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엄마를 '벌레'라고 부르는 사람들

머니투데이 남궁민 기자 2018.10.07 06:31
글자크기

[맘충이 뭐길래-②]'맘충' 화살, 무차별 확산…非육아 인구↑ ·'주부=무임승차' 인식 영향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걷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사진=뉴시스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걷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사진=뉴시스


[빨간날]엄마를 '벌레'라고 부르는 사람들
대형마트 쿠키를 유기농 제품으로 속여 판 미미쿠키 사건을 계기로 일부 누리꾼의 육아 여성에 대한 혐오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기 피해자들에게 '맘충'('엄마'와 벌레의 합성어)이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 아토피 등 질병을 앓는 아이를 둔 부모도 포함된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맘충'이란 표현은 2015년 인터넷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누리꾼들은 공공장소, 식당 등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육아 여성의 사례를 꼬집으며 '맘충'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에서 활동하는 육아 여성이 왜곡된 정보를 퍼트린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면서 '맘충'은 공공 질서를 지키지 않고, 조작된 정보를 퍼트리는 이들이라는 의미로 굳어졌다.



'일부만 비판'?…모든 육아 여성으로 번지는 화살
'미미쿠키 사태' 관련 기사에 피해자인 젊은 엄마들을 조롱하는 악플이 올라와 있다. /사진= 인터넷 포털사이트 캡처'미미쿠키 사태' 관련 기사에 피해자인 젊은 엄마들을 조롱하는 악플이 올라와 있다. /사진= 인터넷 포털사이트 캡처
당초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소수를 비난하는 의미로 쓰이던 표현이 육아 여성 전체를 비하하는 용어로 확장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문제가 될 행동을 하기 전부터 선입견을 씌운다는 지적이다.

주부 김모씨(35)는 "한 카페에 아이와 갔는데 뒤에서 한 무리가 '맘충이네'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라며 "이제 아이와 함께 바깥에만 돌아다녀도 경계하거나 민폐로 보는 눈길을 느낄 때가 많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카페에서 아이가 떠들면 눈치가 보여서 유튜브를 보여준다. 하지만 또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엄마를 비판하는 댓글을 보면 '내가 맘충인가?'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맘충' 표현이 확산되면서 육아 여성에 대한 비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교사 김모씨(36)는 "동료 여교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아이들이 '이제 그 선생님도 맘충이네'라고 말해 충격 받았다"라고 전했다.

"내 새끼 아닌데?"…비혼 확산에 육아 공감↓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전문가들은 육아를 하지 않거나 포기한 이들이 늘면서 타인의 육아에 대한 공감이 줄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6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대학생 1061명을 상대로 ‘저출산 사회-대학생 삶과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결혼 생각이 없다'(18%), '생각해 본 적 없다'(10.3%)는 응답은 전체의 30%에 육박했다. 상당수 청년은 결혼과 육아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미쿠키 사건 이후 일부 누리꾼은 '유기농이라 다르다더니', '맛있다고 인스타에 올리더니 꼴 좋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이에 대해 주부 최모씨는 "아토피에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 음식이나 생활용품을 살 때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라며 "아이가 걱정될 뿐 아니라 만약 탈이 나면 모든 비난은 결국 엄마에게 쏠리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안전 문제를 예민하게 따지면 '유별나다'는 눈총이 날아온다"라고 하소연했다.

황진미 평론가는 "'~충'이라는 비하 표현이 많지만 '맘충'이 특히 충격적인 점은 비하의 대상이 어머니, 모성이라는 점"이라며 "과거에도 중년 여성에 대한 '아줌마'라는 비하는 있었지만 모성에 대한 비하는 금기시 됐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삶이 팍팍해지면서 비혼·비출산 인구가 늘고 있고 이들 입장에선 육아는 남 얘기"라고 지적했다. 황 평론가는 "'나도 언젠가 아이를 낳을테니 배려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깨졌다. '내 자식도 아닌데?'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육아 때문에 일 관뒀더니…가사노동 가치 절하·'주부=무임승차' 인식
/표=고용노동부'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표=고용노동부'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표=고용노동부'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표=고용노동부'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육아 여성에 대한 비하가 심화된 데는 '주부=무임승차자'라는 인식이 확산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맘충' 등의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미미쿠키 피해자에 대해 '쓸 데 없는데 쓰느라 돈만 축 낸다', '남편은 나가서 돈 버는데 집에 들어앉아서' 등의 비난이 제기된다.

육아 여성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최근 휴직한 주부 A씨는 "계속 회사를 다니고 싶었지만 아이를 낳자 시댁과 회사 모두 당연하다는 듯 일을 그만두길 바랐다"라며 "월 200만원이 넘는 베이비시터 등 양육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포기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20대 후반 여성의 고용률은 69.5%지만 30대가 되면 60.2%로 뚝 떨어진다. 반면 남성은 20대 후반 고용률(69.7%)에서 훌쩍 뛴 88.3%를 기록했다. 여성의 경력단절 이유를 조사한 2016년 통계청 조사에서 응답자의 3명 중 2명은 가사(53.6%)와 육아(12.7%)를 이유로 꼽았다.

한편 육아와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인식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2005년 김종숙 한국여성개발원(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권태희 박사가 내놓은 보고서는 30대 전업주부의 무급 가사노동 가치를 1인당 평균 월 167만원으로 추산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2018년 기준 월 214만원, 연 2574만원에 이른다. 상당한 가치의 노동을 하고 있지만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특정 집단을 매도하는 '폭력'"…육아 분담 환경 조성해야

전문가들은 먼저 경멸적 표현이 심각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런 표현을 쓰는 이들은 소수의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 만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특정 집단 전체를 비하하는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해 만연한 혐오와 다를 바 없다"며 "현실적으로 이 같은 발언을 법적으로 금지하긴 어렵다. 결국 사회 전체가 나서서 편견과 폭력에 맞서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독박 육아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진미 평론가는 "결국 남성 혼자 돈 벌고 육아는 여성만 책임지는 구조가 바뀌어야 해결 될 문제"라며 "남녀가 가사와 경제활동을 함께 할 뿐 아니라 이를 위한 보육 인프라도 마련해야한다"라고 조언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