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사진제공=LG
구 회장은 ㈜LG 지분 8.8%(1512만2169주)를 물려받으면서 지분평가액인 1조1890억원에 20%를 가산한 1조4268억원을 기준으로 50%의 상속세를 문다. 일반주주가 구 회장과 같은 규모의 지분을 상속받는다고 가정할 때 내야할 상속세(5945억원)보다 1200억원을 더 낸다.
이런 할증률이 적용되면 상속세 최고세율은 65%까지 늘어난다. 재계 한 인사는 "대기업보다 현금상황이 빠듯한 중견·중소기업에선 상속세를 내려면 할증세율 때문에 공장을 반으로 잘라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변칙적인 증여를 통해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고 경영권을 이전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취지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같은 해 8월 시행된 금융실명제와 맞물려 고액 자산가의 비공개 자산에 대한 과세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 이전 상황을 보면 1987~1992년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평가액 그대로 과세하고 그 외의 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평가액에서 오히려 10%를 경감하는 방식으로 상속세를 물었다.
1993년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엔 과세 범위가 더 넓어졌다. 1996년 12월 상속세법 전면개정 당시 명목 최고세율을 40%에서 50%로 오르면서 상속지분의 평가액 할증범위도 비상장에서 상장주식으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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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증세율은 2000년부터 최대주주 등의 지분율에 따라 차등 적용되기 시작했다. 최대주주 등의 지분이 50% 이하일 땐 20%를, 50% 초과하면 30%를 할증하도록 했다.
중견·중소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지나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국회는 2003년부터 중소기업의 할증률을 절반(20%→10%, 30%→15%)으로 조정했다.
오히려 상속세 자체를 없앤 나라가 적잖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3분의 1이 넘는 12개 국가에 달한다. 캐나다가 1971년, 호주는 1979년, 뉴질랜드는 1992년,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등은 2004년, 스웨덴은 2005년, 노르웨이 체코 등은 2014년 상속세 제도를 폐지했다.
고율의 상속세를 넘어 상속지분을 할증평가, 과세하는 제도를 두고 징벌적 세금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상속세를 유지하는 나라에서도 명목세율 기준으로 스위스 42%, 영국 40%, 미국 40%, 네덜란드 40%, 스페인 34%, 터키 10%, 이탈리아 8% 등에 그친다. 명목세율이 높은 나라에서도 아들이나 딸에게 기업을 승계할 경우엔 공제율을 적용해 상속세 부담을 크게 낮춰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공제율을 반영한 명목 상속세율이 30%, 네덜란드는 20%, 이탈리아는 4%, 스위스는 대다수 주에서 0%다.
국내에도 상속세 공제제도가 있지만 대기업은 적용대상이 아닌 데다 중견·중소기업에서도 요건이 까다로워 활용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적용대상이 10년 이상 경영한 연매출 3000억원 이하의 중견·중소기업으로 상속받는 이가 최대주주로 지분을 10년 이상 보유해야 하고 최대 공제액 500억원을 받으려면 사업영위기간이 30년 이상이어야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6년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은 중소기업은 60곳에 그쳤다.
구광모 LG회장이 신청한 5년 분할 납부제도도 이 기간 물어야 할 이자를 감안하면 큰 혜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 상속세 5년 분할납부를 끝낸 이태성 세아홀딩스 (103,100원 ▼1,300 -1.25%) 대표(부사장)의 경우 상속세 1500억원 외에 분할 납부에 따른 이자로 200억원을 냈다.
소득세를 부담하면서 모은 자산에 또 상속세를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문제도 있다.
국내에서도 1950년 상속세법 제정 당시엔 과세 여건과 세수 부족을 이유로 최고 90%까지 상속세를 물렸다. 이후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물러나고 경제자유화 분위기가 반영되면서 상속세율은 5~30%로 크게 인하됐다.
1968년 세율이 다시 5~70%로 높아질 때까지 헌정사상 상속세율이 가장 낮았던 시절이다. 소득세 과세여건이 개선되면서 상속세율은 1995~1996년 10~40%까지 떨어졌다.
소득세를 높이고 상속세를 낮추는 해외 추세에 발맞추던 과세 개정 흐름은 1996년 말 대기업 오너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심해진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 과거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국회는 상속세와 증여세의 과세표준 구간을 단일화하면서 최고세율 구간을 50억원 초과로 높이고 세율도 45%로 상향했다.
3년 뒤인 1999년 12월 개정 때 고액 자산가에 대한 세 부담을 강화하는 취지로 다시 최고세율 구간을 30억원 초과로 낮추고 세율을 50%로 높였다. 최대주주의 30억원 초과 상속주식에 할증평가까지 더해 최고 65%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현행 상속세법이 완성된 게 이때다.
안경봉 국민대 법대 교수는 2013년 발표한 논문에서 "최대주주 등의 지분 상속에 대한 할증평가는 개별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분율에 따라 20~30%의 할증률을 적용, 과세하면서 지나친 세부담을 준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동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소득세가 어느 정도 투명해진 현 시점에서 상속세는 세수가 적어 부의 재분배 효과도 확실치 않다"며 "국제 추세에서 보면 징벌적인 성격이 상당한 세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