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안 경찰청감독.
그 말 속에서 무궁화축구단과 함께 경찰청야구단의 운명을 예감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8연패의 개가를 올린 경찰청야구단 유승안(62) 감독의 얼굴에 서린 수심은 그 때문이다.
2009년부터 무려 10년 세월을 함께한 팀이다. 분당 집에서부터 파주까지 편도 80km, 왕복 160km를 매일 왕복 3시간 운전해 다니며 가꾸고 키운 팀이다. 불과 4~5년 전에 바꾼 차가 벌써 25만km를 넘겼다고 한다. 그런 팀이 폐단 수순을 밟아가는 모양새를 지켜본다면 누구라도 참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잖아요. 내년에 프리미어 12도 있고, 후년엔 올림픽도 있잖아요. 2023년 의경폐지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올림픽까지는 폐단을 유예 시켜 달라는 겁니다.” 지난 10일 양재동 K호텔에서 만난 유승안 감독이 필사적으로 찾아낸 명분이다. 현재 경찰청야구단엔 지난 9월 17명이 제대하며 20명만이 남아있다. 금년에 충원이 되지 않을 경우 그 인원으로 96경기를 치르는 내년 퓨처스리그를 정상적으로 소화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롯데에 복귀해 득점1위, 안타 1위, 타율 5위를 달리고있는 전준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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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물로 목을 축인 유감독은 “물론 아직은 ‘힘들 것 같은데요’란 말을 들었을뿐 ‘이제 더 안뽑습니다’고 정식 통보받은 바는 없습니다”며 미련을 덧붙인다. “매년 10월에 공고 올리고 11월에 뽑아 12월에 입대시켰는데 좀 늦어지면 어떻습니까. 행정절차만 빨리 빨리하면 11월 초도 가능하죠”하며 폐단 유예에 대한 기대를 이어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경찰청야구단을 향한 유감독의 애정은 참 각별하다. 1994년 한화이글스 배터리 및 타격코치로 시작한 지도자생활이 중간에 공백을 제하고 벌써 20년이다. 그 절반을 경찰청에서 보냈다. 한화이글스 감독(2003~2004년) 세월의 5배. 그 시간 동안 매년 20명꼴로 200여 명의 선수들이 그를 거쳐갔다. 그리고 그중 150여 명이 프로야구 10개 구단에서 1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그가 처음 팀을 맡을 당시 선수단은 선수 20명 코치 2명 였다고 한다. 그는 초반 2~3년을 매일 분당집에서 5시에 출발, 6시에 선수들 깨워 아침 러닝부터 함께했다고 한다. 또한 선수 수가 너무 적으면 부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매일 같이 주무부처인 서울지방경찰청 홍보과를 찾아 선수 확충을 호소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 둘 늘려 코치 6명, 선수 40명 선으로 선수단을 완비하고서야 5시 기상을 면할 수 있었다고. “우리가 그렇게 선수단 규모 키우면서 상무도 같이 규모가 커졌어요. 한국야구 입장에서는 참으로 긍정적인 현상였죠.”
손승락부터 양의지 허경민 최재훈 장성우 박건우 이천웅 임찬규 전준우 안치홍 정수빈 이대은 등등 경찰청을 거쳐 간 선수들은 그의 보살핌 속에서 경력단절 없이 커리어를 이어갔고 몸 상태를 회복했으며 탤런트를 꽃피웠다.
“야구는 한쪽 운동이기 때문에 젊어도 부상들이 많아요. 선수들이 들어오면 몸상태 회복이 일단 주안점입니다. 그동안 여기저기 수술받은 친구들만 한 40명 될 거예요. 재활에도 무리 없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요. 입대 전부터 잘했던 선수들은 체력보강에 주력했습니다. 반면 제 스타일로 성과를 보지 못했던 선수들은 스타일을 싹 바꿔줬어요. 가령 타자의 경우 올려쳐서 2할 5푼 못치면 내려치게 만드는 식이죠. 여기 있을 때 맘 놓고 바꿔보라는 게 내 주관예요. 가슴이 작은 친구들은 집요하게 스트레스 줘서 심장도 키워줬구요. 투수들은 1년은 선발로, 나머지 1년은 중간과 마무리를 경험시켰어요. 그렇게 2년간 돌봐주고 그 친구들이 1군 복귀해서 잘하는 걸 보면 그게 참 뿌듯합니다.”
팀을 그렇게 육성에 치중해 운영하면서도 리그 8연패란 독보적인 성적을 기록했으니 그가 대단해 보인다. “그건 다 선수들 덕분이지 감독이 뭐 한 건 없어요. 성적도 성적이지만 다친 선수들 없이 한 시즌 마친 게 좋은 거죠”라며 겸양도 보인다. 다만 “양의지 장성우 최재훈 김태군까지 포수 하는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내 덕 좀 봤을 거예요”라며 최초의 공격형 포수다운 자부심만큼은 은근히 드러낸다.
야구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두 아들 원상(오른쪽) 민상과 함께./사진=뉴스1
다시 경찰청 문제로 돌아와 혹시 이번에 더 안뽑는 것으로 결정 나면 어찌할지를 물어본다. 예의 긴 한숨부터 앞세운다. “하다가 손들더라도 할 때까진 해봐야죠. 경기 안뛰면 20명 선수들이 망가지는데 어떡합니까. 일주일에 6게임 하던 거 3게임을 하더라도, 아니면 전반기만 뛰고 후반기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할 때까진 해봐야죠”한다. 이어 “우리 야구단 생기면서 병역비리도 없어졌고 선수들 경력 단절 없이 오히려 성장해서 리그 복귀하고.. 순기능만 있지 않았나요?”하고 묻는다. 질문에 다분히 하소연의 뉘앙스가 담겨있다.
그는 매년 계약을 맺는 감독이다. 12월로 금년 임기는 끝난다. 프로 2군 코치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그의 하소연이 단지 또 다른 1년의 수명연장을 위한 것으론 읽히지 않는다. 다만 경찰청야구단에서 쌓아올린 10년 세월이 무거울 따름이다.
힘없이 읊조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는 팀이 남아줬으면 좋겠습니다”는 그의 마지막 바람은 스산한 가을바람에도 흩어지지 않은 채 또렷이 귓전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