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풍등'에 날아간 유류탱크, 막을 대책 없었나

머니투데이 고양(경기)=이동우 기자 2018.10.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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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 날리기' 올해부터 불법이지만…18분 동안 화재 사실 몰라 '시스템도 부실'

 9일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열린 고양저유소 화재 사건 중간수사결과 브리핑에서 수사관계자가 화재 원인이 된 풍등과 같은 종류의 풍등을 공개하고 있다. / 사진=뉴스1 9일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열린 고양저유소 화재 사건 중간수사결과 브리핑에서 수사관계자가 화재 원인이 된 풍등과 같은 종류의 풍등을 공개하고 있다. / 사진=뉴스1


17시간 동안 타오른 불로 43억원의 손실을 낸 '고양 저유소(원유나 석유 제품의 저장소) 화재'는 우연의 연속으로 발생한 어이없는 사고였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날린 작은 풍등으로 발생한 화재는 저유소 관리 시스템의 부실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위험 시설물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촉구한다.

이달 7일 오전 10시54분쯤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경기지사 저유소에서 발생한 화재는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스리랑카인 A씨(27)가 날린 풍등(열기구)가 원인인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9일 A씨에 대해 중실화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번 화재는 저유소 탱크에 있던 휘발유 260만ℓ(리터)를 태우며 진화에만 약 17시간이 걸렸지만 원인은 지름 40㎝(센티미터), 높이 60㎝에 불과한 작은 풍등에 불과했다. A씨는 사고 당일 인근 공사장에 떨어진 풍등을 주워 호기심에 날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A씨가 CCTV를 보고 자신이 풍등을 날린 사실도 인정했고, 풍등이 날아간 방향에 있는 저유소가 위험 시설이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저유소 화재는 단순히 A씨만의 잘못으로 보기는 어렵다. 우선 풍등을 날리는 행위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A씨가 날린 풍등은 전날인 6일 저녁 인근 서정초등학교에서 풍등 날리기 행사를 한 것으로 800미터(m)를 날아와 공사장에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개정된 소방기본법에 따라 올해부터 허가 없이 풍등 같은 소형 열기구를 날리는 행위는 불법으로, 어기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실질적 단속 등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서정초 행사처럼 풍등을 날리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잔디에 떨어진 풍등으로 대형 화재가 유발된 점도 공사 측의 저유소 관리의 부실을 지적할 수 있는 지점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풍등이 잔디밭에 떨어져 연기가 나기 시작한 오전 10시36분쯤부터 저유소 탱크 폭발까지는 18분이 걸렸다.


이달 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저유소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모습. / 사진=임성균 기자이달 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저유소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모습. / 사진=임성균 기자
이날 저유소에 근무하는 공사 관계자는 6명에 달했지만 잔디가 타고 있던 18분 동안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다. 탱크 내부 온도가 80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경보가 울리게 돼 있지만, 외부 센서는 없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유증환기구 주변에 화재에 취약한 잔디가 깔려있지만 스프링클러 등 화재 조기 진압 시스템은 부재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증환기구 주변에 잔디가 뭉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이런 부분에서 불씨가 일었을 수 있다"며 "위험물 안전관리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추후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위험물을 취급하는 사업소에 필수 배치해야 하는 자체소방대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의문점이다. 단순 당직자에만 폭발 위험 등이 있는 위험 시설물의 화재 진압 임무를 맡기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자체소방대의 초동 대응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고양 저유소 화재를 통해 유사 위험 시설물의 안전 관리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유증환기구에는 인화 방지망이라고 해서 위험 물질이 유류 탱크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설치하게 돼 있는데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평소 안전점검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 교수는 "이번 사고로 풍등에 대한 대비로 다른 저유소 탱크들도 지상 위쪽으로 그물망 등을 설치하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화재는 공사 창사 이래 처음 발생할 정도로 일반적인 사고가 아니라 특수성을 갖고 대응하는 방향보다는 전체적인 시스템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충분하지 않은 인력을 보강하고 중요 시설에서 사후 관리용으로 쓰이는 CCTV 체계를 예방의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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