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감사로도 못잡아"…진화하는 어린이집 비리

머니투데이 김민우 기자 2018.10.1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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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영수증처리는 완벽한 어린이집, 영수증처리도 안 된 유치원'

편집자주 곪은 게 터졌다. 어린이들을 위해 써야할 돈이 사설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의 호주머니로 향하고 있었다. 학부모 등 국민들이 분개한다. 큰 상처를 입었다. 머니투데이가 원인을 분석하고 현상을 진단했다.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 소속 회원 1000여명이 11일 오후 경기도청 현관 앞에서 경기도 회계관리시스템 도입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8.9.1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 소속 회원 1000여명이 11일 오후 경기도청 현관 앞에서 경기도 회계관리시스템 도입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8.9.1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영수증처리는 완벽한 어린이집, 영수증처리도 안 된 유치원'

민간·가정 어린이집도 사립유치원처럼 국가 지원금을 받지만 감사 ‘사각 지대’이긴 마찬가지다. 유치원만 뭇매를 맞은 것은 영수증 처리 등‘회계 노하우(?)’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민간 어린이집은 완벽히 영수증 처리를 한 반면 사립 유치원은 영수증 처리가 미흡해 대거 적발됐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유치원 비리 파문을 계기로 유치원은 물론 어린이집에 대한 근본적인 비리근절 대책이 나와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치원·어린이집, 회계처리 방식의 차이 ? =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재무회계처리 방식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우선 국공립 유치원은 국가회계관리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사용한다. 사립유치원은 민간에서 만든 회계프로그램을 쓰거나 외부 회계 대행사를 쓴다. 일부는 수기로 작성하기도 한다. 사학유치원 관련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에 따라 세입·세출 내역을 교육청에 보고한다.

어린이집 역시 유치원과 비슷하다. 국공립어린이집만 정부가 만든 회계시스템을 사용하고 민간·가정 어린이집은 자체적으로 민간에 위탁해 만든 회계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어린이집은 세입·세출 예산 사용내역을 복지부에 보고한다. 인건비·급식비 등 일부 항목의 예·결산 내역은 복지부에 자동으로 보고가 된다.



문제는 사립 유치원이나 민간·가정어린이집 모두 예·결산 총액을 보고하는 방식으로만 이뤄진다는 점이다. 실제 신고한 곳에 제대로 비용을 사용했는지 여부 등은 이 과정에서 들여다보기 쉽지 않다.
[MT리포트]"감사로도 못잡아"…진화하는 어린이집 비리
◇교육청 감사 vs 복지부 감사의 차이? =교육부와 복지부는 실제 국가 지원금이 제대로 사용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감사를 실시한다. 유치원은 교육부 소관이기 때문에 지방교육청이 감사를 실시한다. 이번에 공개된 사립유치원 비리현황도 교육청 감사를 통해 확인됐다.

어린이집은 복지부 소관이라 복지부 산하 보육진흥원이 3년마다 한번씩 어린이집 평가 인증을 위해 조사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도 어린이집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다.

사립유치원에서 회계처리 등을 담당하고 있는 A씨는 "누리과정 지원금을 받기 전에는 감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회계처리에 대한 기본 인식이 부족했다"며 "'유치원=원장소유'라는 인식이 강하다보니 유치원비와 국가지원금을 구분하지 않고 개인 돈처럼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보육 담당 비서관 B씨 "유치원은 2012년 누리과정이 실시되며 처음 감사를 받기 시작했지만 어린이집은 누리과정 이전부터 정부지원을 받고 감사를 받아온 탓에 회계처리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며 "지원금을 함부로 유용하거나 하는 일은 드물다"고 말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토론회를 막고 있는 사립유치원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2018.10.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토론회를 막고 있는 사립유치원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2018.10.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감사로도 못잡아"…지능적으로 변해가는 어린이집 비리 = 그렇다고 어린이집은 정부지원금을 유용하는 경우가 근절된 것은 아니다. 2013년 서울 송파구에서는 채용하지도 않은 보육교사를 등록해 국고보조금을 빼돌리고 유기농 식자재비를 받아 싸구려 급식을 먹이는 등 각종 비용을 부풀려 횡령한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를 86명이 대거 적발됐다.

이들은 유기농 식자재로 원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한다며 비싸게 급식비를 받은 뒤 유통기간이 지나거나 버려진 시레기 등 싸구려 식자재로 급식해 차액 수백만원을 매달 챙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2015년 제주에서는 시간제 보조교사 8명을 담임 보육교사 등으로 허위 등록해 2300여만원을 부정하게 교부받은 어린이집 원장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사립유치원 뿐 아니라 민간어린이집에서도 국가 지원금을 횡령한 경우는 종종 적발돼 왔다. 그러나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처럼 전국단위의 어린이집 비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경우는 없었다.

B비서관은 영수증 구비 여부의 차이일 뿐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복지부의 설명을 들어보면 어린이집은 영수증은 완벽하게 구비해 놓고 있다"며 "대신 문제가 적발된 경우는 100만원을 구입한 것처럼 영수증을 꾸며놓고 40만원을 뒤로 돌려받는 식의 '백마진'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럴 경우 경찰 수사를 통한 자금추적을 하지 않는 이상 감사를 통해서도 잡아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나와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해 "영유아 보육법을 개정해서 '지원금' 형식으로 나가고 있는 것들은 '보조금'으로 변경해서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시민감사관제도를 적극 도입해 내실있는 감사가 진행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유치원과 어린이집 모두 국가보조금처럼 지원금 사용내역이 정부 시스템과 자동으로 연계되도록 해 회계처리의 투명성을 높여야할 필요성도 제기된다.'클린카드'만을 사용해 용도 이외의 사용을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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