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사이즈 모델이 '프리사이즈' 옷을 입어봤다 (영상)

머니투데이 강선미 기자, 이상봉 기자 2018.11.1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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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뷰]10일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 여는 '내추럴사이즈 모델' 박이슬씨

편집자주 #66사이즈 #보디포지티브 해시태그(#) 키워드로 풀어내는 신개념 영상 인터뷰입니다.

내추럴사이즈 모델 박이슬씨가 프리사이즈로 나온 상의를 입어보고 있다. /사진=이상봉 기자내추럴사이즈 모델 박이슬씨가 프리사이즈로 나온 상의를 입어보고 있다. /사진=이상봉 기자


"무리한 부탁일 수 있는데, 프리사이즈(free size) 옷 한번 입어봐줄래요?"

쭈뼛대며 옷을 건네는 기자의 모습에 그녀는 그게 뭐가 대수라는 듯 옷을 받아 들었다. 옷의 크기를 가늠하는듯 잠시 옷을 바라보더니 팔을 집어넣고 얼굴을 끼어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신축성 좋은 니트 원단이라서 들어가긴 했는데 너무 갑갑하네요. 팔도 끼고."



프리사이즈 옷이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하진 않았을까. 오히려 그녀는 '옷이 잘못됐다'라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66~77사이즈를 가진 국내 1호 '내추럴(natural)사이즈 모델' 박이슬씨(24)다.

내추럴사이즈 모델이 프리사이즈 옷을 입어봤다(영상)▽


최근 자신의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8월 방송인 이영자는 케이블채널 올리브 '밥블레스유'에서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영복 입고 등장했다. 당당하게 오른팔을 들며 과감한 다이빙 포즈도 취했다. 이후 이영자는 수영복 차림을 공개한 것에 대해 "내가 괜찮은 몸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내 몸이니까 사회적 편견에 맞서보려고 입었다"고 말했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수영복을 착용한 방송인 이영자의 모습(왼쪽)과 모델 겸 방송인 자밀라 자밀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게시물. /사진=올리브 '밥블레스유', 자밀라 자밀 인스타그램 캡처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수영복을 착용한 방송인 이영자의 모습(왼쪽)과 모델 겸 방송인 자밀라 자밀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게시물. /사진=올리브 '밥블레스유', 자밀라 자밀 인스타그램 캡처
이미 해외에서는 '자신의 몸을 인정하고 감추지 말자'는 운동이 확산돼 있다. 최근 모델 겸 방송인 자밀라 자밀이 시작한 #아이웨이(I weight) 운동이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사람들은 '#아이웨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외모와 관계없이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에 대한 얘기를 공유한다. 현재 자밀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숫자는 20만명을 넘었다.

이러한 흐름에 내추럴사이즈 모델 박이슬씨도 있다. 현역 모델인 박씨는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 60㎏이 훌쩍 넘는 자신의 신체사이즈(키 165㎝, 몸무게 62㎏)도 당당히 공개했다. 카메라 앞에서 튀어나온 뱃살이나 접히는 등살도 감추지 않는다.

'예쁘지 않아도 된다' '내 몸 그대로를 사랑하자'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이유는 뭘까. 지난달 23일 박씨를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내추럴사이즈 모델 박이슬씨의 모습. /사진=이상봉 기자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내추럴사이즈 모델 박이슬씨의 모습. /사진=이상봉 기자
미국의 서바이벌 TV쇼 '아메리카 넥스트 탑 모델(America's Next Top Model)'을 보며 모델의 꿈을 키웠다는 박이슬씨도 처음에는 날씬한 몸매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사춘기 시절 80㎏ 정도, 대학교 입학 후에는 60㎏대 몸무게를 유지했던 박씨는 모델이 되기 위해 극한의 다이어트를 도전했다.

"다이어트 초반엔 50㎏대까지 빠졌던 것 같아요. 거의 굶다시피 했으니깐요. 그러다 식욕이 터져요. 치킨 2마리를 금세 해치울 정도로 엄청 먹었죠. 그러면 다시 몸무게가 늘고. 좌절하고. 또 다시 초절식했다가 폭식했다가 초절식했다가.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어요. 먹을 것을 스스로 토해내는 '먹토'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죠."

박씨는 '살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그만뒀다. 대학교 휴학계를 내고 다이어트를 하던 어느날 '내가 지금 죽을 병에 걸렸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씨는 "내 인생을 좀먹는 다이어트를 그만두자 마음은 먹었지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며 "거울을 보며 '이슬아,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 '이제 내 몸 그대로를 사랑해주자'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신기하게도 그런 말들을 해주니 정말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며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도 정말 괜찮게 여기게 됐다"고 몸매에 대한 자신의 시선이 바뀐 계기를 설명했다.

속옷 브랜드 '비브비브' 화보 속 박이슬씨(오른쪽)의 모습. /사진=비브비브속옷 브랜드 '비브비브' 화보 속 박이슬씨(오른쪽)의 모습. /사진=비브비브
최근 박이슬씨는 속옷 브랜드 '비브비브'의 모델로 발탁됐다. 화보 속 박씨는 접히는 살도, 출렁거리는 살도 당당하게 드러냈다. 박씨는 더 현실적인 몸매를 보여주기 위해 촬영 전날 치킨 1마리를 먹고 잤다고 말했다.

"어떤 것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세뇌라고 생각해요. TV를 보면 온통 마른 사람들뿐이잖아요. 이런 모습의 제가 계속 미디어에 등장하면 언젠간 사람들도 그것을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 '내일 입을 옷'에 설 모델들의 모습. /사진=강선미 기자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 '내일 입을 옷'에 설 모델들의 모습. /사진=강선미 기자
오늘(10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열리는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 '내일 입을 옷'도 박이슬씨의 작품이다. 지난해 기획을 시작해 모델 선정부터 패션쇼 총괄 감독까지 맡아 진행했다. 33사이즈를 입는 모델부터 가슴둘레 100㎝ 넘는 모델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이들이 등장한다. 박씨는 "제가 설 수 있는 패션쇼를 제 손으로 직접 여는 게 빠를 것 같아 직접 패션쇼를 기획했다"며 "모델을 꿈꿨지만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지 못한 이들이 이번 패션쇼에 많이 지원했다"고 전했다.

박이슬씨의 최종 꿈은 '그냥 모델'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저같은 모델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런 용어를 쓰지만 나중에는 일반 모델, 내추럴사이즈 모델, 플러스사이즈 모델 이러한 구분이 없어졌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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