제도가 있지만 대기업은 적용대상이 아닌 데다 중견·중소기업에서도 요건이 까다로워 활용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적용대상이 10년 이상 경영한 연매출 3000억원 이하의 중견·중소기업으로 상속받는 이가 최대주주로 지분을 10년 이상 보유해야 하고 최대 공제액 500억원을 받으려면 사업영위기간이 30년 이상이어야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6년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은 중소기업은 60곳에 그쳤다.

구광모 LG회장이 신청한 5년 분할 납부제도도 이 기간 물어야 할 이자를 감안하면 큰 혜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 상속세 5년 분할납부를 끝낸 이태성 세아홀딩스 (108,600원 ▲800 +0.74%) 대표(부사장)의 경우 상속세 1500억원 외에 분할 납부에 따른 이자로 200억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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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속세 부담, 거꾸로 가는 한국 = 독일이나 일본 등 과세 여건이 투명한 대다수 나라에서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이유는 소득세로 충분히 세금을 물리기 때문이다. 소득 파악이 어려워 과세가 어렵고 세수가 부족하던 시절엔 상속을 과세의 중요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과세 여건이 투명해지면서 상당부분을 소득세로 대체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다.

소득세를 부담하면서 모은 자산에 또 상속세를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문제도 있다.

국내에서도 1950년 상속세법 제정 당시엔 과세 여건과 세수 부족을 이유로 최고 90%까지 상속세를 물렸다. 이후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물러나고 경제자유화 분위기가 반영되면서 상속세율은 5~30%로 크게 인하됐다.

1968년 세율이 다시 5~70%로 높아질 때까지 헌정사상 상속세율이 가장 낮았던 시절이다. 소득세 과세여건이 개선되면서 상속세율은 1995~1996년 10~40%까지 떨어졌다.

소득세를 높이고 상속세를 낮추는 해외 추세에 발맞추던 과세 개정 흐름은 1996년 말 대기업 오너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심해진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 과거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국회는 상속세와 증여세의 과세표준 구간을 단일화하면서 최고세율 구간을 50억원 초과로 높이고 세율도 45%로 상향했다.

3년 뒤인 1999년 12월 개정 때 고액 자산가에 대한 세 부담을 강화하는 취지로 다시 최고세율 구간을 30억원 초과로 낮추고 세율을 50%로 높였다. 최대주주의 30억원 초과 상속주식에 할증평가까지 더해 최고 65%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현행 상속세법이 완성된 게 이때다.

안경봉 국민대 법대 교수는 2013년 발표한 논문에서 "최대주주 등의 지분 상속에 대한 할증평가는 개별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분율에 따라 20~30%의 할증률을 적용, 과세하면서 지나친 세부담을 준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동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소득세가 어느 정도 투명해진 현 시점에서 상속세는 세수가 적어 부의 재분배 효과도 확실치 않다"며 "국제 추세에서 보면 징벌적인 성격이 상당한 세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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