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말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2018.09.2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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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아들은 눈물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여섯 살 어렸을 때도 다쳤을 때나 소리내 울었지 가슴이 아프거나 감동을 받았을 때 눈물을 보인 적은 없었다. 만화영화나 책을 같이 보다 눈물이 날 것 같으면 눈물을 참느라 깜박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며 멋쩍은 듯 “엄마 울어?” 하고 되려 물었다.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보이지 않는 법이야” 따위의 말은 한 적도 없는데 아들은 어릴 때부터 남 앞에서 눈물 보이는 걸 쑥스러워 했다.

그런 아들이 사춘기의 절정을 지나며 온갖 말썽을 다 부리던 중3 때, 소리 없는 뜨거운 눈물을, 내 앞에서 미쳐 닦을 새도 없이 주르륵 흘렸다. 모범생인 친구 아들 얘기를 지나가는 말로 무심코 했을 때였다. 내 말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들이 툭 던지듯 말했다. “엄마는 남 앞에서 내 얘기하는 게 부끄럽지?”인지 “엄만 내가 싫지?”인지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 내가 당황하며 “아냐,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하니 아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때 알았다. 아들은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야단만 맞는 그 상황을 바꿔 보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지난 24일(현지시간) 유엔에서 한 연설을 보고 문득 2년여 전 아들의 눈물이 생각났다. 연설 메시지이자 방탄소년단의 앨범 제목이기도 한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말이 그 때 기억을 소환했다. RM의 연설문을 곱씹어 읽으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룹 방탄소년단 RM이 지난 5월24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정규 3집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그룹 방탄소년단 RM이 지난 5월24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정규 3집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첫째, 자기 사랑은 자기 인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나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내세울 것이 있어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착각이다. 잘난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사랑이 아니라 잘난 척이고 교만이다. RM은 연설에서 “어제 실수를 했더라도 어제의 나도 나다. 오늘 잘못하고 실수하는 나도 나다. 내일 조금 더 현명해져 있을지도 모를 나 역시 나다”라고 말했다. 자기 사랑은 자신의 약점과 잘못, 실수, 부족한 점을 알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잘 하려 해도 안 되는 나의 약함을 직시하면서 끌어안는 것이 자기 사랑이다.



둘째, 자기 사랑은 자기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RM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를 다른 사람들이 만든 틀에 맞추려 노력했다"며 "곧 내 자신의 목소리를 차단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자기 사랑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존중하는 것이다.

셋째, 자기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RM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방탄소년단)를 희망 없다고 생각했고 때로 나도 그저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다 포기해버리지 않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따라 살 때 세상은 ‘그렇게 살면 힘들어’라든가 ‘그래서 밥은 먹고 살겠어?’ 또는 ‘그냥 남들처럼 살아’라고 한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세상의 회의적인 시각이나 비웃음에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아이돌을 꿈꾸는 모든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고 방탄소년단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따라 사는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실패까지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듣고 존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자기 사랑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내일 조금 더 현명해져 있을지도 모를 나"로 성장해간다.


마지막으로 자기 사랑은 타자 사랑으로 확대된다= RM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이제 당신에게 당신 자신에 대해 말해보라고 요청한다”고 했다. 이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이 흘러 넘쳐 관심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M. 스캇 펙도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책에서 “이것(사랑)은 자기 희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확대”라며 “순수한 사랑은 자기를 채워나가는 활동”이고 “자신을 위축시키기보다는 확대시키고,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사랑은 자아의 확장이므로 자신의 자아를 사랑하지 않고는 내 자아의 확장인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고, 자신을 사랑으로 채우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채울 수 없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도 자기 자신부터 사랑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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